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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조암은 설악산 흔들바위를 앞마당에 두고 있습니다. 참선 수행을 하거나 염불을 하던 스님들께서도 이따금 흔들바위를 흔들며 심신을 다지는 가 봅니다.
 계조암은 설악산 흔들바위를 앞마당에 두고 있습니다. 참선 수행을 하거나 염불을 하던 스님들께서도 이따금 흔들바위를 흔들며 심신을 다지는 가 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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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야 보이지 않았지만 감정의 프리즘을 통해 다가오는 봄 설악의 풍경과 바람은 신록빛깔 싱그러움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뭇잎,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는 아름드리 고목, 우두커니 앉아있는 바윗덩이를 휘감고 불어오는 산바람에선 신록의 싱그러움이 뚝뚝 떨어질듯 상쾌한 빛깔이며 느낌입니다.  

설악산 주차장에서 신흥사를 지나 계조암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고 느낀 내설악의 봄은 몸뚱아리에는 물론 마음에조차 싱그러움이 물들 것만큼이나 청초한 연록빛깔입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일 년 내내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는 게 설악의 사계며 산 빛이지만 요맘 때, 햇순이 얼마쯤 자란 이맘 때의 산 색깔은 마음까지 씻어줄 만큼 깨끗하고 편안한 빛깔입니다.  

신흥사를 지나 계조암까지 가는 길은 멀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산책로 같은 오솔길로 40여분 만 걸어가면 되는 거리입니다. 돌길인가 싶으면 흙길이 나오고, 평지 길인가보다 하며 모퉁이를 돌아가면 계곡과 나무 계단이 나오니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걸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하고 가까운 길입니다.

눈에야 보이지 않았지만 감정의 프리즘을 통해 다가오는 봄 설악의 풍경과 바람은 신록빛깔 싱그러움이었습니다.
 눈에야 보이지 않았지만 감정의 프리즘을 통해 다가오는 봄 설악의 풍경과 바람은 신록빛깔 싱그러움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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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하면 함께 떠오르는 말은 울산바위와 흔들바위 일겁니다. 둘레가 10리를 넘어 대한민국에 있는 바위 중에서 가장 크다는 울산바위는 아무리 봐도 웅장하고 대단합니다. 황금가락지에 박혀 보석으로 드러나는 금강석처럼 울산바위도 연녹색을 띠고 있는 설악산세에 도드라진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설악산 = 울산바위 = 흔들바위 = 계조암 

사방팔방이 푸른빛이니, 저절로 눈길이 쏠리는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계조암이 있습니다. 싱그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산길을 타박타박한 발걸음으로 여유롭게 올라가다 보면 설악산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상징, 흔들바위를 산사의 풍경으로 담고 있는 작은 암자 하나가 바로 계조암입니다. 

계조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산내암자로 신라시대인 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니 1300년을 훌쩍 넘긴 고찰입니다. 절 이름이 계조암(繼祖庵)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당대의 최고 선지식인으로 조사(祖師)의 칭호를 받은 동산, 각지, 봉정에 이어 의상대사, 원효대사 등이 법맥이 끊이지 않게 계속하여 수행을 하였던 도량이기 때문이랍니다.

신록의 싱그러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울산바위는 가락지에 박힌 금강석처럼 도드라집니다.
 신록의 싱그러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울산바위는 가락지에 박힌 금강석처럼 도드라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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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으로 다녀왔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설악산 여행으로 다녀왔거나 대개의 사람들이 한두 번쯤은 다녀오고 흔들어 봤을 흔들바위는 한사람이 흔들어도 흔들, 두 사람이 흔들어도 꼭 같은 크기로만 흔들거리니 궁금증만을 더해주는 오묘한 바위임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커다란 바위가 언제부터, 어떻게 그곳에 올려져있는지, 한 사람만이 밀어도 흔들리는 바위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흔들었음에도 어떻게 굴러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을 수 있는지는 물리적으로야 설명 할 수 있겠지만 선뜻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냥 신기하게만 보이는 흔들바위지만 과욕을 부리면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도 몽땅 잃게 되는 화가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심오한 전설을 가르침으로 담고 있습니다. 생각 없이 흔들어 보는 바위가 궁금증과 재미만을 가져다준다면, 전설을 떠올리며 흔들어 보는 흔들바위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가르침을 전하는 훈장의 모습이며 죽비를 후려치는 고승의 근엄함입니다.

