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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 있는 '갤러리에이스토리' 입구 및 서용선 전 홍보물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에이스토리' 입구 및 서용선 전 홍보물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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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갤러리에이스토리(A Story)에서 '서용선전'이 5월 27일까지 열린다. 서용선(徐庸宣 1951~)은 서울미대 교수로 다소 묻히고 소외되고 겉도는 사람과 그런 역사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그의 창작활동은 지금 정점으로 향하고 있다.

갤러리에이스토리(대표 우인호)는 작년에 문을 연 청담동에 위치한 화랑으로 네이처 포엠과 도보로 10분 거리 안에 있다. 또한 올 4월 문을 연 갤러리 PKM 트리니티와 K옥션과는 거의 붙어 있다. 요즘 청담동에 화랑가가 형성되고 있는데 미술애호가들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되었다.

도시 속 인간 그리다

'레오폴트 플라츠' 캔버스에 아크릴릭 415×215cm 2008
 '레오폴트 플라츠' 캔버스에 아크릴릭 415×215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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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의 주제는 '도시 속 인간'이다. 분주한 도시의 일상에 치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시에 흐르는 공허함도 느껴진다. 휑한 도시에서 점점 개인이 원자화되어 가는 모습도 포착된다. 이 작가는 도시의 밝은 면보다는 무심한 표정에 입을 꽉 다문 아웃사이더 같은 사람을 많이 등장시킨다.

이번 전에서 도시의 배경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뉴욕, 베를린, 북경도 포함된다. 나라마다 그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비슷한 점도 많을 것이다. 도심의 중압감, 각종소음, 교통체증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는 일과 등이 그것이다. '레오폴트 플라츠'는 베를린 지하철 풍경 같은데 그 표정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줄곧 도시에서 살아온 관찰자로서 이런 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전후(戰後)세대가 맛본 성장기의 빈궁함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어쨌든 그는 거창한 신화나 역사보다는 도시의 거리 같은 하찮은 일상에서 소재를 발굴하는 작가다.

벼랑 끝에서 외치는 사람

'소리치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259cm 2008. 작품의 주인공 속에 작가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부산전시
 '소리치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259cm 2008. 작품의 주인공 속에 작가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부산전시
ⓒ 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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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의 제목을 보니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벼랑 끝에 외치고 있는 이 그림 속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와 무관한가?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꽤 닮았다. 다만 작가는 우리가 잊고 있는 그런 삶의 단면을 진솔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의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주인공의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어 잘 알아볼 수 없다. 이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익명성 혹은 정체성의 상실을 풍자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암시하는 기호체계이자 상징이리라.

엉뚱한 생각이지만 작가와 그림 속 주인공은 서로 오랫동안 소통을 해온 둘도 없는 친구처럼 보인다. 힘들 때 도와주며 어려울 때 보살펴준 불가분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절망과 열망이 교차

'들여다보는 개' 캔버스에 유화 259×199cm
 '들여다보는 개' 캔버스에 유화 259×19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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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들여다보는 개'를 보자. 부조리 연극의 한 장면처럼 개와 사람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꿨다. 이런 작가의 즉흥적이고 엉뚱한 발상이 재미있다. 그도 좋은 작가는 공간을 적절하게 창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TV를 등진 채 초췌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 남자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헤아려야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사방이 꽉 막힌 채 분위기가 답답하고 썰렁한 건 작가가 모 잡지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6·25전쟁 후 미아리 공동묘지 근처에서 가족들이 군용텐트 속에 살아야만 했던 유년의 생존 공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일체의 비관주의는 없다.

하여간 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남자가 대책 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이렇게 삶의 절망에 빠진 자의 뒷모습에서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이 풍겨 나온다는 점이다. 이렇게 두 얼굴을 한 인간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색채로 인간의 심경 표현

'대화' 80×1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8
 '대화' 80×1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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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 '대화'의 주인공을 보자. 상황이 더 절박해 보인다. 제목이 대화인데 대상은 없고 혼자이니 누구와 대화를 하란 말인가. 도시인의 대화부족을 꼬집는 것인가. 이 사람은 이젠 삶을 즐길 만한 나이가 된 것 같은데 처지가 그렇지 못한가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근심과 걱정이 커지는 모양이다.

