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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마리엔 광장(Marien platz)이나 뮌헨 구시가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 사이로 짙고 선명한 채도의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가끔 그 하늘에 파란 양파 모양을 한 두 개의 탑이 시야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아내가 노이하우저 거리(Neuhauser Strasse)에서 독일의 가게들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신영이와 손을 잡고 이 양파 모양의 탑을 가진 성당을 찾아 카우핑거(Kaufinger) 거리로 들어섰다. 

차가 통행하지 못하는 카우핑거 거리의 건물들 사이로 성당의 탑과 주황색 지붕이 보였다. 유럽의 많은 성당들이 나의 눈을 압도하듯이 정면에 서서 바라본 프라우엔 교회(Frauen kirche)도 나의 눈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솟은 후기 고딕 양식 탑의 웅장한 모습이 더 없이 시원했다.

이 프라우엔 교회는 역사적으로나 그 외형상으로나 뮌헨의 상징 같은 건물이고, 뮌헨 그림엽서에서 뮌헨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서 자주 등장한다. 현재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가 이곳에서 대주교를 역임했기 때문에 이 성당에 대한 뮌헨 사람들의 사랑도 각별하다고 한다.

뮌헨의 상징적인 성당으로 탑의 모양이 인상적이다.
▲ 프라우엔 교회. 뮌헨의 상징적인 성당으로 탑의 모양이 인상적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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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100m에 이르는 이 성당은 독일 남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딕 건축물이다. 원래 13세기에 이곳에는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예배당이 있었다. 1468년에 이곳에 다시 성모교회인 성당을 짓게 된 후 1488년에 쌍둥이 탑이 완공되면서 현재의 건물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현재 유명세를 더하고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양파 모양 돔은 1525년에 추가되었다. 고딕 양식은 창과 같은 뾰족한 모습으로 하늘을 찌르지만, 고딕양식인 프라우엔 성당에서 유독 탑만이 뾰족하지 않고 둥그런 돔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다양하고 특이하게 보이는 돔의 형태가 이 성당의 유명세를 결정했을 것이다. 나의 여행 경험에 의하면 진짜 양파 모양으로 생긴 교회 건물들은 러시아와 동유럽 슬라브 민족들의 러시아 정교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라우엔 교회의 초록빛 청동탑 양파 모양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바위 돔 교회'를 모델로 하여 지어진 것이다. 프라우엔 교회의 둥그런 탑은 인도 사람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터번 같기도 하고, 맥주잔에 넘치는 맥주 거품같이도 보인다.

성당 벽면 벽돌의 붉은 색과 청동 돔의 세월에 바랜 푸른빛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급경사를 이루는 지붕의 주황색이 더해지고 있었다. 성당 외부의 색상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화려한 듯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단감이 익어가는 색깔처럼 잘 익어 있었다. 성당을 쌓아올린 단조로운 벽돌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 심미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성당의 쌍둥이 탑은 멀리서 보면 그 높이가 같은 듯 보이지만, 북탑 높이가 99m, 남탑 높이가 100m로 그 높이가 다르다. 쌍둥이탑 중 한쪽 꼭대기의 전망대에는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성당 정문의 매표소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수백 년 역사의 프라우엔 탑은 나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인연을 베풀지 않았다.

한 나라의 건축물은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자연스럽게 닮는 법이다. 교회 내부는 검소하고 절제할 줄 아는 독일 사람들의 국민성을 닮아 있다. 교회 내부는 유럽 다른 나라의 성당들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더 인상적이다. 교회 내부 벽면은 별다른 장식이 없고 온톤 흰색으로 칠해진 온통 새하얀 세상이다. 교회 천장도 군더더기 없는 흰색이며 골조를 이루는 벽돌의 선만이 깔끔하게 이어질 뿐이다. 성당 내부 양쪽에 쭉쭉 솟아 있는 팔각기둥도 모두 흰색이며, 성당의 회랑 사이로 이 거대한 기둥이 22개나 이어지고 있었다.

교회 입구에는 '악마의 발자국'이라고 불리는 발자국이 찍혀 있는 돌이 있고, 많은 여행자들이 그 돌의 발자국 안에 발을 넣어보고 있었다. 이 발자국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 성당을 지을 때 악마가 내려와서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1개만 만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당을 건축하던 사람들은 빛을 많이 받아들이면 더 좋다고 생각해서 창문을 여러 개 만들었고, 성당이 완성된 후 내려온 악마는 한 발자국만을 떼고 성당 내부를 바라보았는데 창문이 하나만 보였다는 것이다.

