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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의 얼굴이 카드 게임에도 쓰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의 얼굴이 카드 게임에도 쓰이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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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미국의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피 말리는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두 후보 오바마와 힐러리의 입과 행동에 미국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뉴스의 초점이자 환호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 드러난 해프닝 하나가 이곳에 있는 심심한 호사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해프닝의 주제는 술, 주인공은 힐러리 클린턴, 무대는 바로 6일 민주당 프라이머리가 벌어질 인디애나다. 미국 공영방송인 NPR에 방송된 열혈 전사(?) 힐러리의 빡빡한 일과는 지금 후보들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힐러리는 보통 새벽 5시가 넘으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렇게 일찍 시작된 그녀의 바쁜 스케줄은 종종 자정을 넘기기도 하는데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힐러리가 유세를 마치고 난 뒤에 자신의 참모, 기자들과 함께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술을 마시는 일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술을 마시는 힐러리를 꼬집는 글이 종종 신문에 실리곤 한다. 

힐러리가 술꾼이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

오클라호마 대학 신문인 <오클라호마 데일리>에 소개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힐러리 클린턴과 행크 윌리엄스의 공통점은?"
"둘 다 위스키를 좋아한다."

20세기 미국 컨트리 음악의 대부인 행크 윌리엄스. 그는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뮤지션이다. 음악과 함께 늘 술을 끼고 살았던 행크 윌리엄스는 엄청난 술고래였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술 때문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행크 윌리엄스처럼 힐러리도 술꾼이 아니냐는 공격을 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것일까.

지난달 12일, 힐러리는 인디애나를 방문했다. 치열한 경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유세 방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유세를 마친 뒤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한 스포츠 바에 들렀다. 스포츠 바는 맥주 등의 술을 마시면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ESPN 등을 시청할 수 있는 술집을 말한다.

이곳에서 힐러리는 맥주를 마셨다. 이미 알려진 대로 힐러리의 지지 계층은 백인 블루 컬러인 노동자 계층. 힐러리는 이번 프라이머리에 참가하면서 맥주를 많이 마셔왔다. 노동자들이 주로 마시는 맥주를 그녀도 마심으로써 노동자와 함께한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마시는 맥주를 높이 든 힐러리(wonkette.com 화면 갈무리).
 노동자들이 마시는 맥주를 높이 든 힐러리(wonkette.com 화면 갈무리).
ⓒ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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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산 위스키 마셨다가 입방아에 오른 힐러리

사실 힐러리가 좋아하는 술은 레드 와인과 오렌지 한 조각을 띄운 강한 블루문 에일 맥주라고 한다. 하지만 힐러리는 자신이 선호하는 술 대신 물 같이 순한 맥주를 그 스포츠 바에서 마셨다. 그런 다음 바텐더가 권유한 캐나다산 고급 위스키인 크라운 로얄을 마셨다고 한다.

힐러리가 위스키 잔을 들고 건배한 다음 노련한(?) 술꾼의 모습으로 위스키를 들이키는 장면은 CNN 동영상이나 유투브 화면에 많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크라운 로얄이 미국산이 아니라 캐나다산이라는 점이었다. 힐러리를 공격하는 측에서 바로 이 점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 50개 주에도 속하지 않는데 힐러리는 그것을 몰랐을까. 캐나다에는 선거인단도 없어서 힐러리 표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텐데." (제이슨, 해리슨버그)
"미국산 잭 다니엘이나 짐 빔 등의 위스키가 있는데 왜 굳이 캐나다산을?" (누리꾼 Sindecuse)
"이러고서도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를 전면 개정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누리꾼 Aslan Aslani)

나프타는 힐러리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임 당시 가장 큰 업적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힐러리는 나프타 협정을 반대했고, 지금에 와서는 미국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를 개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런 힐러리가 캐나다산 위스키를 마신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고 미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막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캐나다산 위스키를 마셔? 차라리 데킬라를 마시지. 그러면 이곳에 있는 히스패닉 표라도 얻을 수 있지. 아니면 제임슨이나 존파워 같은 아이리시 위스키를 마시든가. 인디애나에 많은 아이리시계 표라도 얻을 수 있게." (매트 팰티, 오클라호마 대학 재학 중)

어쩌면 힐러리 역시 별 생각 없이 미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신다는 크라운 로얄을 마셨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의 수다스러운 입방아는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힐러리가 크라운 로얄을 마신 것은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라고. 바로 크라운 로얄 광고 문구가 그녀의 속마음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야." (매트 팰티, 오클라호마 대학 재학 중)

크라운 로얄의 광고 문구는 '양이 아니라 질(It’s about quality, not quantity)!'이다. 말하자면 여러 주에서 많이 이기는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큰 주에서 이기는 '질'이 더 실속 있다는 것이다.

현재 힐러리는 전체 대의원 수에서 오바마에게 뒤지고 있다. 하지만 본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대의원이 많은 큰 주,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뉴욕,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승리를 거둬 승자가 해당 주의 대의원을 전부 가져가는 승자 독식제가 적용되는 본선에서는 오바마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크라운 로얄 광고 문구가 그녀의 속마음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라는 비아냥은 이를 빗댄 것이다.

스포츠 바에서 크라운 로얄을 마시고 있는 힐러리.
 스포츠 바에서 크라운 로얄을 마시고 있는 힐러리.
ⓒ AP-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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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술을 보면 지지 후보를 알 수 있다?

이렇듯 힐러리가 마신 술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호사가들의 입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 발표된 CNN 여론조사 역시 이번 대선에 참가한 후보들의 지지 성향을 술로 분석한 바 있다. 즉 오는 11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매케인을,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민주당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그런데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찍는다는 민주당에서도 다시 표가 갈려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맥주를, 오바마를 지지하는 사람은 와인을 마신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이러한 속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맥주를 즐겨 마시는 중산층, 중하층 백인 노동자들은 오바마보다는 힐러리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고학력, 고소득 계층으로 와인을 주로 마시는 중상층 사람들은 오바마가 외치는 희망과 변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빌 클린턴 재임 당시 "나는 결코 집에서 쿠키를 굽지 않는다"는 말로 전업 주부 여성들을 욕했다고 하여 구설수에 올랐던 당시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그런 힐러리가 이번에 또 다시 캐나다산 위스키 때문에 구설에 오른 가운데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있다.  

그나저나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의 프라이머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맥주파의 승리로 끝날까, 아니면 와인파가 웃을까.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에도 대선 주자들의 얼굴이 쓰였다. 힐러리와 빌 클린턴 얼굴을 합성하여 만든 '힐빌러리'(위쪽)와 '뭐든지 할 수 있는 힐러리' 자석.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에도 대선 주자들의 얼굴이 쓰였다. 힐러리와 빌 클린턴 얼굴을 합성하여 만든 '힐빌러리'(위쪽)와 '뭐든지 할 수 있는 힐러리' 자석.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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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 대선, #힐러리, #오바마, #맥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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