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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순들이 돋아나는 4월 어느 날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 순들이 돋아났다. 아직 바람이 찬데도 새 순들은 하루가 다르게 입을 벌렸다. 새 순은 봄에만 딸 수 있다. 두릅 순도 봄에만 구경할 수 있다. 봄 햇살은 하루가 다르기 때문에 때를 놓치면 순은 그냥 자라버린다. 그래서 부랴부랴 소쿠리를 들고 두릅 순을 따러 뒤안으로 갔다. 

 

두릅나무들은 내 키를 훌쩍 넘어 손이 안 닿게 자라 있었다. 며칠 사이에 두릅 순이 한 뼘은 되게 올라와 버렸다. 더러 억세어져서 가시가 나온 것도 있었다. 봄 한철 딱 이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을 며칠 사이로 놓치게 생겼다. 그래서 부지런히 두릅 순을 땄다.

 

두릅 따다가 심 봤다

 

두릅은 땅뿌리로 계속 번져나가는 나무인지, 봄만 되면 두릅나무가 여기저기서 돋았다. 주방 창문 바로 앞 화단에 두릅나무가 큰 게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 뿌리 근처에서 해마다 두릅이 뻗어나왔다. 처음엔 지저분해 보여서 잔나무들을 베어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해엔가 그 나무들을 캐서 집 둘레에 심어봤다. 그랬더니 이제 우리 집 뒤안은 두릅나무 천지가 되어버렸다.

 

뒤안을 돌아다니면서 두릅을 따고 있는데 낙엽더미들 속에 예사로이 봐넘길 수 없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보통 풀들이랑 잎 모양새가 달랐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인삼이었다. 그래서 두릅 따던 손을 잠시 멈추고 발 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인삼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 인삼이라니…. 마치 산삼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인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인삼이 자라고 있으니 그건 인삼이 아니라 내겐 산삼 같았다.

 

두릅밭이 인삼밭이었네

 

나는 소중한 보물을 다시 묻어두는 심정으로 인삼들을 눈으로만 일별하고 돌아왔다. 마치 전혀 안 본 것처럼 그렇게 시침 딱 떼고 그냥 왔다. 그러고 보니 그이가 인삼을 심었던 거 같기도 하다.

 

삼밭을 하는 집에서 어린 종삼을 반찬해서 먹으라고 준 적이 있는데 그걸 시험 삼아 몇 포기 심었나 보다. 그렇게 심어만 두고 잊어버렸는데 그게 자라서 어느새 저렇게 큰 것이다. 한 번도 안 쳐다봤는데 저 혼자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운 것이다.

 

그 날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저게 안 죽고 살아남기만 하면 장뇌삼이 되는거겠지? 인삼밭의 인삼들은 5년에서 6년까지 밖에 못 산다고 하던데…. 인삼을 산에 심으면 장뇌삼이 된다던데, 그렇다면 저게 장뇌삼이 될 수도 있겠네?'

 

우리 인삼들이 자라는 곳은 인공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인삼밭이 아니다. 야산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인삼들이 자라는 거다. 그렇다면 저 인삼들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만약 살아남기만 하면 장뇌삼이 되는거다. 그렇게 10년, 20년 지나면 우리는 장뇌삼을 캘 수 있는 거다.

 

장뇌삼 캘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졌다. 그래서 마음은 벌써 10년 뒤, 20년 뒤로 저절로 갔다.

 

'그래, 저게 안 죽고 살아남기만 하면 나도 먹고 그이도 먹고 그리고 우리 애들도 줘야지. 아 참, 그리고 손자들도 있구나. 그래 손자들도 먹여야지.'

 

내 마음은 벌써 손자들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미래의 내 손자들에게 장뇌삼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마치 양 손에 먹을 것을 가진 아이처럼 기분이 뿌듯해지는 거였다.

 

비밀이 생겼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장뇌삼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장뇌삼은 나 혼자만 키운 게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 그이가 비밀스런 눈빛으로 나를 불렀다.

 

"여보, 이리 와 봐. 뭐 보여 줄게."

 

그이는 조심스런 행동으로 은밀하게 나를 불렀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그이는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는양 목소리를 낮춰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래서 슬리퍼를 끌면서 마당에 나가보니 그이가 나를 뒤안으로 인도하는 거였다.

 

"여보, 저기 인삼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나 저번에 봤어. 두릅 따다가 봤어."

"봤어? 잘 자라고 있지? 그게 말야 안 죽고 살아남기만 하면 장뇌삼이 되는 거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지? 환경이 좋잖아."

"그러게 여보, 살아남겠더라. 밭이랑 다르잖아. 적당히 그늘이 지고 적당히 습하고 딱 삼이 잘 자랄 수 있는 장소더라. 당신 정말 잘 했네. 시험 삼아 심어본다더니 잘 살았더라."

 

우리 둘은 아침 이슬을 맞아 싱싱하게 빛나는 푸른 인삼잎을 바라보며 꿈에 젖었다.

 

"저기 잎이 세 개인 거 있지? 저건 작년에 심은 거야. 그리고 잎이 두 개짜리는 올해 심은 거고."

 

그러고보니 잎이 세 개짜리도 있었고 두 개짜리도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잎을 보고 인삼의 연수를 헤아릴 수 있나 보았다.

 

그 날부터 우리 부부는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바로 장뇌삼을 키우고 있다는 비밀을 우리 둘은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울도 담도 없는 우리집은 아무나 드나들 수가 있다. 집 뒤안 역시 누구라도 가서 두릅을 딸 수 있다. 그렇다면 저 인삼들은 언젠가 사람 눈에 띄일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꿈은 사라진다.

 

사랑이 있는 곳에 소망이 깃든다

 

아, 그게 문제였다. 가진 게 없을 때는 걱정 또한 없었는데 가진 게 있다 생각하니 그 때부터 근심 걱정도 따라왔다. 우리가 애지중지 키우는 삼을 누가 캐서 가져가버린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미리부터 하기 시작했다.

 

참 별 거도 아닌 걸로 사서 걱정을 한다. 인삼이 6년을 지나서도 계속 살아남을지도 모르는데 미리 걱정을 하고 있는 거다. 성질 급한 사람이 우물 가에 가서 숭늉을 찾는다더니 우리가 꼭 그 짝이었다. 심은 지 첫 해, 두 해 밖에 안 된 인삼을 두고 장뇌삼을 꿈꾸더니 이제는 도둑 걱정까지 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앞서가도 한참을 앞서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10년, 20년이 뉘 집 강아지 이름도 아닌데, 강산이 두 번이 아니라 다섯 번도 더 바뀔 긴 시간인데 우리는 미리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

 

김칫국을 미리 마시면 뭐 어떠랴. 가슴 속에 소망을 품고 있다는 건 보약 한 재를 달여 먹는 것보다 약발이 더 세리라. 그러니 장뇌삼을 가슴 속에 품고 늘 키우리라. 그이의 사랑과 나의 소망이 더해져서 인삼은 나날이 자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 손자 손녀에게 찾아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날을 꿈꿔 본다.


태그:#인삼, #장뇌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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