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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라로 통했으나 10여 년 전부터 출판물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 국회는 2005년에 '활자문화진흥법'을 제정하여 일본 국민들의 독서를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사진은 요코하마 역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
▲ "일본=출판왕국은 이제 옛말" 일본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라로 통했으나 10여 년 전부터 출판물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 국회는 2005년에 '활자문화진흥법'을 제정하여 일본 국민들의 독서를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사진은 요코하마 역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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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국민으로 통했다. 일본하면 떠오르는 풍경 중 하나로 책과 신문을 보는 승객이 가득 찬 전철을 꼽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부흥의 원동력이 '언어력'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언어력'은 읽고 쓰는 능력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전달하는 힘을 말한다.

하지만 이젠 '일본=활자문화국', '일본=출판왕국'은 옛일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2005년에 '활자문화진흥법'을 만들어 책과 신문읽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장려해야 할 정도로 '활자문화 이탈현상'을 겪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책과 신문 읽기를 멀리하고 인터넷과 텔레비전, 게임, 만화에 빠져 버려 지적 수준 저하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출판물 판매량 감소 현상을 보도한 <출판월보> 2008년 1월호. 2007년 일본의 출판물 추정 판매액은 전년대비 3.1%가 줄어든 2조853억 엔으로, 3년 연속 하락세에 있다.
▲ "출판의 위기는 일본의 위기" 일본의 출판물 판매량 감소 현상을 보도한 <출판월보> 2008년 1월호. 2007년 일본의 출판물 추정 판매액은 전년대비 3.1%가 줄어든 2조853억 엔으로, 3년 연속 하락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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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의 출판물 판매액은 1996년 이후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출판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07년도에 1000만 엔 이상의 부채를 안고 도산한 출판사는 66개사로, 거품경제가 붕괴됐던 1992년 이후 1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 <출판월보> 2008년 1월호에 따르면, 서적은 저가 상품으로 주력 출판물이 옮겨가며 매출이 감소하고, 잡지는 여전히 독자이탈 현상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일본의 출판물(서적, 잡지 합계) 추정판매액은 전년대비 3.1%가 줄어든 2조853억엔으로, 3년 연속 하락세에 있다. 전년 대비 감소액은 672억엔. 내역을 살펴보면 서적이 3.2% 줄어들어 매출 9026억엔, 잡지는 3.1%가 감소해 1조1827억엔으로 서적, 잡지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소매점 기준으로 일본 출판물 판매액이 96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98년엔 총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6% 감소했고, 2003년에도 3.6% 줄어들었다. 마지막 통계치로 나와있는 2006년도에는 2%가 감소했다. <출처:일본 출판월보 2008년 1월호>
▲ "96년 이후 일본 출판물 판매액 급갑" 소매점 기준으로 일본 출판물 판매액이 96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98년엔 총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6% 감소했고, 2003년에도 3.6% 줄어들었다. 마지막 통계치로 나와있는 2006년도에는 2%가 감소했다. <출처:일본 출판월보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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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은 <해리포터> 시리즈 등이 선전했지만, 저렴한 책 위주로 팔려 매출 감소의 원인이 됐다. 잡지는 지난 98년 이래 10년 연속 감소세로 장기 추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추정 판매부수는 서적이 전년과 비슷한 수준인 7억5542만권, 잡지는 3.2% 줄어든 26억1269만권이다.

서적은 전년에 이어 교양신서, 문고본, 휴대용 소설 등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이 잘 팔려 전년과 비슷한 보합세를 보였다. 잡지는 월간지가 전년대비 4% 줄어든 17억2339만권, 주간지는 1.6% 감소한 8억8930만권이 돼 월간지의 추락이 심각했다.

서적은 저가 상품이 잘 팔려 판매 책수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 유지됐지만, 매출은 오르지 않아 출판계의 고민은 여전하다. 독자가 '화제의 책' 예를 들면, 영화나 TV 등으로 영상화된 책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반면 아동서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빼고는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잡지는 전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잡지문화가 인터넷 문화에 밀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처럼 정보를 담고,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던 잡지만의 매력이 더 이상 독자들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서적의 신간 평균 가격은 전년대비 1.9% 감소해 1152엔이다. 신간의 평균 권당 가격은 3년 연속 하락중이다. 잡지의 신간 평균 가격은 468엔으로 전년대비 근소한 상승에 그쳤다.

2007년 신간의 종류는 4만7417종으로 전년 대비 0.4% 줄었다. 신간 종류수가 전년에 비해 감소한 것은 지난 99년 이후 8년만이다. 신간의 추정 발행부수는 4억405만권으로 0.6% 늘었다. 또 신간별 평균 발행부수는 5200권으로 지난 2005년 이후 비슷한 수준이 반복되고 있다.

단행본은 작은 휴대용 소설을 비롯해 저렴한 신간이 증가세를 보인다. 싼 책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져 권당 평균가격은 41엔이 감소했다. 전문서적은 판매거점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지방의 오래된 전문 서점의 폐업이 속출한 반면,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판매로 전문서적의 유통이 옮겨가고 있다.

아동 분야의 신간 종류는 아동문고 등 읽어주는 용도의 책이 호조를 보여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나, 그림책은 반대로 5.4% 감소했다. 그림책의 신간 종류가 감소한 것은 지난 98년 이래 처음이다.

