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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에 찾은 서을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은평뉴타운 1지구 전경. 오는 6월 1일부터 입주가 시작된다.
 20일 오전에 찾은 서을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은평뉴타운 1지구 전경. 오는 6월 1일부터 입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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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진관동 내 은평뉴타운 주택전시관. 김미숙(가명·44)씨는 힘 빠진 눈빛으로 드넓은 은평뉴타운 단지 모형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내 전시관 2층 59㎡짜리 주택모형으로 들어갔다. 김씨와 동행한 일행 2명이 방의 크기, 구조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부러운 듯 바라볼 뿐이었다.

김씨의 표정은 활기찬 표정을 지닌 다른 방문객과는 사뭇 달랐다. 웃음기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자신감도 없어 보였고 옷차림새도 세련돼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내 집 마련의 열망 혹은 꿈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주택전시관을 방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주택전시관을 나서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니 그는 "쫓겨난 원주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곤 "세입자였다"며 "입주는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주택전시관 뒤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은평뉴타운 1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6월 1일부터 입주하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다. 고급스럽게 설계된 아파트가 세워진 곳은 그의 집터가 있었던 곳이지만, 김씨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쫓겨난 세입자 원주민 "집 없고, 돈 없는 죄"

김미숙(가명·44·가운데)씨가 힘 빠진 모습으로 은평뉴타운 개발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원주민이었던 김씨는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뒤 은평뉴타운에 다시 들어올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두고 "집 없고 돈 없는 죄"라고 말했다.
 김미숙(가명·44·가운데)씨가 힘 빠진 모습으로 은평뉴타운 개발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원주민이었던 김씨는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뒤 은평뉴타운에 다시 들어올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두고 "집 없고 돈 없는 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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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기분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김씨의 말은 한숨과 함께였다.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차, 싶었다. "자신의 집터 위에 들어선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기자는 주워 담고 싶었다.

그의 일행은 김씨보다 10m 정도 앞서서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기자와의 대화를 피하는 듯 했다.

김씨는 원래 진관동에 방 3개 딸린 59㎡짜리 주택에 살았다.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세 자녀와 함께였다. 집은 2000만원 전세였지만 독채라 살기 좋았다. 남편은 인근에서 노동일을 했다.

하지만 2003년 보상 등 뉴타운 개발 절차가 진행되자 김씨 가족은 인근 연신내로 '쫓겨났다.' 매달 임대비를 내야하는 임대아파트를 포기하고 전세금에 보상금 800만원을 더해 집을 찾았지만 같은 크기를 구할 순 없었다. 33㎡짜리 반지하로 옮겼다. 방은 2개. 시동생은 떠났다.

입주권도 받지 못한 그에게 대통령이 방문한 은평뉴타운의 번듯한 아파트는 애초부터 꿈 꿀 수 없었다. 그는 "집 없고, 돈 없는 죄"라고 말했다. 이날 방문에 대해 "원래부터 포기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미련이 남아 임대 아파트를 보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내 말을 잃었고,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빚내고 더 작은 크기로 밀려난 집주인들

세입자들만 은평뉴타운으로 피해를 본 건 아니었다. 집을 가지고 있던 이들 역시 뉴타운사업을 찬성한 건 아니었고, 그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은평뉴타운이 들어선 진관동 349만㎡(약 100만평)에는 개발 이전에 8700세대 2만 5천명이 살고 있었다. 은평뉴타운 사업을 이끌고 있는 SH공사 뉴타운사업본부 이정덕 계획설계팀장은 "뉴타운 사업 이전까지 그린벨트로 묶인 개발제한구역이라 정비되지 않은 집이 많았다"고 전했다.

SH공사에서 원주민을 위해 내놓은 특별분양 물량은 은평뉴타운 전체 1만6172호 중 6000호. 집을 가진 원주민을 위한 것은 3338호고, 세입자를 위한 임대아파트는 2600호다. 이 팀장은 "대부분 입주를 할 것으로 보이고, 원주민들은 은평뉴타운에 대해 쾌적하고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일 오전에 찾은 은평뉴타운 1지구의 모습. 오는 6월 1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은평뉴타운은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20일 오전에 찾은 은평뉴타운 1지구의 모습. 오는 6월 1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은평뉴타운은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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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자가 이날 은평뉴타운에서 만난 주민의 말은 달랐다. 김현자(가명·62)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은평뉴타운을 둘러보고 있었다. 원주민인 그는 내년 말 입주하는 은평뉴타운 2지구에 134㎡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원래 그에겐 185㎡ 대지와 그 위에 커다란 집이 있었다. 

김씨는 은평뉴타운에 대해 "반대 많이 했다, 땅 몇백 평 가진 사람 말고는 다 손해를 본다"며 "특히, 적은 평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빚을 내서 들어와야 하니 많이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돈을 빌리면서도 더 작은 평수로 가게 됐다. 김씨는 "30~40년간 그린벨트에 묶인 곳에 살다가 그게 풀려 재산권 좀 행사하려 했더니 뉴타운이 돼 작은 평수로 가야하니 불만이 없을 수 없다"고 했다. 

보상비(대지)는 3.3㎡당 평균 600만원이었다.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낮게 책정됐다고 하는 은평뉴타운 분양가와 큰 차이를 보인다. 분양가 중 가장 싼 게 940만원(3.3㎡당)이다.

김씨는 "특별분양이 일반분양보다 싸게 공급되는 것이 아닌 만큼, 집 있는 원주민 역시 쫓겨난다"며 "뉴타운은 원주민을 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 바람... "뉴타운이 무슨 의미가 있냐"

20일에 찾은 은평뉴타운 내 상가에는 부동산 중개사무소 임시 간판만이 눈에 띄었다. 은평뉴타운에도 투기바람이 거센 듯 했다.
 20일에 찾은 은평뉴타운 내 상가에는 부동산 중개사무소 임시 간판만이 눈에 띄었다. 은평뉴타운에도 투기바람이 거센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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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은평뉴타운 건설현장에는 모래 바람과 함께 '투기 바람'도 거셌다. 빈 상가엔 부동산 입점이라는 플래카드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ㅎ부동산 관계자는 "부동산이 들어왔다는 건 투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분양의 경우 전매 제한이 있지만, 원주민 특별분양의 경우 전매 제한이 없다. 6월 등기를 하게 되면 매매가 가능하다. 벌써부터 대략적인 시세가 정해졌다.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 김현자씨도 "몇 달 전 프리미엄으로 1억 8천만원을 줄 테니 팔라는 부동산 업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ㄹ부동산 관계자는 "101㎡의 경우 1억 5천만원, 134㎡대의 경우 2억원 정도가 프리미엄으로 붙는다"고 말했다. 분양가가 3억 5천만원대인 101㎡ 아파트의 경우 프리미엄이 붙으면 5억원. 주변 아파트에 비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 된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에서 37년 살다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김아무개(71)씨는 "한국에 와서 프리미엄이란 걸 처음 들었다"며 "그게 있으니 투기하는 사람들만 모이고, 실수요자는 못 사는 것 아니냐"며 지적하기도 했다.

주택전시관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은 "한 부동산 가게에 가니 원주민의 등기비, 양도세까지 프리미엄 3억원에 134㎡ 아파트를 사라고 했다"며 "이렇게 되면 뉴타운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전했다.


태그:#은평뉴타운, #뉴타운,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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