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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우리나라 최북단 학교의 '나홀로 입학생' 신재응군(맨왼쪽).
 우리나라 최북단 학교의 '나홀로 입학생' 신재응군(맨왼쪽).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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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는 누구세요?
"인터넷신문 기자란다."

- 왜 왔어요?
"흘리분교와 너희들을 취재하러 왔단다."

- 그러면 '네이버'에서 치면 우리가 나와요?
"응, (네이버에서) '흘리분교'를 치면 기사를 볼 수 있을 거야."

- 와, 신난다
"…"

진부령 끝자락에 자리잡은 전교생 10명의 흘리분교

재응이와 같은 반 누나들인 차현경과 김다원(왼쪽부터).
 재응이와 같은 반 누나들인 차현경과 김다원(왼쪽부터).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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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다음날인 16일 이른 아침에 기자는 진부령 끝자락에 자리잡은 광산초등학교 흘리분교(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의 아이들과 이렇게 첫 대면을 했다.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전에 미리 학교를 둘러볼 요량으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들렀는데 아이들 몇 명이 벌써 학교에서 놀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저학년 아이들이었다.

1~3학년을 통틀어 유일한 남학생인 새내기 신재응군과 학년은 다르지만 '같은 반 누나들'인 2학년의 김다원·김가을·차현경양이었다. 이들은 이 학교에서 '4총사'로 통한다. 전교생이 10명뿐인 흘리분교는 1·2학년, 3·4학년, 5·6학년을 통합해 복식수업을 한다. 그러니 이들은 학년은 다르지만 요즘 말로 '반창회 급우들'이다.

흘리분교는 1961년에 문을 열었다. 이 학교도 다른 농촌학교들처럼 64년에 국민학교(초등학교)로 승격했으나 83년에 학생수가 줄어 다시 분교장으로 격하됐다. 졸업생은 43회까지 총 422명이니 한해 평균 10명 졸업생을 배출한 셈이다. 그런데 현재는 전교생이 10명(남 4, 여 6)뿐이다.

교직원은 분교장인 이창우(3·4학년 담당) 선생과 이동탁(1·2학년 담당)·이정재(5·6학년 담당) 선생 그리고 기능직인 장영근 기사 등 네 명이다. 분교장 선생이 출타 중이어서 이정재 선생이 전교생을 불러모아 정식으로 기자를 소개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오셨다"고 소개하니, 일부는 "아, <오마이뉴스>"하며 안다는 눈치다.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10명 중에 3명이 안단다. 고학년 학생들이지만 뜻밖이었다. '나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우리나라 '최북단 마을'에까지도 인터넷과 정보화의 물결은 닿아 있었다.

 우리나라 최북단 학교의 '나홀로 입학생'

이정재 선생님의 전교생 수업.
 이정재 선생님의 전교생 수업.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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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혼자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홀로 입학생'은 130여 명. 그 가운데 재응이는 우리나라 최북단 학교의 '나홀로 입학생'이다. 사실 우리나라 최북단 학교는 명파초등학교(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264)다. 또 고성 관내의 유일한 나머지 분교인 거진초교 송정분교도 흘리분교처럼 3학급의 미니학교다.

그러나 명파초교와 송정분교의 신입생은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올해 최북단에서 '외롭게' 공부하는 신입생은 재응이뿐이다. 이 '최북단 나홀로 입학생'의 가장 큰 희망은 2년여 전에 경영난으로 문을 받은 '알프스 스키장'이 재개장해 예전처럼 아빠와 함께 신나게 '야간 스키'를 타는 것이다.

흘리분교는 강원도가 지정한 '동계스포츠종목 꿈나무선수 육성지정학교'다. 사실상 전교생이 스키 방과후교육을 받는 특기생이다. 산골이지만 집집마다 스키 장비는 기본이다. 대개는 스키 렌탈(임대)용이지만 더러는 개인 장비다. 강원도는 두메산골의 꿈나무들이 고가의 외제 수입품인 스키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이 학교에 매년 200만 원을 지원한다.

올해 졸업생 2명도 모두 스키 특기자로 고성중에 진학했다. 그 중 한 명은 이 학교 장영근 기사의 아들 희준군인데 지난 시즌에 딴 메달 집계로 전국 종합2위를 차지해 국비로 캐나다에 스키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장씨는 "국가대표 상비군의 99%가 흘리분교 출신"이라며 은근히 아들 자랑을 잊지 않는다.