계조암은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계조암은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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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칠석이 되어 일 년 만에 직녀를 만날 수 있게 된 견우는 딱 하루가 아닌 좀 더 여러 날을 직녀와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꾀가 떠올라 하늘닭(天鷄)을 찾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간장이 녹도록 오매불망하며 일 년이나 기다렸다 딱 하루라는 짧은 시간만을 만나고 헤어져야 하니 누구라도 그랬을지 모를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흔들바위가 후려치는 죽비소리 '소탐대실'

만나자 이별을 해야 하는 절박하고도 애틋함이 있으니 일 년 동안의 안부를 묻고 사랑을 나누기에도 모자랄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고, 홰치는 울음소리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천계를 찾아가 구구절절하게 사정하고 뇌물까지 건네며 내일 아침엔 제발 울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답니다.

두 사람의 운명, 견우와 직녀가 나누고 있는 기구한 사랑이야기를 전해들은 천계는 구구절절한 애틋함에 감복을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뇌물에 눈이 어두워서 그랬는지 그들의 청을 들어주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뇌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위에 앉아 계시던 구암스님께서는 ‘어여 와요’하며 맞아 줍니다.
 바위에 앉아 계시던 구암스님께서는 ‘어여 와요’하며 맞아 줍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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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가 건네는 뇌물이 천계의 손으로 넘겨지는 순간, 뇌물을 건네받고 있던 하늘닭은 물론 견우와 직녀조차 몸뚱이가 굳어서 바위가 되었다고 하니, '아~' 슬프고도 가슴 섬뜩해지는 전설입니다.

무수한 세월이 흐르고, 솔바람처럼 전해지던 전설조차 잊혀지면서 하늘닭이 굳어서 형상을 이뤘던 천계암은 한사람이 흔들어도 흔들리는 흔들바위가 되었고, 견우와 직녀가 굳어서 된 바위는 아직도 부부가 입을 맞추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부암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견우와 직녀가 건넜을 오작교 역시 설악산 계곡 어딘가에 다른 전설이나 형상으로 전해지고 있겠지만 흔들바위가 들려주는 가르침은 천윤이거나 인륜이거나를 거스르는 욕심은 제아무리 애절한 사랑일지라도 모든 걸 잊게 된다는 것을 후려치는 죽비소리로 담은 '소탐대실’의 가르침입니다.   

계조암의 법당은 목탁처럼 속이 텅 빈 바위아래 있는 굴법당으로 확장 불사를 하고 있었으며 500나한을 모시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조암의 법당은 목탁처럼 속이 텅 빈 바위아래 있는 굴법당으로 확장 불사를 하고 있었으며 500나한을 모시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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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조암이 자리하고 있는 흔들바위에 다다르면 하늘을 가리던 울창한 숲, 눈길 심심할 까봐 끊이지 않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올망졸망한 바윗돌들이 읍하는 자세로 사라집니다. 울산바위의 웅장함은 계조암을 외호하는 불보살들의 모습으로 다가와 있고, 흔들바위에 깃든 전설은 천년을 이어온 법문으로 들려옵니다.

계조암 법당은 바위 속 목탁법당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이나 금강문도 세운 적 없다는 계조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뎅~뎅~'거리며 울어 줄 범종이나, 축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둥~둥~'거리며 울려 퍼질 법고 또한 없는 도량이지만 계조암은 어느 산사, 어느 도량에도 없는 '목탁법당'이 있어 기도의 가피력이 천지간으로 울려 퍼지는 청정한 산사입니다. 

흔들바위가 올려져있는 마당바위가 법당 마당쯤 되는 계조암에는 대여섯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을 것 같은 삼성각과 스님들이나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요사 한 채만 있을 뿐 별다른 전각은 보이지 않습니다.   

커다란 굴법당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작은 굴법당이 또 한 곳 나옵니다.
 커다란 굴법당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작은 굴법당이 또 한 곳 나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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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굴법당 안에 걸려있던 현액은 추사 김정희가 머물렀던 흔적으로 남겼을 거라고 생각되는 ‘무량수’ 였습니다.
 작은 굴법당 안에 걸려있던 현액은 추사 김정희가 머물렀던 흔적으로 남겼을 거라고 생각되는 ‘무량수’ 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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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조암의 법당은 자연동굴, 울산바위의 뿌리일 것 같은 커다란 바위, 목탁을 닮은 모습이어서 '목탁바위'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목탁 속처럼 비어있는 동굴에 부처님을 모신 굴법당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물 댓 평쯤의 넓이어서 조금은 비좁아 보였다는 굴법당이 지금은 오십여 평의 넓이로 확장하는 불사 중이었습니다. 땅 위에 지은 법당도 아니고, 지하공간을 쉽게 확보 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굴법당을 넓힐 수 있는 것은 초자연의 월력이며, 1300여년을 이어온 조사들의 법력과 불자들의 기도라고 밖에 설명 할 수 없는, 천재지변의 형상으로 다가온 전화위복의 불사입니다.

