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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3동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입구에 '뉴타운 개발 상담 환영' 문구가 붙어 있다.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3동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입구에 '뉴타운 개발 상담 환영' 문구가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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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난 뒤 '뉴타운 사기극' 논란이 뜨겁다. 이는 일시적 정치 공방전이 아니다.

2년 뒤 지방선거, 4년 뒤 총선, 5년 뒤 대선에 분명히 뉴타운 공약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의 성격상 여야 모두 공약으로 내건다고 해도 집권당에게 훨씬 유리하다. 더구나 뉴타운 사업은 한두 번 안되면 사람들이 그냥 포기하는 게 아니라 '혹시나'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중독성'까지 가지고 있다.

요즘 '도노강'(도봉·노원·강북)에서는 "배신당했다"는 한탄 소리가 높다고 하는데 사실 '뉴타운 사기극'은 이번만이 아니다. 뉴타운 사업의 성격상 사기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는 서울 총선 결과를 좌우할 정도가 되니 크게 부각됐을 뿐이다. 

뉴타운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지난 2002년 시작됐다. 여러가지 의도가 있는데, 서울 도심을 재개발해 강남북의 생활환경·기반시설 격차를 줄이는 것이 큰 목적이었다.

신도시는 녹지와 농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고, 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새로 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 건설되는 신도시일수록 서울과 거리가 멀어져 출퇴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지만 뉴타운은 이런 문제가 없다.

뉴타운은 지난 2002년 10월 은평(은평구)·길음(성북구)·왕십리(성동구) 등 3곳을 시범으로 시작해 2003년에 2차 뉴타운 12곳, 2005년도에 3차 뉴타운 11곳이 지정됐다.

뉴타운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구 지정 뒤 재정비촉진계획 수립→계획 결정 고시→정비구역 지정→조합설립 인가→사업시행 인가→관리처분계획 인가→착공→준공까지 평균 10년 이상 걸린다.

현재 26곳의 뉴타운 가운데 입주가 시작된 곳은 시범 뉴타운인 길음뉴타운 한 곳이다. 2차 뉴타운 중에서도 미아·가재울·노량진 등 5개 구역이 공사에 들어갔을 뿐이다.

뉴타운은 10년 걸린다

뉴타운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값 폭등이다. 주건환경 개선에 집중하는 뉴타운 사업과 달리 서울 도시 공간구조를 다핵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하는 '균형발전촉진지구' 사업도(현재 청량리·합정 등 8곳 선정) 부동산 값을 뛰게 한다.

뉴타운으로 지정되면 토지 지분 3.3㎡당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던 지역이 보통 3000만원 안팎으로 오른다. 또 뉴타운 인근 지역은 물론 더 나아가 새로 뉴타운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린다.

활활타는 부동산 시장에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어서 지난 2006년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아직도 4차 뉴타운 지정을 미루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번 총선 기간에 취한 오세훈 시장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충분히 비난 받을 만하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에는 4차 뉴타운 지역 예상 명단이 돌아다닌다. 용산구 서계ㆍ청파동, 강서구 화곡동, 구로구 구로동, 성동구 성수동, 성북구 정릉동, 강북구 미아ㆍ수유동 등이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이 지역에서 출마한 정치인들은 모두 뉴타운 성사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뉴타운 되기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뉴타운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주택의 노후도(단독주택의 경우 20년이상 된 건물이 60%이상), 접도율(폭 4m 이상의 도로에 접한 주택의 비율이 36% 이하일 것), 호수밀도(1ha=1만㎡ 당 건축물 수가 48호 이상 일 것)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한 예로 4차 뉴타운 강력 후보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을 보자. 화곡 뉴타운 얘기는 진작부터 나왔지만 아직도 언제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화곡뉴타운을 들고 나온다.

지난 2006년 지방의회 선거 때 당시 한나라당 김도현 후보는 화곡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걸어 강서구청장에 당선됐다. 이미 집값이 오름세를 보이던 화곡동은 그의 당선으로 투기 바람이 더욱 휩쓸었다. 인터넷에는 '화곡뉴타운 카페'도 몇 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낡은 단독주택을 사서 헌 뒤 새로 다세대 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이른바 '지분 쪼개기'도 성행했다. 단독주택 한 채는 분양권이 1개지만 다세대 주택 10채를 지어 팔면 분양권이 10개가 되기 때문이다. (지분 쪼개기에 견디다 못한 서울시는 오는 7월부터 준공되는 60㎡ 이하 다세대주택은 분양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하기로 했다)

그러나 화곡동의 노후도·접도율·호수밀도 등은 뉴타운이 될 조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다. 더구나 단독 주택이 헐린 자리에 새 빌라가 들어서니 노후도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결국 김도현 구청장은 "화곡 뉴타운 사업은 빨라야 2011년 이후에나 사업 실행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2011년이면 그의 임기가 끝난 뒤다. 주민들은 분노했다.

