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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인들이 절대 다수인 인도와 네팔에서는 지금도 소를 죽이지도, 그 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또 소가 차도에 드러누워 있거나 인도를 가로막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소를 비켜간다.
▲ 네팔은 소의 천국 힌두교인들이 절대 다수인 인도와 네팔에서는 지금도 소를 죽이지도, 그 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또 소가 차도에 드러누워 있거나 인도를 가로막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소를 비켜간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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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한 곳은 네팔의 룸비니(Lumbini)로 알려져 있다. 싯다르타는 29세에 출가해 35세에 득도한 후 45년 동안 인도 각지를 다니며 포교하다가 80세에 입적했다.

역설적인 것은 석가모니가 네팔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불교를 창시했지만 정작 두 나라 모두 불교가 아닌 힌두교를 국교로 삼고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 모두 '만민평등'을 내세우는 불교도보다는 카스트라는 계급제도를 믿는 힌두교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두 나라에서는 힌두교인들과 불교도들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도에서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 사이의 분쟁은 종종 볼 수 있지만, 힌두교인들과 불교인들 사이의 분쟁은 들어보지 못했다.

희생양 바치는 힌두교와 살생 금하는 불교가 공존

특히 네팔에서는 불교사원 내에 힌두사원이, 힌두사원 내에 불상이 있으며 종교·예식 행사를 힌두교인과 불교인이 함께 거행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는 살생(殺生)을 금하지만 룸비니 소재의 불교 사원 경내에는 힌두교의 대표신인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으며 오랜 전통에 따라 동물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도 거행된다.

그래서 네팔의 힌두사원에 가면 휴일인 토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얼마든지 '피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양을 끌고 오고, 가난한 사람들은 닭을 들고 와 신에게 피를 바친다. 그러나 금기가 있다. 힌두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소를 죽이는 것이다.

소 숭배의 역사적 기원은 소와 연관된 힌두교 신화에서 찾기도 하고 소가 중시된 농경사회의 전통에서 찾기도 한다. 힌두교의 여러 신 가운데 특히 숭배받는 시바신은 흰색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또 농사에 절대적인 소를 사람들이 잡아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를 숭배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힌두교인들이 절대다수인 인도와 네팔에서는 지금도 소를 죽이지도, 그 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또 소가 차도에 드러누워 있거나 인도를 가로막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소를 비켜간다.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경기 포천 영북면의 한 한우농가를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경기 포천 영북면의 한 한우농가를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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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몸담은 사람이 맹세하는 '계'(戒)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오계(五戒)다. 즉, 5계는 살(殺)·도(盜)·사음(邪淫)·망언(妄言)·음주(飮酒)로부터 벗어날 것을 맹세하는 결의인데, 그 가운데 '살'(殺)이 가장 앞서 지켜야 할 '계'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관계로 본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행위는 결국 자기를 죽이고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불자가 지켜야 할 제1계(戒)로서 살생(殺生)을 금한 것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도 특히 소는 영물(靈物)이다. 절에 가면 벽화로 볼 수 있는 심우도(尋牛圖) 또는 시우도(十牛圖)는 인간의 본성 혹은 진리를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이다. 소가 곧 진리의 상징인 셈이다.

'진리의 소' 대신에 '미친 소'로 넘쳐난 부처님 오신 날

그러나 부처님이 이 땅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오신지 2552년이 되는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 속세는 '진리의 소' 대신에 '미친 소'로 넘쳐났다.

정부와 국회는 쇠고기 수입 논란을 '검역 문제'이니 '통상 문제'이니 하고 싸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쇠고기 수입 논란을 초래한 광우병의 본질은 자본의 욕망이 빚어낸 현대판 제국주의다.

