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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와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똑같습니다."

"3억 미국인과 250만 재미교포, 96개국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바로 그 쇠고기가 수입됩니다."

"1997년 동물성 사료 급여 금지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소는 단 한 마리도 광우병에 걸린 바 없습니다."

 

신문 1면을 장식한 '미국산 쇠고기 안전 광고'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 공동명의로 낸 신문 광고 내용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젊은 네티즌들이 행동으로까지 나서자 정부가 부랴부랴 낸 광고다.

 

이 광고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게 된 것은 어떻게 이런 광고를 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검역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나, 국민의 건강은 정부가 책임을 지고 확실하게 지켜내겠다는 문구가 없었다면 광고 내용은 마치 미국 정부나 미국 쇠고기 업자들이 냈을 성 싶었기 때문이다.

 

이 광고 카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미국산 수입 쇠고기'와 '미국사람이 먹는 쇠고기'가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할까?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니까 안심할 수 있다는 논리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미국사람들이 먹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미국사람들이, 96개국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쇠고기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신문 광고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은 정부가 책임지고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어떻게 책임지고, 지키겠다는 것일까?

 

"철저한 검역시스템을 갖추고 수입산 쇠고기 표시를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큰 30개월 이상된 소의 살코기의 수입은 물론 30개월 미만인 경우는 '편도'와 '소자' 두 가지만 뺀 나머지 광우병 위험 물질(SRM)의 수입도 허용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인 수입금지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앞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놓곤 개구멍 지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이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누구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인지, 누구의 입장과 이해를 대변하는 것인지 의아해하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과 같은 거센 비난 여론의 바탕이 되고 있다.

 

미국소 대변하는 한국 정부, 자국민 중시하는 일본 정부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해명 광고라는 것이 꼭 미국 정부나 미국 쇠고기 업체들이나 내놓을 듯한 내용과 논리로 구성돼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다. 아마도 미국산 쇠고기의 백기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일부 신문들이 제시하고 있는 논리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요령부득이다. 언론이야 자유로운 입장에서 그런 논리를 펼 수도 있다지만,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를 헌법상 으뜸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부처가 '미국인'들과 96개국 '세계인'들이 먹고 있으니, 우리도 먹어도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해도 되는가?

 

미국정부라면 한국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미국인들은 물론 다른 96개 나라에서도 즐겨 들고 있으니, 한국인들도 걱정하지 말고 드시라."

"1997년 동물성 사료 급여 금지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소는 단 한 마리도 광우병에 걸린 바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라고.

 

이웃 나라 일본은 이런 '미국산 쇠고기 안전 광고'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해 9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뒤를 이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지난해 11월 방미해 부시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가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 측은 '20개월 미만 살코기'로 한정하고 있는 수입 규제를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후쿠다 총리는 "'소비자', 즉 '일본 국민'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이를 거부했다.

 

일본 후생성은 올해 7월부터 20개월 미만 소에 대한 광우병 전두검사 비용 지원을 중단한다. 2005년 8월 식품안전위원회가 20개월 미만 소에 대해서는 광우병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해 이번 7월에 20개월 미만 소에 대한 광우병 검사비 지원이 중단된다.

 

그러자 후쿠시마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섰다. 중앙정부 대신 검사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개월 미만 소를 비롯해 모든 소에 대한 전두검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일단은 주민들의 안전이 중요하고, 그래야 지역에서 난 쇠고기의 안전에 대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라면 국민들에게 적어도 이 정도 서비스 정신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낸 '신문광고' 문안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신문 광고 문안에 비친 '정체성의 혼란'이 바로 민심의 이반을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닫는 것이야말로 '위기탈출'의 첩경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정부, #광우병, #미국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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