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의 유택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선생님의 유택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 윤동규

관련사진보기


봄볕은 좋았으나 바람이 몹시 불던 지난 토요일(10일) 권정생 선생님 1주기(5월 17일)를 맞아 선생님의 유택에 다녀왔다. 환경을 생각하고,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꿈꾸는 친구들과 함께 했다. 북부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안동시 일직면에 내려 선생님 유택까지 3.5Km 정도 걷기로 했다. 차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걷기를 선택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걷고 싶었던 게다. 천천히 걸어 1시간 가량 소요되는 거리였다.

선생님이 종지기로 일했던 일직교회
 선생님이 종지기로 일했던 일직교회
ⓒ 정명화

관련사진보기


마을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만큼은 아니었다. 걷다 보니 선생님이 종지기로 일했던 예배당도 만날 수 있었다. 유택에 도착할 때까지도 유택인지 몰랐던 것은 아무런 표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문이 없으니 흔한 문패도 하나 없었다. 오로지 유택임을 알리는 것은 문 위쪽에 적힌 선생님의 이름 석자뿐이었다.

실제로 보니 너무나 작고 소박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오신 선생님의 체취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대문과 담장이 없으나 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애틋했다. 맑은 하늘도,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과일나무도, 키작은 꽃들도, 평상까지도. 어버이날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누군가 놓고 간 카네이션이 덩그러니 댓돌위에 앉아 유택을 지키고 있었다.

댓돌 위에 놓인 카네이션
 댓돌 위에 놓인 카네이션
ⓒ 정명화

관련사진보기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과 <녹색평론>통권 100호, <권정생의 삶과 문학>을 댓돌 위에 올려놓고 선생님께 술을 한 잔 올렸다. 그리고 묵상을 드렸다. 살아 계실 적에 선생님은 술을 가까이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보셨다면 아마도 호통을 치셨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등대지기'를 합창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노래였다.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새로 나온 책들
 새로 나온 책들
ⓒ 윤동규

관련사진보기


<우리들의 하느님> 가운데 한 꼭지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를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읽고 나서, 시인 김용락 선생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생전의 선생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다. 고맙게도 새로 나온 시집 <조탑리에서 주워들은 시답지 않은 시>에다 일일이 우리들의 이름을 써서 나눠주시기도 하셨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이런 논리라면 부자는 죄인이다. 나만,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한가. 그것을 두고 진정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걸까. 이웃에게 일어나는 불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힘쓰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권정생 선생님은 그의 저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늘 사유하고 살 것을 강조하셨다.

뒷간, 문을 열고 이곳에 앉으면 멀리 일직교회가 보인다고 한다.
 뒷간, 문을 열고 이곳에 앉으면 멀리 일직교회가 보인다고 한다.
ⓒ 정명화

관련사진보기


"말의 낭비나 돈의 낭비는 모두가 거짓을 감추려는 인간의 권위와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똑같은 음식도 단돈 천원에 사먹는 것보다 만원에 사서 먹으면 위대한 장부가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리 위대해봤자 인간은 역시 졸장부밖에 되지 못한다. … 자연을 망가뜨리고 더럽히는 건 인간의 욕심과 낭비 때문이다. 범죄를 만들고 쓰레기를 만드는 건 인간들뿐이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인생은 철새나 마찬가지인데 왜 세상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놓고 가는가?" - (<우리들의 하느님> 본문 66쪽)

어린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평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눈부신 햇살, 따뜻한 봄바람, 싱그러운 나무와 향기로운 꽃과 같은 자연이 우리에게 대가없이 지불하는 선물에 우리가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 찬란한 봄날,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욕심이 늘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권정생 선생님의 참뜻을 되새기면 좋겠다. 평생 아픈 몸을 이끌고 어쩌면 그리도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그토록 많은 작품을 쓰셨는지. 선생님은 가셨으나 빛나는 작품들이 우리 곁에 있으니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선생님의 참뜻과 만날 수 있다.

다음은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장 전문이다. 아픈 가운데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따뜻하고 겸허한 성품'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장 전문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쓰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태그:#권정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과 영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