실제로 흘리분교를 졸업해 스키부가 있는 고성중-고성고를 거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은 우리나라 스키 선수의 정통 입문코스로 꼽힌다. 흘리분교는 지난 2005년 스키선수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특기생으로 입학한 정국현 선수를 배출하는 등 그동안 국내 알파인 종목 명문학교로 손꼽혀 왔다.

흘리분교는 스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재응이 아빠와 엄마.
 재응이 아빠와 엄마.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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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흘리분교는 스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재응이 아빠 신득수(40)씨도 스키와의 인연으로 도회지를 등지고 이 곳 흘리로 '올라왔다'.

이곳 사람들은 간성읍이나 속초에서 흘리로 올 때는 '올라간다'고 하고, 반대로 간성읍이나 인제로 갈 때는 '내려간다'고 한다. 마을의 해발 고도가 600~700미터쯤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서울로 치면 도봉산과 삼각산 정상의 8, 9부 능선쯤 되는 높이다. 이승복 기념관이 자리잡은 평창의 두메산골과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인제군 용대리도 그 밑에 있다. 고도만 높은 것이 아니다. 위도 상으로도 동해안 7번국도의 38선 휴게소에서 북방 57㎞ 지점(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신씨가 흘리의 알프스스키장에 취업한 것은 지난 1991년. 간성읍에서 출퇴근하던 신씨는 재응이가 네 살 때인 4년 전에 흘리로 올라왔다. 스키장은 겨울이 성수기인데 눈이 많이 오면 출퇴근하기가 힘들어 아예 이사를 했다.

신씨는 최근 2년간 휴업한 기간을 포함해 17년 동안 스키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2년 전에 스키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직원이 100여명이 넘는 스키장 폐장의 여파는 100여 가구에 불과한 온 마을에 영향을 미쳤다.

흘리는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다가 요즘은 피망 재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피망을 재배하는 40여 가구가 매출 32억원을 올렸다. 그러나 주민들은 "피망 한 가지만 가지고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남쪽지방은 2모작를 하지만 여기는 고랭지라서 농사 기간이 고작 3개월로 짧다. 봄가을에 피망을 재배하고, 다행히 겨울에는 민박과 스키 렌탈로 수입을 올렸는데 지난 2~3년간 스키장이 문을 닫아 힘들게 지냈다."

"이젠 전학 보내려 해도 얘가 싫다고 해요"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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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스키장이 문을 닫자 흘리분교에도 찬바람이 쌩쌩 몰아쳤다. 스키장 운영 중단으로 전교생을 스키선수로 둔 학부모들은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겨울시즌 훈련비용은 물론 생계를 감당하기도 어렵게 됐다. 이로 인해 일부 선수들은 사실상 운동을 포기했고, 일부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2년 전 13명이었던 학생수는 10명으로 감소했다.

서로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꿰뚫고 있는 빤한 동네라서 부모는 재응이가 6~7살 때부터 '나홀로 입학생'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가졌다. 그러나 일터를 잃은 직원들이 간성읍이나 속초로 이사를 가는 통에 재응이가 혼자가 됐지만 스키장이 재개장하면 입학생이 늘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재응이를 흘리분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생각일까. 재응이 엄마 신승희(31)씨의 솔직한 토로다.

"예비 학부모 때는 솔직히 걱정했어요. 재응이도 처음에는 친구가 없다고 싫어했죠. 지금은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해 이제는 전학을 보내려고 해도 얘가 싫다고 해요. 도회지 얘들처럼 학원에 보낼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 보충을 해주기 때문에 방과후수업에 만족해요.

특히 교육 환경과 자연 조건은 더없이 좋아요. 공기 좋은 데서 차 조심 안하고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고 스키도 배울 수 있고. 재응이도 5살 때부터 배웠는데 그 해에 스키장이 문을 닫았죠. 스키장에서 일하는 아빠가 잠시 짬을 낼 수 있는 야간에만 스키를 태워서 재응이는 '스키는 밤에만 타는 것'으로 알았어요."

"나는 우리 학교의 영원한 쫄다구"

재응이의 독서시간.
 재응이의 독서시간.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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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응이에게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당분간은 친구나 또래 아이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읍사무소의 미취학 연령 인구통계에 따르면, 흘리에 6~7세 아이는 없고 그 아래로 4~5세 아이만 각 2명씩이다. 그중 한 명은 재응이 여동생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2년 동안 입학생이 없다. 재응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벌써부터 "나는 우리 학교의 영원한 쫄다구다"라고 푸념한다.

