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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칠 수 없는 '사직구장의 유혹'

 

롯데가 승승장구할 때, 홈경기가 벌어지면, 부산 시내가 마비된다. 버스며, 지하철이며 사람들로 빼곡하다. 뱃속에서부터 롯데 팬이라는 부산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런 열기와 환호 속에서 장애인이 함께 하기는 힘들다. 사직야구장까지 가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갑갑하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장애인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AGAIN 1984!', 84년 롯데의 영광을 되살리자며 단돈 2000원의 입장료를 내세운 사직야구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까짓것 죽기야 하겠느냐는 심정으로, 25일 6명의 장애인분들과 야구장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물론 나 혼자 한 약속은 아니었다. 부산대학교 사회대에서 재가장애인 목욕도우미를 하자고 모인 12명의 비장애인 대학생들, 일명 '비누방울' 이들과 함께 한 약속이었다. 다음 주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만나기 전의 쑥스러움을 풀어보자는 목적도 있었다.

 

경기 네 시간 전, 장애인석 확보와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비장애인 한 명과, 장애인 한 분이 미리 야구장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이동도우미가 필요한 민성형을 만나러 4시쯤 장전동 지하철역으로 갔다.

 

민성형은 장애인 야학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장애인 분과 지하철을 타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가는 길은 몹시 험난하다. 서울은 대부분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만, 부산은 3호선과 1, 2호선 일부역에만 설치되어 있어, 그 위험하고, 느려터진 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그나마도 대부분 고장나 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혹은 가엾게 쳐다보는 

 

'띤~ 띠디띠디 띤, 띠디' 이 단음의 노래소리가 들리면서 리프트가 천천히 내려온다. 물론, 리프트에 휠체어가 짐같이 실려서 올라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혹은 가엽게 쳐다보는 비장애인들의 뜨거운 시선도 뒤따른다.

 

리프트가 느리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단체로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다. 두 명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올라가려면, 리프트 내려오는 데 10분, 올라가는 데 10분 다시 내려오는 데 10분 올라가는 데 10분, 다 합쳐서 40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간격을 두고 각자 알아서 출발하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3호선 환승을 하기 위해 연산동역에 내렸는데, 야구장에 갈 4명의 장애인분을 만나버렸다. 마음 놓고 반가워할 수만은 없었다. 지하철은 야구를 보러가기 위한 시민들로 꽉 차 있었고, 결국 4명의 휠체어 장애인 분이 한꺼번에 탈 수 없었다.

 

가장 힘든 것은 시선이다. 보통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분을 빤히 쳐다보신다. 오늘도 민성형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이 많다. 그럴 땐 나도 그 아저씨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적절하게 그런 사람들을 퇴치할 수 있다.

 

사직역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지하철을 나온 뒤, 다른 팀들을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치사하게 먼저 가버렸다. 장애인분들과의 통화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통화를 감지하고 전화를 받는데 비장애인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사람 많고 시끄러운 야구장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안 보이는데 전화 한 통 안 해준 사람들에게 조금 삐친 건 사실이다.

 

이번엔 전동 휠체어가 말썽이다. 배터리가 다 된 것. 사직야구장에서 수동 휠체어를 빌리려고 했지만, 역시나 구비해 놓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전동 휠체어를 타시는 분이 야구장 좌석에 앉아 있는 사이, 내가 전동 휠체어를 운전해서 충전을 하러갔다. 근처 편의점에 사정사정해서 겨우 충전을 할 수 있었다. 장애인석은 어찌나 통로가 좁은지 몇 번이나 벽과 충돌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말을 듣는 것

 

우여곡절 끝에,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응원을 시작하였다. 야구장의 별미, 통닭과 맥주도 빠질 수 없었다. 맥주를 많이 먹다보니, 자주 화장실에 가게 되었는데, 후배 녀석 한 명과 장애인 분 셋이 함께 장애인 화장실로 갔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장이 나서 항상 '사용 중'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 그런데 후배 녀석이 장애인 분의 말은 듣지 않고 나만 빤히 쳐다본다.

 

"왜 나를 봐, 민성형이 하자는 대로 해."

"아…네."

 

 

장애인 당사자 분의 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역시 쉽지 않은가 보다. 민성형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한마디 한 이후로는 집중해서 들으니, 곧잘 알아듣는다. 장애인과 대화할 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여성장애인 두 분은 야구가 재미없으셨는지, 먼저 가겠다고 하신다. 그 중에 한 분과 결혼한 부귀형은 부인이 가시든 말든 끝가지 야구를 볼 심산이다. 나중에 가서 부부싸움을 하시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경기 결과는 롯데의 연장전 역전승. 아이들과 나는 환호하며 1루 그물 쪽으로 달려 나갔다. 나도 모르게 쫓아나갔다가 '아차' 싶어 뒤를 돌아봤다. 장애인들은 언제나 그 자리다. 응원을 하면서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따로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한다는 것, 아직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 주는 집 밖을 나와 대중목욕탕으로 간다. 그 속에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걱정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들은 함께 하겠다고 집 밖을 나왔다. 걱정은 일단 접어두자.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태그:#장애인, #롯데, #사회대, #부산대학교,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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