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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괴담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떠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 일부 언론이 이 '괴담'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배후로 지목했다. 아마도 '괴담사냥'이 시작될 것 같다.

 

과연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은 무엇을 사냥할 수 있을까? 그들이 조준한 괴담의 진원지는 과연 어떻게 드러날까? 그 배후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흥미진진한 주제다.

 

실체 애매한 '괴담 사냥'

 

하지만 괴담 사냥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괴담의 전파 경로나 그 진원지 파악을 위한 기술적 어려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괴담의 판정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광우병(BSE)이나 인간광우병인 변형 크로이펠츠 야코브(vCJD)는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그 정체를 거의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질병'이자 전혀 '새로운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혀 새로운 패턴의 질병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전염성 질병의 발생 시기는 길게는 인류의 농경시대 초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익숙한 전염병들의 발생 시기는 의외로 얼마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재래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인류에게는 익숙한 고전적인 전염병인 천연두는 B.C 1600년 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볼거리는 B.C 400년경, 나병은 B.C 200년경이다.(<총,균,쇠>, 문학사상사, 1998)

 

그래도 이들 전염병들은 꽤 오래된 것들이다. 소아마비가 처음 유행한 것은 1840년경, 에이즈는 1959년에 처음 출몰했다. 광우병은 1987년에 처음 관찰됐고, 인간광우병인 vCJD가 영국에서 처음 보고된 것은 1996년이었다. 광우병은 발생한지 이제 20년, 인간광우병은 이제 10년 갓 넘은 신생 질병이다. vCJD가 광우병에서 옮겨온 것이 확인된 것은 그 보다 더 최근의 일이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이 새로운 것은 비단 발생시기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가축이나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 옮겨온 것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홍역은 소의 우역과, 천연두 역시 소의 우두와 가까운 친척 사이인 것이 밝혀졌다. 1969년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관찰된 라사열은 설치류에서, 에이즈는 원숭이에서 각각 옮겨온 것이다.

 

발생시기로만 보면 인간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엇비슷하다. 조류인플루엔자 자체는 100년 전쯤 발견됐다. 조류인플루엔자는 그동안 가금류와 돼지 사이에서만 전염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감염돼 사망한 것은 10년 전인 1997년이다.

 

하지만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은 질병의 패턴에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질병이다. 인류에게 익숙한 전염병들은 주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세균에 의한 것이었다. 20세 중반 이후 인류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한 질병인 암이나 신경성 질환은 인간의 내부 메커니즘 자체의 자기파괴적인 이상(異狀)현상에 따른 것이다. 유전적 질환이거나 혹은 유전자 구조가 오작동되면서 암세포를 만들게 된다.

 

이에 반해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은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발병 물질이다. 프리온은 소 같은 동물이나 인간의 뇌 등에 존재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변형 프리온이다. 이 변형 프리온이 정상 프리온에 영향을 줘 뇌에 구멍이 숭숭 뜷리는 것과 같은 해면상뇌증을 유발시킨다.

 

지금은 광우병 쇠고기 먹지않는 게 최선

 

프리온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생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백신을 만들 수도 없다. 세균에 의한 질환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는 치유책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유전적 질환이나 암처럼 인간 유전자나 생체 메커니즘에 기인한 것도 아니다. 기존의 암 질환이나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책이 필요한 새로운 질환이다. 인간의 자연치유력도 기대할 수 없다. 아직은 치료제도 없다. 이 때문에 일단 걸리면 치사율 100%의 치명적 질환이다.

 

반면에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의 발병 원인과 전파 경로 등에 대한 과학적 규명은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변형프리온이 포함된 동물성 사료 섭취를 광우병 발병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변형프리온을 섭취했을 때 걸린다는 정도가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인간 사이에서는 수혈이나 각막 이식 등을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최선의 대책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지 않는 방법뿐이다. 소의 연령이나 부위에 따른 변형프리온 유발 정도가 대략 추정되고 있어 인간광우병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소의 광우병 자체를 막기 위해서는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광우병이 꼭 동물성 사료 때문인 것인지, 광우병이 다음 세대로 유전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또 다른 전염경로는 없는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발병과 전염 메커니즘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까닭이다. 결국은 임상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학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쇠고기 수입 결정은 '영혼'이 빠진 선택

 

그래서다. 결국 이 문제가 어느 방송의 앵커가 지적한 것처럼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인 까닭은. 그 정체와 발병 및 전파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질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광우병 자체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초식동물에게 '동물사료'를 먹인 인간의 역리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장 확률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는 작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 유연하게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위험 가능성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가능한 한 엄격하고 조심스럽게 대응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전자를 선택했다. 문제는 그들의 선택에, 그런 선택을 한 관료집단에 '영혼'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불과 몇 달 전에 했던 말을 180도 뒤집고, 지극히 애매하고 미흡한 과학적 규명에도 불구하고 말끝마다 과학의 이름으로 이런 변신과 정책의 변화를 극구 강변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정운천 농림부 장관은 "몇 년 안에 광우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한미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고 말했다. "광우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까지 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광우병은 뇌를 공격한다. 영혼이 없는 존재는 뇌가 파괴된 존재와도 같다. 갈팡질팡하게 된다. 광우병 논란에서 확인하게 되는 이런 유사성이야말로 더 끔찍한 일이다.

 


태그:#광우병, #미국산쇠고기협상,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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