구상찬 한나라당 후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있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해 화곡동 뉴타운 공약을 강조했다.
 구상찬 한나라당 후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있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해 화곡동 뉴타운 공약을 강조했다.
ⓒ 구상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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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도·접도율 등등... 뉴타운 되기 쉽지않다

김 구청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지난 2007년 10월 구청장 자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곡 뉴타운은 물건너가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과 같은 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한나라당 소속인 김재현씨가 또 화곡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리고 4월 9일 총선에서는 강서갑에서 한나라당 구상찬 후보가 "화곡동 뉴타운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며 "한나라당 서울시 뉴타운정책개발 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야말로 적임자"라고 호언하면서 당선됐다.

집권당이 승리했지만 화곡동이 뉴타운이 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민들은 "혹시 집권당 소속이니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표를 던졌다.

정치인들은 보통 노후도 등 일부 요건을 완화시켜서 뉴타운을 성사시키겠다고 공약한다. 그리고 보통 자신이 집권당의 이런 저런 요직에 있다거나 혹은 서울시장과 이런 저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지역의 요건을 완화시켜주면 다른 지역에서 가만 있을리 없다. 그렇다고 전체적으로 요건을 낮추면 서울시 전체가 뉴타운이 될 판국이다. 

더 큰 문제는 뉴타운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뉴타운 지역의 지분값이 실질 가치에 비해 너무 급등하고 분양가 상한제 등이 실시되면서 뉴타운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뉴타운·재개발 지역은 지금 소송중(노컷뉴스)', '뉴타운 지분값 거품 꺼지나(파이낸셜뉴스)', '서울 재개발 절반은 지금 소송중(동아일보)'이라는 기사들은 이 같은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막바지 단계인 관리처분(지분의 가치평가 및 아파트 평형, 동·호수 배정) 과정에서 기존 낡은 주택의 지분에 대한 감정 평가액이 시세보다 너무 낮아 추가 부담금이 너무 많다며 조합원들이 반발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추가 부담금을 감당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시세보다 싼 값에 뉴타운 지분을 팔아넘기는 현상도 있다.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재건축·재개발·뉴타운 구역 안의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의 일반 분양가격이 조합원 분양가보다도 저렴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이니 현재 뉴타운은 나중에 실제 거주하기 보다는 지분 값 폭등 와중에 차액만 챙기고 '먹튀'하려는 사람들이 들끓고 '폭탄 돌리기'로 진행되는 모습도 보인다.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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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폭탄 돌리기 양상... 원주민 정착율 20%대

뉴타운은 기본적으로 민간 조합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나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다. 

서울시내 뉴타운은 지역별로 조건이 천차만별이지만 33㎡(3.3㎡당 3000만원)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 110㎡ 안팎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추가 부담금이 2억원 정도 든다는 게 통설이다.

순수 현금만 5억원(지분값 3억원+추가 부담금 2억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5억원 전부를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테니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것이고, 주거 조건이 대단히 열악한 곳에서 수 년 동안 거주해야 한다.

이런 저런 금융 비용과 기회 비용을 합하면 뉴타운 입주민(또는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110㎡대 아파트의 일반 분양가격이 최소 8억원 안팎은 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달 공사에 들어가는 서울 양천구 신정 뉴타운 1-2지역의 경우 107.57㎡짜리 아파트의 조합원 분양가는 6억4320만원, 일반 분양가는 7억4460만원이다. 이 지역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뉴타운 입주민 또는 투자자들은 110㎡ 안팎 아파트의 가격이 10억원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뉴타운으로 생겨나는 아파트들이 이른바 '평당 3000만원대' 아파트들이 되는 셈이다. 

서울시 홈페이지에는 뉴타운은 약 18만세대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지만 신도시(판교·화성·김포·파주)는 다 합쳐야 14만세대를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뉴타운이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파트 값 잡는데 효과적일 것 같은데 실제는 정 반대다.

여기에 원래 뉴타운 지역에 살던 원주민 정착률이 20%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큰 문제다. 뉴타운 예정 지역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데 수억원의 추가 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가난하던 사람들은 지분 값이라도 챙겨서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게 낫다"는 식의 논리도 있지만, 뉴타운은 결과적으로 서민들을 도심에서 추방해버린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게 음란 비디오라고 한다. 음란 비디오는 결말이 뻔한데도 자꾸 말초신경을 자극해 보게 만든다. 뉴타운 공약도 그 원래 취지와는 별개로 결국 "돈이 최고"라는 말초 신경을 자극해 유권자를 표찍는 기계로 만든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뉴타운을 '합리적 논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뉴타운은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


태그:#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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