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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독일의사협회 외르크 디트리히 호페 회장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자비가 아닌 이윤'으로 규정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 속에는 이 시대 올바른 의사상(像)에 대한 고민이 숨어 있다.
 
자본의 논리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술을 베푸는 의사는 과연 소수일까 아니면 다수일까? 의료정보는 법률정보보다 더 비대칭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환자는 '을'(乙)의 입장을 벗어날 수 없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의료계는 끊임없이 내부 고발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번엔 임상현장과 제약사와의 유착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이 나와 의료계의 자기성찰에 또다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느 젊은 의사의 고백

 

독일의 의사 출신 신문사 의학 편집자가 쓴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저자는 "의사들의 '무능력과 미숙함'을 다룬 책"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용은 제목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환자 입장에서 두렵기 짝이 없는 의사들의 오만과 냉혈, 무능과 실수투성이로 가득 차 있다.

 

"부인의 골반저는 해먹처럼 축 처졌네요.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에요."

"세상에, 부인의 다리는 압축기(다리에 불거진 정맥류가 압축기 노즐처럼 보기 흉하다는 의미)처럼 생겼네요!"

 

의사들의 말 한마디가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중하다. 병을 이기게 하는 용기를 북돋는 말을 하는 의사가 있는 반면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로 환자의 투병의지를 꺾어버리는 나쁜 의사가 있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의사는 오직 자신의 의학적 진단과 충고를 위해 목청을 높이다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유린하기도 한다.

 

"이건 위생상의 문제예요. 환자 분께서 국부를 좀 더 깨끗이 관리하신다면 병은 깨끗이…"

 

커튼을 뚫고 들리는 의사의 목소리와 너풀거리는 그 사이로 보이는 반라의 여자 환자. 그리고 그녀의 절망적이고 수치스러운 눈빛. 저자는 이 같은 의사들의 언어에 대해 직업적인 대화지만 좀 더 세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호자 없이 일반병동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를 다용도실로 옮기거나 뇌졸중 환자를 구급헬기로 이송했지만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병원의 사례 뒤에는 냉혈한 의사들이 도사리고 있다.

 

수술 부위를 지혈하는 복대를 채우지 않은 경우, 어깨 수술을 하다가 수술용 드릴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이를 빼내기 위해 거짓 핑계를 대고 재수술을 하는 경우, 사진연장 수술용 고정 장치를 잘못 박아 넣는 등 의료사고의 전후에는 무능과 실수투성이 의사들이 망령처럼 도열해 있다.          

 

저자는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고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하는 의사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환자에게 안부편지를 보내거나 "당신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당신은 병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는 말로 환자를 격려하는 의사가 그들이다.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알마 펴냄, 271쪽, 1만3500원)

 

제약사 로비에 휘둘리는 의사들

 

2000년 미국신장학회 학술대회장. 후원 제약사의 회사명이 인쇄된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니는 움직이는 광고판 의사들이 커다란 가망을 둘러매고 학회장을 휘젓고 있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인체 모형, 부채, 약 샘플, 사탕, 볼펜, 야구모자, 마우스패드, 손전등 등이 아무렇게나 담겨져 있었다.

 

2001년 3월 뉴욕 버펄로의 알레르기 전문의 로버트 라이스만 박사는 총 13개 제약사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아스트라제네카, 아벤티스, 쉐링, 노바티스, 3M 등이 학회기간 중 박사에게 저녁식사를 초대한 것이다. 돌아갈 때 현찰 1000달러를 얹어주는 곳도 있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 출신인 제롬 캐시러의 <더러운 손의 의사들>은 의사들이 제약사와의 결탁이 얼마나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식사대접은 가장 일반적인 제약사의 판촉 방법. 부부동반 여행권, 스포츠 경기 입장권, 수련의나 전문의의 식사, 현금 등 제약사는 여러 형태로 의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제약사의 이러한 행위는 자사제품을 처방하고 홍보해 달라는 암묵적인 로비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제약사의 이러한 편의제공과 관계없이 소신 있는 처방을 내린다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수많은 의사들은 제약사의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별다른 활동 없이도 정기적으로 제약사 명의의 입금액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의사와 제약사 간의 현실이다. 심지어 환자와 의사 간의 소송에서 자사 제품이 들어 있을 경우 소송지원까지 서슴없이 행하는 제약사가 있을 정도다 보니 소비자는 암울하기만 하다.       

 

의사들은 제약사가 순수한 동기로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의사들은 '뇌물'은 받지만 자기는 성실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자는 매수되고 있다는 인식과 매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욕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앞에서 의사들은 자기기만을 한다고 지적했다. 부정을 부정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환자치료에 전념하지 못하는 상황이 야기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가톨릭의대 북클럽 회원들에 의해 국내에 소개됐다. 의사로서의 자기성찰과 미래에 대한 약속이 담겨 있는 책인 셈이다. 옮긴이 최보문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핵심을 가르치는 데 반면교사의 역할을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판을 결정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제롬 캐시러 지음, 최보문 옮김, 양문 펴냄, 336쪽, 1만5000원)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알마(2008)


태그:#의사, #메디컬스캔들, #제약사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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