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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가는 xx호 열차가 지금, 3번 타는 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안쪽으로…….’

 

3번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차의 소리가 경쾌하다. 나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매주 주말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음 주에 시험이 있거나 없거나 나는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마이 홈타운을 떠나 타지에서 살기 시작한지 벌써 4년차다. 한참 자유를 누리겠다는 의지로 주말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던 새내기 시절. “너 이번 주도 집에 안 오면 용돈 없다” 라는 짧고 강렬한 엄마의 메시지를 전환점으로 나는 주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 된 주말 기차여행은 졸업반이 된 지금 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즐거운 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칙칙폭폭 기차와 함께다. 기차에 들어서면 나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만 같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 역시 아무도 알 수 없다. 익숙한 것은 나뿐이다. 그래서 나에게 집중한다. 7호차 16석에 몸을 깊이 파묻고 이제야 나를 돌아보게 된다. 유리창에 비친 나를 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얼마나 정신없이 보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전공 공부와 외국어 공부, 과제에 치이면서 보냈다. 치였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둘째치고, 해야 할 공부, 읽어야 할 책,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채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만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창밖으로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을 보면서 나는 또 다이어리를 펼쳤다. 일주일 내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나를 속상하게 했던 것들을 적어보았다.

 

하나 하나 적다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고, 결국은 잘 해결된 일도 있었다. 별 것 아닌 것에 왜 그렇게 속상해 하고 우울해 했던지. 다이어리를 한줄 한줄 적어 내려가면서 짜증으로 가득했던 나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간다. 주말에 돌아가 쉴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고, 나를 반겨주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내가 있다.

 

요즘에는 ‘나’를 잊고 지내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입시준비에, 취업준비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잃고 살아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일등을 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간다.

 

너무 빨리 달리다가 발아래 돌부리를 놓치고 그만 넘어져 버리면 아예 결승선에 도착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결승선까지는 아직 수십, 수백 킬로미터가 더 남아있다. 끝까지 잘 완주할 수 있게 가끔은 옆도 돌아보고, 나를 스치는 바람도 느껴보자.

 

한창 나와 깊이 사랑에 빠져 들 무렵, 도착지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놓고 내리는 물건이 없도록 확인 하시고…….” 나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들은 7호차 짐칸 한편에 살짝 놓고 내려야겠다.


태그:#기차, #기차역, #여행,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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