악마는 창문이 하나인 것을 알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을 강하게 밟아 발자국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 악마의 발자국에서 성당의 앞을 보면 각도 때문에 중앙에 있는 창문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발자국에 발을 넣어본다. 이 발자국을 밟았을 때 발의 크기가 일치하는 사람은 악마일 가능성이 많으니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물론 꾸며낸 이야기지만 알고도 속아주는 것이 여행자들의 마음이다. 나는 저 발자국을 실제로 남긴 사람은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프라우엔 성당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자신의 발자국이 계속 악마의 발자국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색의 성당 안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 프라우엔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백색의 성당 안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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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두려워했다는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고딕 건물답게 세로로 높게 세워진 창문에는 '수난의 크리스트'가 총천연색으로 창문의 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곳곳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님의 길을 나타내고 있었다. 백색의 깔끔함 성당 내부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색상은 햇빛을 머금으면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말 얄미울 정도로 잘 구성된 건축물 앞에서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고통스런 예수님상이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 천장의 예수님상. 고통스런 예수님상이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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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당시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복구된 성당 내부에는 대제단의 '마리아의 승천'을 그린 성모화와 성모상, '십자가의 예수'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이 남아 있다. 나는 성당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십자가상이 철심에 매달려 있었다. 공중에 부양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이 예수상은 신자들과 여행자들을 위에서 굽어보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예수님의 고통스런 모습! 발상의 전환으로 만든 이 예수님 상은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당 정문 쪽에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의 지배자였던 비텔스바흐(Wittelsbach) 왕가의 묘소가 있다. 1328년 왕위에 등극한 바이에른의 위대한 왕 카이저 루트비히 4세의 묘 (Prunkgrabmal fur Kaiser Ludwig den Bayern)는 1622년에 완성되었다. 검은 대리석 묘비의 사면에는 철갑 병사들이 황제를 상징하는 휘장을 들고 있고, 중앙에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루트비히 4세의 동상이 조각되어 있다.

바이에른의 위대한 왕의 묘가 성당 내에 자리하고 있다.
▲ 카이저 루트비히 4세의 묘. 바이에른의 위대한 왕의 묘가 성당 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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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묘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위대한 왕이 범접하기 어려운 왕릉의 땅 속에 묻힌 것이 아니라, 성당에서 언제라도 접할 수 있는 왕의 묘에 묻혀 있었다. 그 왕의 묘는 빛나는 대리석으로 지상에 돌출되어 있으며, 유명 조각가의 손을 빌어 여러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잘 가꾸어져 있었다.

분수 앞에서 장난을 치는 젊은이들로 떠들썩하다.
▲ 프라우엔 성당 앞의 분수. 분수 앞에서 장난을 치는 젊은이들로 떠들썩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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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 분수가 여러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땅을 파서 돌을 쌓고 얕은 물을 채운 분수대에서는 버섯 모양의 분수에서 아래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분수의 연못 속으로 들어간 젊은이들이 버섯 위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한참 즐거울 나이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분수 옆 층계를 이루는 돌 위에 앉았다. 나는 더운 날 분수 옆에서 딸과 앉아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다시 딸의 손을 잡고 아내를 만나기로 한 백화점 앞으로 걸어갔다. 뮌헨의 자연사 박물관 앞을 지나는데 한 어린 남자 아이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서울에서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는 신영이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빠, 저 곡은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에 나오는 곡이야. 쟤 참 잘한다. 조금만 구경하고 가자"

슬픈 선율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뮌헨 거리의 소년 악사. 슬픈 선율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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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이의 손을 통해 전해지던 귀에 익은 바이올린 곡을 들으면서 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딸 아이 또래로 보이는 바이올린 연주자는 차분하게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아이의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을 넣고 하나둘씩 갈 길을 떠났지만 나와 딸은 한참 동안 그 앞에서 슬픈 선율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있었다.

나는 이 어린 아이가 어찌하여 바이올린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가를 생각하다가 점점 연주에 빠져 들었다. 나는 성당 안 섬세한 조각상들에 취하고 거리의 음악에 취해 있었다. 나와 나의 딸은 뮌헨의 문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7월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일, #뮌헨, #프라우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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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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