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흘 앞서 해 놓은 이불빨래. 가루비누 풀어서 이불을 담가 놓은 뒤, 발로 꾹꾹 밟고 손으로 푹푹 비벼 줍니다.
▲ 이불빨래 사흘 앞서 해 놓은 이불빨래. 가루비누 풀어서 이불을 담가 놓은 뒤, 발로 꾹꾹 밟고 손으로 푹푹 비벼 줍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오늘 아침 이불 한 채를 고무대야에 담가 놓는데 손발이 그다지 안 시립니다. 바야흐로 이불빨래 세상이 돌아왔음을 느낍니다. 세탁기를 돌리는 집은 일찌감치 묵은 겨울 이불을 울타리며 골목길 빨랫줄이며 널어놓고 있습니다. 저도 얼어붙는 손을 호호 녹이면서 이불빨래를 해서 옥상마당 울타리에 널어놓곤 합니다. 그러나 여느 손빨래보다 손품과 발품이 많이 가는 이불빨래는 날씨가 더 따뜻해져야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몇 채는 미뤄 두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담가 놓은 이불은 내일쯤 헹구어 널어놓으려 하고, 겨우내 쓰던 이불 두 채만 더 빨아서 말리면 밀린 겨울빨래는 끝!

골목사람이 골목길에서 키우는 꽃이니 골목꽃입니다.
▲ 골목꽃 골목사람이 골목길에서 키우는 꽃이니 골목꽃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봄이 좋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겨울 동안, 옷 빠는 일이 만만치 않았는데, 옷두께가 얇아지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가볍게 손빨래를 합니다. 집안이 메마르지 않도록 틈틈이 빨래를 해 놓습니다. 빨래를 하는 동안은 세상일을 잊고 사람일도 잊습니다. 골치아픈 산업도로 걱정을 잊고, 재개발 삽날로 온 골목을 휘저으려는 인천시장 못난 짓거리도 잊습니다.

어제(16일)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우리 동네 집집마다 편지를 보내 주었더군요. '곧 이 동네를 재개발 할 터이니 적극 협조 바란다'고 하는 편지를 두 장에 걸쳐서 적어 보내는군요. 어떻게 해야 '적극 협조'인지 모르지만, 집임자든 셋방임자든 시키는 대로 도장 꾹꾹 눌러 주고 딴 데로 떠나 달라는 소리가 아니랴 싶습니다.

옆지기 웃옷 한 벌 빨아서 옥상마당 창가에 널어놓습니다. 집 앞으로 지나가는 전철을 바라봅니다. 잠깐 벽돌담에 기대어 이웃집 옥상을 건너다봅니다. 어제에 이어 햇살이 좋으니 오늘 하루도 골목마다 빨랫줄에는 묵은 이불빨래며 크고작은 빨래며 줄줄이 걸려 있겠구나 싶습니다. 오늘쯤이면 골목집 꽃그릇은 한결 밝고 고울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다른 일은 슬그머니 접어두고 꽃구경을 나서 볼까.

당신들 즐기려고 심어 가꾸는 꽃일 터이나, 이 꽃은 당신들 집 앞을 지나가는 골목사람 모두가 함께 즐깁니다. 우리 동네 분들 가운데 이 '꽃잔치 집'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꽃잔치 집 당신들 즐기려고 심어 가꾸는 꽃일 터이나, 이 꽃은 당신들 집 앞을 지나가는 골목사람 모두가 함께 즐깁니다. 우리 동네 분들 가운데 이 '꽃잔치 집'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유공원 벚꽃 나들이를 가고 싶어들 하시는데, 벚꽃이 아니더라도 골목마다 올망졸망 자라나고 있는 온갖 꽃을 보는 나들이도 즐겁습니다. 요사이는 도시고 시골이고 온통 벚꽃만 심어 놓고 있습니다만, 벚꽃은 벚꽃대로 아름답고, 다른 꽃나무는 다른 꽃나무대로 아름다울 텐데, 한 가지 꽃나무만 줄줄이 심기는 모습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벚나무 나라였다고. 줄줄이 심긴 벚나무에서 얼마나 버찌를 따서 먹을 수 있다고. 함박나무 후박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호두나무 잣나무 뽕나무 두루두루 심어도 좋을 텐데. 수수꽃다리로 꽃길을 마련하고 등나무로 그늘을 삼으며 다래나무로 잎과 열매를 얻어도 좋을 텐데.

그제 골목길 마실을 하면서 살펴보니, 죽은 듯이 아무런 잎사귀도 달리지 않은 오동나무에도 조그맣게 움이 트고 있습디다. 오동나무는 잎사귀가 널찍하고 시원시원하지만, 잎이 다 진 모습을 보면 쓸쓸하기 그지없어요. 얼핏 보면 ‘뭐 저런 나무가 다 있어?’ 하다가도, 차츰차츰 따뜻해지며 여름이 다가오면, ‘언제 저렇게 잎사귀가 가득했을까?’ 싶도록 하루아침에 우거지는 오동나무입니다.