2007년 잡지의 추정판매금액은 월간지, 주간지 합계 1조1827억엔이다. 이는 전년대비 3.1% 감소한 수치. 이로써 잡지는 10년 연속 마이너스 매출을 보였다. 다른 미디어와의 경쟁과 중소 서점의 폐업, 젊은층 인구감소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 휴간하는 잡지도 역대 최다를 기록해 독자와의 유대관계가 급속히 붕괴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본 출판문화의 쇠퇴는 한국에도 적잖은 교훈을 안겨준다. 일본 최대 서적도매회사인 (주)도오한의 홍보실장 사가와 츠구스케 씨에게 일본 출판계의 현황과 대책을 들어봤다. 4월 9일 도쿄 가미히라이초등학교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일본 서적 도매회사인 (주)도오한의 사가와 츠구스케 홍보실장은 "일본의 출판시장이 침체기에 빠져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 "출판시장 자체가 침체기" 일본 서적 도매회사인 (주)도오한의 사가와 츠구스케 홍보실장은 "일본의 출판시장이 침체기에 빠져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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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활자매체를 멀리하는 실정인가.
"요미우리나 마이니치 신문 등 주요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교육계 현장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볼 때도 일반 가정에서 책을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책이 잘 팔리지 않아 일본 출판계가 어려움에 처했다던데.
"일본 출판계에서는 해마다 평균 7만여 권의 신간이 나온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추세가 감소세에 있다. 또 출판 시장 자체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고 있어 출판시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따라서 현재 일본 출판계의 최대 현안은 국민들을 활자매체와 친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 현재 일본 출판시장은 자기개발서나 돈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많이 팔린다는데.
"그렇다. 현재 추세는 비즈니스 관련 책이 많이 팔린다. 크기가 작고 저렴한 책도 인기가 있다."

- 고전이나 교양서적은 잘 안 팔리는지.
"문학책은 잘 안 팔린다. 반면 아침독서운동의 영향으로 아동서는 꽤 팔린다. 가정에서 손쉽게 책을 읽기에는 그림이 곁들여진 책도 괜찮다. 글자수가 적고 그림을 통한 이해가 쉬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족이 책의 내용을 공유하기 쉽기 때문이다."

- 출판 부수 감소가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무엇인가.
"책이 읽히지 않고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의 문화 후퇴를 의미한다. 책이 읽히지 않으면 국어(일본어)의 존립 자체도 위험하다. 국어의 문제, 문화의 문제, 인간성의 문제 등 출판의 감소는 일본 사회에 있어 총체적인 위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는 어린이 독서 추진활동, 어린이 독서활동에 관한 법률 등 국가적인 입법을 통해 국민들이 책과 친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 그런 법을 만들도록 아침독서 운동회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했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아침독서운동의 실적과 효과가 입증돼서인지 20년 전쯤부터 사회적으로 독서에 관한 법률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른이다. 아침독서운동에 참가하는 어린이는 1천만 명에 육박하는 반면, 어른은 활자를 멀리하고 있다. 각 가정에서 어른이 책읽는 모습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이 거꾸로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어린이와 부모, 가족끼리의 대화단절이 일본사회의 큰 문제다. 의사소통이 단절되니 가족 간의 유대관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 그럼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아침독서운동을 통해 가족과 어린이가 책을 화제삼아 가정의 의사소통을 복원해야 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책읽기 운동도 펼칠 필요가 있다. 독서를 활용한 가족문제  해결에 지방자치단체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는 매월 30일 독서를 하면서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복원하자는 운동을 펼치는 지자체도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서적도매회사인 (주)도오한의 사가와 츠구스케 홍보실장은 "출판물 판매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하고 "이런 현상은 일본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 "출판문화가 위축되어 걱정" 일본에서 가장 큰 서적도매회사인 (주)도오한의 사가와 츠구스케 홍보실장은 "출판물 판매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하고 "이런 현상은 일본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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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원동력은 책읽기와 활자문화라는 분석이 있는데.
"과거에는 그랬지만, 요즘은 그 반대다. 부지런하고 활자매체를 애호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에게 지나친 자유를 주다 못해 아예 방임하는 수준의 '여유 교육'의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TV 오락 프로그램 등도 일본어와 문화를 훼손하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일본의 미래는 지금 일본의 어린이들이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읽기는 한마디로 '나라 만들기', '인간 만들기'다."

- TV 등 영상물을 보는 게 왜 나쁜가.
"TV 매체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은 귀가하면 먼저 TV 스위치부터 켜는 게 습관이 됐다. 아니 하루 종일 TV를 켜고 있을 정도다. 영상매체가 가족의 단란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가끔은 TV 전원을 끄고 가족과 대화하고 단란을 도모해야 한다. 또 TV 등 영상매체는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든다. 반면 아침독서를 하면 사람의 표정부터 온화해진다."

- 출판인으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지.
"원래 책이 좋았고, 그래서 출판사에 입사했다. 과거에는 편집을 담당했는데 우연히 아침독서운동을 접하고 적극 동참하고 있다. 아침독서운동과 집안독서운동은 내 인생에서 큰 보람이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0여 회에 걸쳐 일본의 활자문화부흥운동에 관한 기사를 올립니다. 일본 도쿄 현지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활자문화진흥법, #문자, #글쓰기, #독서,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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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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