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탁에 앉아 아버지를 인터뷰 중인 딸
▲ 아버지와 딸 식탁에 앉아 아버지를 인터뷰 중인 딸
ⓒ 박유미

관련사진보기



"아부지, 이번에 재혼에 대한 기사를 써 보고 싶은데요. 아부지 이야기 써도 돼요?"

"유미 공주님, 근데 왜 하필 아빠를 써?"
"왜냐면요, 우리 집이 재혼한 집 중에 제일 행복하니까!"
"응, 우리 집이 행복하지. 근데 재혼이라고 하지 말고 '다시결혼'이라고 하자."

이상은  휴대전화로 이루어진 '아부지'와 '유미 공주님'의 대화 내용이다.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이 둘은 서로 성이 다르다. 아버지는 심씨, 딸은 박씨. 그리고 여기서 '딸'은 바로 나다.

우리 집은 재혼가정이다.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시 지금의 아버지와 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게 2004년이니, 햇수로 5년째로 접어든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결혼에서 재혼 비율이 22.7%나 된다고 하니 그리 특이한 집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한 해 재혼 건수는 1980년대 1만2000여 건에서 1990년대 들어 2만여 건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4만2000여 건에 달했다. 그러나 재혼가정이 많이 늘어난 만큼 재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재혼 당사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 정립에서 어려움이 나타난다. 한국결혼문화원의 2007년도 조사에 따르면 '재혼생활의 저해요소 1순위'로 '자녀 관련 문제'를 꼽은 사람이 전체 223명 중 46%인 92명이었다.

필자는 딸과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는 아버지 심재석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재혼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계실까. 인터뷰는 16일 밤 9시, 대전 서구 우리 집 부엌에 놓인 식탁에서 이루어졌다.

"재혼 가정 말고, '다시결혼' 가정이라고 하자"

- 아부지, 아니 지금부터 심재석씨의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네, 시작해주십시오."

- 먼저 심재석씨께서 '재혼'이 아니라 '다시결혼'이라는 용어를 써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재혼'이라는 말은 불륜이나 돈있는 사람들의 축첩처럼 부정적 의미가 들어있는 부모 세대의 말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머니까 우리는 '다시결혼'이라는 새 말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다면 심재석씨의 '다시결혼' 과정을 한 번 소개해 주시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혼자 살 수만은 없다고 느껴서 지인들로부터 소개를 받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가 부모님 산소에서 정성껏 빌었더니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2004년 1월입니다."

- 딸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는지.
"그 해 삼일절 즈음이었는데, 집에 놀러갔다가 만났습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해 보인다'고 엄마한테 말해줬다고 해서 참 고마웠습니다."

- 딸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저렇게 감성적인 아이를 잘 따르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 어린아이인데 어른인 척 의연해 하는 게 눈에 다 보였어. 자기도 힘들면서 엄마가 원하는대로 하려고 하고."

- 근데 갑자기 반말이 되어버리셨네요?(웃음)
"아, 존댓말 계속 하기 힘들어. 그냥 이렇게 하자."

"당연하게 '아빠'라고 불러준 게 큰 힘"

지난 겨울여행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한 '아부지'
▲ 외할머니와 아버지 지난 겨울여행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한 '아부지'
ⓒ 박유미

관련사진보기


- 딸과의 관계가 좋아진 계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딸이 서울 기숙사에 있어서 가끔 보니까 서로 좋은 말만 해주고 잘 해주려고 애썼지.그리고 그동안 아빠도 딸도 성숙해졌고. 정신적인 합의점이랄까, 그런 걸 찾은 것 같아.  무엇보다도 딸이 착했고."

- 음, 또 계기가 있다면?
"호칭이 중요한 것 같은데, 가족이 되고 나서 바로 '아빠'라고 당연하게 불러준 게 참 컸어. 호칭에 거부반응이 있으면 친해지기가 참 어려운데. 그렇게 도와주는 자녀들이 흔치 않지. 그래서 난 우리 딸에게 '공주님'이라고 불러."