입학생이 없으면 규정상 흘리분교는 당장 내년부터 2학급으로 감소되고 교사도 2명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수업방식도 현재의 복식수업에서 1·2·3학년과 4·5·6학년을 통합 운영하는 '3복식 수업'으로 바뀐다.

결국 현재로서는 재응이가 쫄다구를 면하고, 흘리분교가 3학급을 유지해 3복식수업을 피하고, 학부모들이 더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전교생 스키선수들에게 훈련비용을 대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은 올 겨울에 스키장이 재개장하는 것이다.

신득수씨는 현재 다른 100여명의 직원들처럼 퇴직금을 받아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재입사가 되면 다시 스키장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신씨는 "스키장 재개장하고 관사만 잘 지어주면 많은 젊은 부부들이 흘리로 올라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 재응이에게도 또래 친구가 생기거나 적어도 쫄다구는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5년 전 '나홀로 입학생'에서 '나홀로 졸업생'이 된 차현준군

학부형이 조리사인 흘리분교 식당.
 학부형이 조리사인 흘리분교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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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스키장에 목매는 사람은 재응이네뿐이 아니다. 재응이의 같은 반 누나인 차현경양과 6학년 차현준군의 어머니이자 이 학교의 조리사인 박연옥씨도 재응이네와 같은 심정이다.

5년 전에 흘리분교에 나홀로 입학생으로 들어와 어느덧 내년이면 '나홀로 졸업생'이 되는 현준이의 아빠도 알프스 스키장이 직장이었다. 속초에서 살다가 미시령 터널이 뚫리기 전이라 겨울이면 출퇴근이 어려워 이사를 고민했는데 마침 사택에 빈집이 나서 흘리로 올라왔다. 그런데 직장이 폐쇄되어 현재는 택배일을 하고 있다.

박연옥씨의 직장은 겨울방학 스키시즌에는 선수 합숙소로 이용하고, 학기 중에는 급식소로 이용되는 학교식당이다. 현준이 아빠의 실직으로 어려운 때에 학교의 배려로 조리사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박씨는 본교의 영양사가 1주 단위로 식단을 짜고 재료를 공급해주면 그것으로 조리해 급식하는 일을 맡고 있다. 박씨는 요리 실력을 묻자 "실력은 딸리지만 정성은 듬뿍 담아서 조리한다"고 답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역시 대한스키협회에 등록된 스키선수인 현준이는 4월 모형 항공기 날리기 대회 출전하기 위해 학교에서 맹연습을 하다가 경사면에서 발을 접질러 목발 신세를 지고 있다. 현준이 역시 스키장이 문을 닫아 동계훈련을 못한 데다가 발목 부상까지 겹쳐 비만을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다.

박씨는 현준이가 6년 동안 학교를 혼자서 다녔지만 혜택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선생님도 혼자인 현준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등 거의 1 대 1 교육을 받았고 6년 동안 스키도 배웠다는 것이다. 박씨 역시 흘리 생활에 대해 묻자 "현준이를 학원에 보낼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다 좋다"며 "스키장이나 빨리 개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흘리의 중국집 자장면 냄새에 실린 스키장 재개장 소식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스키장이 문을 여는 것이 흘리 아이들의 꿈이자 어른들의 희망이다.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스키장이 문을 여는 것이 흘리 아이들의 꿈이자 어른들의 희망이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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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 사람들은 스키장의 재개장 가능성을 보도한 언론 보도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흘리의 한 식당에서도 분교에 취재온 기자라고 하니까 묻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에 스키장 재개장 가능성을 보도한 지역신문을 내보이며 관심을 내비쳤다. 식당 주인이 내민 지역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알프스리조트 운영업체가 그동안 정상화의 걸림돌이 됐던 지방세 체납분 5억8300만원을 전액 납부함에 따라 스키장 재개장에 청신호가 켜졌다. …알프스스키장 운영이 정상화될 경우 그동안 스키장 영업중단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인근 흘리지역 주민들은 물론 거진·대진 등 고성지역 겨울철 경기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비 한 마리가 봄 소식을 전해준다면 흘리의 스키장 재개장 소식은 새로 문을 연 중국집의 자장면 냄새에 실려오는 듯했다. 한동안 흘리에서는 자장면 맛을 볼 수가 없었다. 스키장이 문을 닫으면서 동네의 유일한 중국식당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자장면집이 장사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은 스키장 개장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덧붙이는 글 | 흘리분교 아이들과 어른들의 소원을 소개하는 '소원 우체통' 기사가 이어집니다.



태그:#나홀로 입학생, #흘리분교, #강원도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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