광우병은 소가 본디 초식동물인데도 자연의 섭리를 망각한 채 '더 빨리 더 크게 키워, 더 많은 돈을 받고 죽이기 위해' 도축의 부산물인 뼈와 내장을 사료로 먹인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즉, 1차산업인 농축산업에서마저 '포디즘(Fordism)'을 구현하려는 끝없는 욕망의 컨베이어 벨트가 빚어낸 '미친 자본'의 축적체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친 소'는 인간의 무자비한 생명 경시와 무분별한 자연 파괴가 빚은 생태계의 반란을 상징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그러나 '포디즘'이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라는 거대한 부작용을 낳는 저차원적인 자본 축적체계로 판명이 났음에도, 상업자본과 결탁한 미국의 농업자본은 가축에 대한 규격화된 사육과 동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으로 끊임없이 농축산업의 공장화를 추구해왔다.

그것이 어디 미국 소뿐인가. 한국에서도 양계장(養鷄場)은 그 이름과는 달리 이제 더 이상 '닭을 기르는 곳'이 아니다. 삼계탕이나 튀김용 육계를 찍어내는 공장이라는 말이 더 합당하다.

사람에 의해 날지 못하게 된 이 새는, 이제 '더 빨리, 더 크게, 더 많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닭공장'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기 위해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살을 맞대고 밀집 사육된다.

인위적인 스트레스로 살만 찐 육계에게 면역력 저하와 항생제 투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는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니 닭이 미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말이 좋아 '살처분', 그건 '서울 대학살'이다

서울 광진구청 내 자연학습장에서 발생한 조류 폐사 사건의 원인이 'AI 감염'으로 인한 것으로 5일 밝혀진 가운데 6일 오후 광진구청 구청 관계자가 구청 정문에 설치된 방역발판에 소독제를 뿌리고 있다.
▲ 광진구청서 'AI' 발생..`방역 비상' 서울 광진구청 내 자연학습장에서 발생한 조류 폐사 사건의 원인이 'AI 감염'으로 인한 것으로 5일 밝혀진 가운데 6일 오후 광진구청 구청 관계자가 구청 정문에 설치된 방역발판에 소독제를 뿌리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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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에 서울시는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해 무려 1만5천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 했다.

농축산업과는 거리가 먼 대도시 서울에서 이런 대량 '살처분'은 처음이다. 이 또한 그 사정을 톺아보면, 서울 송파구의 개발예정지에서 닭 200마리나 혹은 오리 150마리를 기르면 상가 5평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는 욕망의 분출이다.

또 말이 좋아 '살처분'이지, 사실상 '서울 대학살'로 기록될 만한 비인도적인 집단 생매장이다. 아시아에서 AI가 맹위를 떨친 2004년에도 한국은 260만 마리를 '살처분'하면서 자루에 넣어 '생매장'했다. 베트남은 닭과 오리를 몽둥이로 때려죽여 매장했으며, 중국은 자루에 산 채로 담아 들판에서 휘발유를 뿌려 '화장'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몰려있는 이 '가정의 달'에,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명을 중시한 부처님이 오신 이 자비와 방생의 달에 가금류에 대한 비인도적인 집단 '살처분'이 태연하게 횡행하는 것은 집단적 비극이다.

결국 미친 소와 조류인플루엔자에서 보듯, 농축산업에서 포디즘을 구현하려는 기업형 축산은 효율이 좋은 것 같지만 끝내는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해결책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해법은 재협상뿐이다. 쇠고기 수입이 통상문제이건 검역문제건, 소의 월령이 30개월 이상이건 미만이건, 미국이 자국민과는 '다른 조건'으로 한국에 쇠고기를 파는 것은 현대판 제국주의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정부와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더 나은 조건'이 아니라 '차별의 시정'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불교의 '계'가 아니다

그리고 이참에 우리도 기업에서만 윤리적 경영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농축산업에서도 윤리적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불교의 '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엄연히 '법'으로 규정돼 있다.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함에 있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그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동물보호법 제3조)."

이 법에서 '동물'이라 함은 소·말·돼지·개·고양이·토끼·닭·오리·산양·면양·사슴·여우·밍크 등 척추동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동물을 가리킨다.


태그:#광우병, #조류독감, #부처님 오신날, #동물보호법,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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