줄 맞추어 가지런히 싹을 틔우는 새싹이 깃든 고무대야.
▲ 가지런한 새싹 줄 맞추어 가지런히 싹을 틔우는 새싹이 깃든 고무대야.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어느 골목집 꽃그릇을 보아도 가지런히 돋아난 새싹을 만납니다. 머잖아 이 새싹들은 싱그러운 봄나물이 될 테지요.
▲ 가지런한 새싹 2 어느 골목집 꽃그릇을 보아도 가지런히 돋아난 새싹을 만납니다. 머잖아 이 새싹들은 싱그러운 봄나물이 될 테지요.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송림동 아름다운 꽃잔치 집(서너 평 되는 작은 마당에 온통 꽃밭으로 가꾸어 놓은 골목집입니다. 저는 이 집에 ‘꽃잔치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도 봄을 맞이해 하나둘 새잎과 새꽃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름쯤 지나 5월이 되면, 꽃잔치 집 꽃그릇마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갖가지 꽃에다가, 이 집에서 가꾸는 푸성귀로 환해지겠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이 집 앞을 지나는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살짝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골목길에 내건 골목빨래. 골목길에 서 있는 골목자전거.
▲ 골목빨래와 골목자전거 골목길에 내건 골목빨래. 골목길에 서 있는 골목자전거.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꼭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낡은 고무대야나 스티로폼이나 헌 그릇이나 김치상자 들에 흙을 담고 거름을 주어서 기르는 푸성귀 새싹도 싱그럽습니다. 줄을 맞춰 싹을 올린 푸성귀들. 우쑥우쑥 오르는 듯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는 푸성귀들. 자라나는 푸성귀는 자라는 모습으로도 기쁨이고, 잘 자란 잎을 똑똑 따서 물에 씻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온몸으로 푸른 빛 푸른 냄새가 스며듭니다.

ㅇ마트나 ㄹ마트 같은 곳에서 ‘유기농 푸성귀’라는 이름붙은 곡식을 사다가 먹을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골목길 한켠에, 또 울타리 한켠에, 집구석 한켠에 조그마한 꽃그릇을 마련해서 거두어들인다면,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될 터이나, 우리 땀방울과 햇살 고이 받은 흙내를 헤아릴 때에는, 더없이 알뜰하고 산뜻한 보람이 되리라 믿어요.

골목길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보면서, 이 집에는 누가 사는가 헤아립니다. 할매와 할배도 함께 사는가, 어린아이들은 몇이나 되는가, 학생들은 몇쯤 있을까. 양말 크기를 보면서, 면티 크기를 보면서, 바지 크기를 보면서 집식구 숫자를 가늠해 봅니다. 빨강 노랑 까망 보라 연두 갖가지 빛깔 옷을 보면서, 저마다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떤 빛깔을 사랑스레 여기는지 헤아립니다.

처음에는 흙길이었을 골목길입니다. 비알이 진 곳은 한 곳 두 곳 시멘트로 발라서 빗길이나 눈길에 더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되었습니다. 시멘트로 발린 골목길 틈바구니에 작은 풀꽃이 뿌리를 내립니다. 시멘트로 발리면서도 시멘트 밑에 숨죽이고 있던 풀씨들이 하나둘 깨어나서 영차영차 머리를 올리며 조그마한 틈을 찾아내어 피어났을까요. 하늘하늘 날아다니다가 깨진 틈 하나 찾아서 그리로 보금자리를 틀었을까요. 부러 심어서 가꾸는 골목꽃이 있고,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살포시 내려앉아 저절로 자라는 골목꽃이 있습니다.

골목꽃한테도 꽃이름이 있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민들레며 꽃다지며 별꽃이 있을 테고, 우리가 잘 모르는 이 들꽃 저 들꽃이 있습니다. 흙 한 줌만 있어도 망초는 줄기를 올리고, 흙 두 줌이 있으면 해바라기도 줄기를 올립니다. 골목꽃을 구경하러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골목 아줌마와 골목 할머니가 골목걸상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앞을 지나게 됩니다. 봄햇살은 골목집 빨래와 꽃그릇에 함초롬히 내리쬐고, 골목사람 앉은 골목걸상에도 곱다시 내리쬡니다.

조 작은 꽃밭에서도 나무는 자랍니다. 골목나무가 이루어낸 꽃길을 지나가면서.
▲ 골목나무 조 작은 꽃밭에서도 나무는 자랍니다. 골목나무가 이루어낸 꽃길을 지나가면서.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태그:#골목길, #골목집, #꽃구경, #인천, #배다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