다른 도량에서 10년 공부할 것도 계조암에서 하면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행하기 좋고 기도 가피가 있는 굴법당은 좁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었는데, 3년여 전에 있었던 집중 오후에 법당 뒤쪽이 무너지는 산재가 발생하였고, 손상된 법당을 수리하다 보니 감춰진 뒤쪽 공간이 발견되어 넓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공간만 넓어지는 게 아니라 불사를 마무리하며 부처님을 봉안하면 법단이 될 자리에는 한 줄기의 자연광이 비출 만큼의 통풍구도 생겼으니 천재지변처럼 다가온 오묘한 기회를 발심하고 귀의하기에 제격인 법당으로 불사 중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겉으로 보이는 법당인 삼성각 앞마당에는 흔들바위가 있고, 흔들바위와 삼성각 사이에는 여근을 닮은 ‘잠지바위’ 잠지바위와 조화를 맞추기 위해 깎아 세운 ‘꼬추석’이 보입니다.
 유일하게 겉으로 보이는 법당인 삼성각 앞마당에는 흔들바위가 있고, 흔들바위와 삼성각 사이에는 여근을 닮은 ‘잠지바위’ 잠지바위와 조화를 맞추기 위해 깎아 세운 ‘꼬추석’이 보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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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비는커녕 경운기 하나 들어갈 수 없는 산지에서 불사중이니 이래저래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다고 믿고 있는 부처님의 가피, 많은 사람들의 정서적 가치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불심과 보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하루를 기도하고, 하루를 염불하며 불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흔들바위 바로 위쪽에 있는 굴법당이 큰 목탁 법당이라면 조금 위로 올라가니 규모가 훨씬 작은 굴법당이 또 하나 있습니다. 굴법당 안에는 걸려있는 무량수(無量壽)라는 현액은 추사 김정희의 필적이었으니 불가의 귀의를 한 적이 있던 추사 김정희도 이곳 계조암에서 수행하였다는 흔적으로 남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음을 모실 수 있는 기회

어딘가에 마음을 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지 모릅니다. 쉬운 일이 아니기에 흔적을 남기거나 마음을 둔다는 것이 중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계조암에 불사중인 굴법당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뛰어난 제자였던 500나한을 봉안한다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500나한이 될 수는 없지만 500나한 중의 한 분을 내 이름과 내 마음으로 모신다면 찾아가거나 생각하는 설악산, 울산바위와 흔들바위, 목탁법당과 내 마음이 있는 계조암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듯합니다.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감정의 프리즘을 통해 보면 설악의 봄바람이 산록빛깔 싱그러움이듯 몸뚱이로는 느낄 수 없지만 믿음의 프리즘을 통해 보면 행복빛깔 여유로움이 보일 것 같은 도량입니다. 

잠지바위의 오목한 곳에 털썩 주저앉아 허허롭게 웃고 계시는 스님의 얼굴에선 동자승의 해맑음과 산승의 계율이 엿보였습니다.
 잠지바위의 오목한 곳에 털썩 주저앉아 허허롭게 웃고 계시는 스님의 얼굴에선 동자승의 해맑음과 산승의 계율이 엿보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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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는 구암스님께서는 격식을 갖춘 법문을 대신해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곳곳에 깃든 전설과 구전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여성의 음부와 비슷한 형상이라 '잠지바위'라고 한다는 바위 옆에 세운 '고추바위'를 설명하며 형상을 뛰어넘는 조화와 균형을 들려주십니다.

잠지바위의 오목한 곳에 털썩 주저앉아 허허롭게 웃고 계시는 스님의 얼굴에선 동자승의 해맑음과 산승의 계율이 엿보입니다. 스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자궁과 여인네의 질펀한 그곳이 연거푸 연상되는 건 세속인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의 부엽초려니 하며 달래봅니다.

덧붙이는 글 | 설악산 계조암의 연락처는 전화 (033)636-7188번 입니다.



태그:#계조암, #설악산, #울산바위, #흔들바위, #굴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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