작가는 이런 그림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질감이 독특한 색채와 중첩해서 칠한 투박한 붓질과 단순하지만 관객의 눈길을 확 끄는 구조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낯선 남자도 잘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도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여건 속에서 망설이며 고민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은 바로 작가나 우리의 진솔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이렇게 작품을 통해 자꾸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다.

기존 인물화 해체하기

'관계' 캔버스에 아크릴릭 89×130cm 2008
 '관계' 캔버스에 아크릴릭 89×130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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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사람이 여럿 나오는 '관계'라는 작품을 보자. 기존 작품과 뭔가 달라 보인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람의 얼굴을 고기의 육질처럼 그렸지만 서용선은 탈과 얼굴을 해체시키고 그것을 다시 뒤섞어가면서 그 형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기법을 쓴다.

그의 작품을 얼핏 보면 민중화계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아니다. 그는 70년대 한국의 단색화가 보인 관념주의나 80년대 민중화가 보여준 현실주의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나보다. 체질상 관념이나 현실의 과잉이 그를 답답하게 한 모양이다. 그보다는 그 이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하여간 그는 관념과 현실을 통합한 또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인간의 절망을 말하되 희망을 잃지 않고, 현실을 그리되 당장 눈앞에 것만 그리지 않는 그림' 말이다.

관념과 현실이 융화한 새로운 길

'화합' 캔버스에 아크릴릭 360×220cm. 부산전시
 '화합' 캔버스에 아크릴릭 360×220cm. 부산전시
ⓒ 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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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이라는 멋진 제목의 이 작품은 이번 전에서 가장 돋보인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다면적으로 시각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의 숨은 의도와 열정이 골고루 잘 배합되어있다. 그의 창작활동에서 새로운 출발점 또는 전환점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제목을 보니 관념과 현실을 넘고, 갈등과 대립이 해소될 때 일어나는 하모니를 주제로 한 것 같다. 우리 정서에 맞은 오방색과 굵고 입체감이 나는 선을 그리고 한국의 탈이 주는 설화적 특징과 주술성을 최대로 살려냈다. 또한 관객을 그림에 끌어들여 여러 각도로 해석하게도 한다.

그의 그림 속에 담긴 다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걷어내고 역동적이고 유연하고 경쾌한 코드로 전환시켰다. 그러다 보니 약동하는 기운이 절로 샘솟는다. 누구는 그의 그림을 보고 섬뜩하고 무섭다고 하지만 이 그림을 보면 절로 신명과 흥이 난다.

겉으로 울고 속으로 웃는 자유인

'버티기' 캔버스에 유화 89×145cm 2008. 부산전시
 '버티기' 캔버스에 유화 89×145cm 2008. 부산전시
ⓒ 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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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으로 '버티기'라는 익살스러운 제목이 붙은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의 주인공은 대사 하나 없이 오직 몸으로만 버티는 무언극 배우 같다. 작가도 이제는 교수가 아니라 전업 화가로만 버티려고 하는 것인가. 하여간 그의 그림은 이렇게 인간에서 시작하여 인간으로 끝난다.

작가 서용선은 누구인가?


작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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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울 출생이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특선에 입상하여 화단에 등장한 이후, 20여 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열었다.

대표작으로는 '도시인'연작과 '노산군 일기' 연작 등이 있으며, 2001년부터 폐광촌을 무대로 한 예술 활동인 <철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http://www.kcaf.or.kr/art500/suhyongsun/
그가 미술을 택한 건 자유업이라는 말에 현혹되어서란다. 돈과 권력과 지위 등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 꿈인가 보다.

삶에는 고정된 것은 없고, 그 과정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후회 없이 달려온 그가 어느 순간 '인생은 별것이 아니고 그런 것이야'라고 하는 어떤 초탈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서 그의 작업도 한 단계 도약기를 맞은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이제 역설적으로 겉으로 우는 듯하나 속으로 씩 웃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인상을 준다. 하여간 그는 생존하는 삶(have)과 표현하는 삶(be) 중 후자를 택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를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화랑소개] 갤러리 에이(A)스토리 뜻: '아트(A) 이야기'가 있는 갤러리
서울주소 강남구 청담동 90-8번지 02) 512-5259 www.gastory.com
부산주소 중구 중앙동 2가 49번지 051) 245-5259 info@gastory.com
관람시간 10:00~19:00(평일) 10:00~18:00(일) 약도는 홈페이지 참조.



태그:#서용선, #갤러리 에이스토리, #프란시스 베이컨, #민중화, #단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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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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