- 지금까지 딸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이야기해주세요.
"너 고등학교 때 승용차 안 태워주고 알아서 가라고 하는 것 때문에 엄마랑 많이 싸웠지. 딸로 인한 갈등이라기보다는 엄마와의 사랑방법 차이였어. 그렇지만 여러 번 다투고 이제는 미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엄마가 이해해주니까. 어쨌든 딸은 착해서 갈등도 없었어."

- 아버지가 딸에 관해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딸이 사는 데 자주 못 가보는 게 안타깝지. 멀리에서 학교 다니는데 어떻게 사는지도 알 수가 없고. 좋은 것 먹이고 따뜻하게 입혀서 키워야 되는데."

- 딸하고 성이 다르시잖아요. 어떠신가요?
"방금 관리사무소에 입주자카드를 쓰고 왔는데 네 성을 쓸까말까 고민이 됐어. 남들이 보는 시선이 아직도 곱지 않으니까. 나중에 청첩장 보낼 때도 '누구의 딸'인 '누구' 하고 이름만 쓰는데 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도 되고. 혹시라도 내 딸이 결혼할 때 남자 쪽에서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걸 알고 내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 지금이야 이혼이나 재혼이 보편화됐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아직도 그게 큰 수치심이야. 딸이 호적을 아빠 쪽으로 옮기는 걸 순순히 허락해줘서 참 고마웠지."

- 아, 평소에도 그런 불편함이 있으셨구나.
"특히 회사에서 가족관계를 써야할 때, 내가 다시 결혼했다는 걸 남들이 알아보니까 행동이 자유롭질 못하지. 지인들 말고 새로운 사람들 만날 때 부담이 돼. 나 스스로는 괜찮지만 사회적으로 인정이 안 되니까 조심스러워."

"가벼운 포옹 자주 하는 건, 자꾸 부딪혀야 정든다는 소신 때문"

거실에 앉아 포즈를 잡은 부녀
▲ 아버지와 딸 거실에 앉아 포즈를 잡은 부녀
ⓒ 박유미

관련사진보기



- 아버지랑 저랑 잘 하는 포옹 얘기 해주세요.
"우리 딸하고는 가벼운 포옹을 만날 때마다 하고 있지.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것이지만 현관 앞에서부터 포옹하고. '공주님, 반가워!'라고 말하면서. 사람은 자꾸 부딪쳐야 정이 가. 의례적인 행동만으로는 정이 들기가 힘들어."

- 또 아버지가 하는 노력이 있다면?
"전화 자주 하는 것. 서울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수다 떨면서 한 번 통화하면 30분씩도 하잖아. 사소한 것이라도 자꾸 대화를 해야 돼. 다른 친구들 보면 자녀랑 대화가 없어서 어색하게 지내는 사람 많아."

- 자녀와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은 조언이네요.
"양육은 단순히 먹여주고 재워주는 게 아니야. 자녀의 행복과 건강, 주관이 바로 서도록 틀을 잡아주는 것이지. 특히 우리처럼 각자 살아온 방식과 사고가 다른 사람들은 더욱 노력이 필요해."

- '다시결혼' 가정에 조언을 더 해주신다면?
"피로 묶인 가족보다는 함께 밥을 먹는 식구로서, 천륜과 인륜을 모두 소중히 생각해야 돼. 그리고 결혼은 자기 맘에 맞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맞춰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행복한 가정생활이 되고. 무엇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해야겠지."

인터뷰 시간은 총 1시간 30분, 인터뷰 전에 수다 떨기까지 합하면 거의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의 얼굴이 벌게지셨다.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에서 딸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따뜻하게 전해온다. '아빠가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남기고 거실로 옮겨가 다시 수다에 매진했다.

"아부지, 저는 아부지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한테 많이많이 자랑하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 아빠는 심씨, 딸내미는 박씨라도 괜찮아!
ⓒ 박유미

관련영상보기

덧붙이는 글 | '가족 인터뷰' 응모작입니다.



태그:#다시결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