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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삼성그룹 경영 쇄신안이 발표됐다. 지난 17일 삼성특검이 수사 결과를 내놓은 지 5일 만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 날 직접 국민 앞에 나섰다. 이어 최근 삼성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회장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했다. 법적 책임도 다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 회장의 퇴진 모습은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그대로 전달됐고, 전국의 모든 삼성 사업장도 사내 특별 생방송을 통해 이 회장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이 회장이 삼성직원들에게 미안함을 전달할때, 일부 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삼성이 내놓은 쇄신안은 모두 10가지다. 이 회장 뿐 아니라 부인 홍라희씨의 퇴진과 큰 아들인 이재용 전무의 경영일선 후퇴 등이 들어있다. 여기에 그동안 '삼성의 청와대'라는 그룹 전략기획실의 해체와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의 퇴진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 특검을 통해 밝혀진 이 회장의 개인재산 처리 문제와 지주회사, 순환출자 문제 등 지배구조 개선 등도 담겨져 있다. 그동안 삼성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의혹에 대해 삼성이 내놓을수 있는 카드는 다 내놓은 셈이다. 삼성 내부에선 "28층(삼성 본관 이건희 회장 집무실을 일컫는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 던질 것은 다 던졌다"는 반응이다.

"28층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 던질 것은 다 던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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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이날 발표로,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한 '20년 황제경영시대'는 막을 내렸다. 특히 삼성이 우리나라 재벌의 전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삼성 사태는 다른 재벌과 우리 사회에 던지는 바가 크다.

우선 한국 재벌은 1인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수많은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역시 4% 지분으로 152조원에 달하는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해 왔다. 게다가 이씨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대물림하기 위해 다양한 불법과 편법이 동원돼 왔다.

이 회장의 퇴진과 함께 전략기획실을 해체한 것은 적어도 앞으로는 이같은 총수일가의 불법과 전횡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각 계열사별로 독립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본 전제조건을 마련한 것이나, 삼성과 관련된 인사를 사외이사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힌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그동안 말도 많았던 삼성의 은행업 진출에 대해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이밖에 특검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조세포탈 문제에 대해 탈루 세금을 모두 내고, 남는 돈에 대해선 이씨일가를 위해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한 고위 간부는 "이번만은 변화의 진정성을 담았으니, 잘 지켜봐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물론 과거보다 진정성이 읽히는 대목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크게 두 가지다.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세습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부분이다.

이재용 삼성 시대를 위해 필요한 것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지난 2월 28일 밤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서 소환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지난 2월 28일 밤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에서 소환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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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삼성 사태는 3세인 이재용씨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이 핵심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이재용씨의 경우 특검수사를 통해 무혐의 판정을 받긴 했다. 하지만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씨가 수혜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씨는 그룹 승계과정에서 16억원이라는 적은 세금만 냈을 뿐이다.

이씨는 다음달 삼성전자 인사 발표에 따라 오는 7월부터 해외로 자리를 옮긴다. 당분간 국내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향후 지배구조 변화에 따라 삼성의 총수로 돌아오기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삼성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도 기대하기란 미흡하다.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선 20조원이 필요하다는 점과 경영권 위협 등을 당분간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열사끼리 돈을 내 지배하는 순환출자구조 해소 역시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따라서 새로운 이재용 삼성시대가 열리기 위해선 그룹 승계과정에서 불거진 계열사 손실 처리와 도덕적 책임, 보다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재벌이 사라진 일본 대기업이 던지는 교훈

이제 삼성의 문제는 더이상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재벌도 이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여기서 한국 재벌의 원형이 됐던 일본 재벌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때 미쯔이를 비롯해 미쯔비시·스미모도 등 대 재벌이 좌지우지했던 일본에는 더이상 재벌이 없다. 이들 재벌가문들은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준 지 오래다. 미쯔이가(家)에선 아예 가헌(家憲)에 "가족은 절대로 기업경영에 참여해선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일본의 재벌개혁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미국 군정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벌이 없어진 일본 대기업들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또 일본 대기업은 재벌이 없다는 점뿐만 아니라 총수들의 행동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일본 도시바 CEO를 지낸 도고 도시오 회장. 일본 재계의 신(神)으로 꼽히는 도고 회장은 도쿄 외곽의 20평짜리 조그마한 집에서 살면서, 검소한 생활로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는 평소에 이발소에 가지 않고 부인이 머리를 깎아주었고, 밥을 먹을때도 반찬이 두 가지를 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잠자기 전까지 항상 책을 읽었고, 생활비(10만엔)을 빼고는 모두 학교에 기부했다고 한다.

삼성을 비롯해 재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감정은 분명 엇갈린다. 또 재벌을 존경하는 것보다 매도하는 풍조가 있는 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도고 도시오같은 기업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년의 황제경영을 마감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삼성이 쇄신안에서 밝힌 것처럼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건희 회장이 한국의 '도고 도시오'로 국민에게 존경받고, 삼성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태그:#이건희,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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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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