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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군대 간 아들 앞으로 서울 강남구청에서 발송한 우편물이 날아들었습니다. 의아한 심정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5만원의 벌금을 납부하라는 '폐기물관리법위반 과태료 부과 고지서'였습니다.

금액 5만원
산출근거-2008.3.28 단속, 과세물건-가05778, 부과근거 폐기물관리법 제63조

고지서만을 보아서는 도무지 무슨 이유로 군대 간 아들이 벌과금을 내야 한다는 건지 알 수 없기에 해당 구청에 지난 4월 29일, 그리고 오늘(5월 2일)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아드님이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해서 현장에서 적발된 것입니다."
"아들은 지금 군 복무 중이고 단속 날짜에도 부대에 있었는데 어떻게 단속이 됐다는 건가요? 누군가 제 아들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난해도 똑같은 일을 겪었거든요."

"그렇다면 그 내용을 증명할 수 있게 아드님의 소속된 부대에서 소재증명을 떼어 구청으로 보내주세요. 그러면 됩니다."
"단속공무원이 도용 여부를 확인 했나요? 주민등록증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보셨냐구요."

"그러니까요. 아니라면 소속부대에서 소재증명을 떼어 보내주시면 된다니까요."
"단속을 잘못해서 잘못된 과태료를 부과하고 시민에게 스스로 무고를 밝히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단속을 잘못했으면 그쪽에서 책임을 지고 삭제를 시켜주셔야지요."

"시민 스스로 무고 밝힐 기회 있다"고만 반복하는 공무원

사진대조와 발급일 확인으로 도용 여부를 알 수 있는 현행 주민등록증. 주민등록증 하단에 발급일이 나와 있습니다.
 사진대조와 발급일 확인으로 도용 여부를 알 수 있는 현행 주민등록증. 주민등록증 하단에 발급일이 나와 있습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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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전화 통화한 공무원은 '단속 시 본인 확인 절차'에 소홀했던 것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시민 스스로 무고를 밝힐 기회가 있다는 것만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무고가 밝혀지면 잘못된 단속을 한 공무원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 아직까지 무고라고 볼 수 없어 뭐라 말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단속하다가 그렇게 된 것을 가지고, 뭐 그렇게(피해보상)까지 할 것이 있냐"고 합니다.  

물론 과태료 문제야 어떻게든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걱정되는 것은 이미 두 번이나 도용되어 나쁜 일에 사용된 아들의 분실된 주민등록증입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누군가 아들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또 다른 나쁜 일에 사용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중대한 피해를 군에 있는 아들이 보게 될지도, 혹은 이미 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보통 신용카드를 분실했을 경우 신고를 하면 카드의 사용이 정지됩니다. 습득한 카드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금융사고로 이어지므로 이에 대한 방비가 튼튼한 것이지요.

주민등록증의 경우는 어떨까요? 아들의 경우를 가지고 몇 군데 관련기관에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경찰 "일일이 해명해야 하는 불편 있겠죠"

우선 경찰서에 도용 사실을 알리고 지속적인 도용을 막을 길이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남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범죄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드님이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잡혀오지 않는다면 특별히 적발해내기는 힘들지요. 분실신고를 하셨다면 재발급 전에 사용하던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범죄나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다만 일일이 해명을 해야 하는 불편은 있으시겠지요."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피해를 상담해준다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개인정보침해피해 신고센터(상담전화 1366)에도 알아보았습니다.

"단순명의 도용이라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지 않는 한 수사를 해서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구요.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 쪽에서 이를 세밀히 보고 도용 여부를 가려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지금으로서는 분실신고를 다시 하시는 것만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경찰서나 개인정보피해신고센터의 말처럼 분실신고를 해야 도용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하니, 지금 도용되고 있는 주민등록증의 효력이라도 상실시키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습니다.

"두 번 재발급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지금 분실신고를 하시면 아드님이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증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주민등록증을 보면 발급일자가 나오지요? 발급일자를 시스템에 넣어보면 분실된 것인지 재발행된 것인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분실신고 했지만 편치 않은 마음

동사무소에서 분실신고를 했지만 어쩐지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아들은 벌써 두 번이나 '주민등록증 도용 피해'를 입었고, 두 번 모두 해당 공무원이 '본인확인 절차'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경찰서에서도,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서도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 쪽에서 세밀하게 도용여부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현실에서는 이런 원칙이 재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실물대조나 재발급 일자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서 발생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공무원들에게 원칙에 입각한 단속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길 바랍니다.

전자주민증 사용하면 이 같은 사고 막을 수 있을까?

지난해 행자부에서 제시한 '전자주민증' 시제품. 위변조는 막을 수 있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 여론이 강하다.
 지난해 행자부에서 제시한 '전자주민증' 시제품. 위변조는 막을 수 있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 여론이 강하다.
ⓒ 행정자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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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머지 않은 장래에 전자신분증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자신분증이 시행되면 이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요?

위변조와 도용방지를 위한 새로운 신분증인 전자주민증의 도입도 가시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전자주민증의 경우,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전국민이 전자주민증을 소지하고 있다면 아들의 경우와 같은 도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지금과 같은 행태로 신분 확인을 하게 된다면 그 어떤 첨담 시스템도 도용을 막을 길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주민등록증 도용의 피해를 겪으며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신분확인 절차 중 몇 가지만 절처히 지켜져도 쉽게 별 죄책감 없이 남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원칙을 소홀히해서 봉변을 당하는 일을 적지 않게 겪습니다. 큰 돈이 드는 것도, 큰 수고를 하는 것도 아닌 단지 원칙을 지키는 일, 시민으로서 공무원들에게 이런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까요?


태그:#주민등록증 도용, #전자신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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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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