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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교육기술과학부 장관. 사진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미국산 소고기 전면 수입개방에 따른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가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전국 16개 시·도교육감 긴급 회의 모습.
 김도연 교육기술과학부 장관. 사진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미국산 소고기 전면 수입개방에 따른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가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전국 16개 시·도교육감 긴급 회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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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치는 비밀경찰과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의 힘으로 유지된다.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의 5공 독재 시절 '중정'(중앙정보부)이나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는 전형적인 비밀경찰 조직이었다. 그들은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았다. 반면 이에 못지않은 독재정권의 전위 선전대로 문공부와 문교부가 있었다.  

최근 들어 유인촌 장관의 문광부에 이어 김도연 장관의 교과부까지 전형적인 독재 시절의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인촌 문광부 장관은 정권 출범과 함께 공공기관장 축출 작업을 벌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유 장관은 전혀 민주국가의 공직자답지 않은 발언과 표정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유신독재 시절의 문공부 장관을 떠올리게 했다.

3공과 유신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문공부 장관을 지낸 김성진씨는 10년 가까이 박정희의 신임을 가장 두텁게 받은 인물이다. 그는 최근에 박정희를 회고하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진희씨는 당시 어용지 수준이었던 서울신문사에서 문공부 장관에 발탁되었는데 전두환 독재가 가장 맹렬하게 기승을 부리던 시절 5공 정권의 당위성을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홍보했다. 그는 버마 아웅산 사태가 발발했던 시점의 문공부 장관이었다.

독재 시절 문교부 역시 문공부 못지않은 전위대 역할을 했다.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는 주로 학생들이 벌였다. 그래서 문교부는 본연의 업무인 교육정책보다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데 온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요즘 김도연 교과부장관의 발언을 보면 유신 시절 문교부장관 유기춘과 5공 시절 문교부장관 이규호 등이 했던 짓과 너무도 비슷한 것 같다.

유기춘씨는 유신 시절 학생들과 대립각을 가장 예민하게 세운 문교부 장관이었다. 당시 데모 학생들에게 불온 세력의 사주를 받는 집단이라고 곧잘 말하던 그는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학생들로부터 격심한 야유를 받은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규호씨는 연대 교수 시절부터 극우 발언을 많이 해서 학생들로부터 '문교부장관'감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는데 실제 문교부장관에 발탁되었다. 이는 당시 문교부 장관의 이미지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비과학적이고 비교육적인 교수 출신 교육부장관

"어떤 집단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린 학생을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학생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근거로 판단하게 했으면 좋겠다."(김도연 교과부 장관 <동아일보>(5월15일자) 인터뷰)

먼저 김 장관이 말하는 '어떤 집단'이란 누구를 지칭하는가? 그는 왜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일까? 모호하게 '어떤 집단'이라고 함으로써, 그 '어떤 집단'이 왠지 불온한 집단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가 말한 '어떤 집단'은 반미세력이거나 친북세력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점을 달리 하면 김 장관의 발언이 오히려 더 불온하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4일 저녁 서울 시청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4일 저녁 서울 시청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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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 장관은 촛불집회나 탄핵서명에 참가한 학생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어떤 집단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교수 출신 장관답지 않게 대단히 비과학적임과 동시에 교육을 관장하는 책임자답지 않게 비교육적인 것이라고 본다.

때 맞춰 교과부는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전교조를 질타하고 나섰다. 전교조가 '4·15 공교육포기정책반대연석회의'에서 제작한 미국산 쇠고기 위험 홍보물을 배포하는 데 대하여 "학교 자율화 반대를 외치다 슬그머니 광우병을 이슈화하고 특정인의 이름까지 거명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앞으로도 전교조가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학생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근거로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가 말하는 객관적인 정보란 누구의 정보란 말인가?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광우병에 대하여 무조건 안심하라고 하는 정부의 주장이 객관적인가, 아니면 그 위험성을 환기하는 주장이 객관적인가? 그리고 자기들의 정보만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는 근거는 또 어디 있는가?

역사도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하는 교과부

"우리는 자랑스러운 근현대사를 가졌는데 이를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역사 교과서나 역사 교육이 다소 좌향화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김도연 교과부장관이 14일 보수 단체인 '광화문 문화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것은 현행 중고교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우익단체의 건의를 받아들여 교과서를 수정 편찬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말이다.

김 장관의 이 발언에 이어 15일, 교과부 관계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 반시장적 표현을 수정해 달라고 건의하는 등 역사, 경제 교과서에 대한 문의나 지적이 많다"고 하고 "이에 따라 사회 교과 전반을 대상으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초중고 교과서는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초중고 교과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우익이나 친미 세력에게는 사실 이상의 우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이런 마당에 교과서를 우편향으로 바꾼다면 그것이야말로 입맛에 따라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를 자아낼 것이다.

다양성 인식 못한 70, 80년대식 발상

교과부는 정부가 교육 내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야말로 전형적인 독재정치의 가치관이다. 이것은 우선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근거 없는 선입견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는 무조건 우향우해야 옳다는 극우적 발상이기도 하다.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순수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좌편향'이니 '우향우'니 하는 이데올로기 수준으로 접근하는 일은 우리의 과거를 속이고 미래를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

교과서를 우향우시키겠다는 발상은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나온 70, 80년대식 사고 발상이다. 그런데 우리의 70, 80년대는 유신 독재와 5공 독재의 시기였다. 결국 교과서를 우향우시키는 일은 독재 시절로의 복고풍밖에는 되지 못한다.

문광부에 이어 교과부까지 정권의 선전 기관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한 나라의 문화나 교육은 유연하고 다양해야 하며 동시에 과학적이면서도 도덕적이라야 한다. 문광부나 교육부가 이런 미덕들을 방기한 채 일방적인 이념이나 정치 논리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하는 일만은 결코 다시 보지 말기를 원했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항일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교과부,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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