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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마을. 근처는 아파트 단지다.
 녹천마을. 근처는 아파트 단지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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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서울지하철 1호선 녹천역에서 내려 인근 상계동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누군가 부탁으로 아파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14평짜리 아파트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매매가격이 5천만원에 불과했다는 점에 또한 놀랐다.

당시 큰 벌판에 가득 펼쳐진 아파트촌을 보면서 '이 동네 집은 모두 아파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오해였다는 것을 올해 깨닫게 됐다.

녹천역 인근엔 60~70년 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옛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날 자전거를 타고, 또 한 번은 봄비가 내리던 날 지하철을 타고 그곳을 찾았다.

사슴 설화가 있는 마을, 정승 대감 별당 있었다고 알려져

녹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주변이 조용한 게 꼭 시골 간이역같다.
 녹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주변이 조용한 게 꼭 시골 간이역같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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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녹천역(鹿川驛)은 시골 간이역 같은 곳이다. 역이 작고 인근 풍경도 조용하기만 하다. 녹천역은 2003년 이후 계속 승차인원이 줄고 있다. 2003년 8327명으로 가장 높았고, 2004년 6424명, 2005년 6046명, 2006년 5948명으로 떨어졌다.

녹천역에서 내렸을 때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이 계단 올라가는 할머니 짐을 대신 들어주는 모습을 봤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할머니도 익숙한 듯 순순히 짐을 맡긴다.

녹천마을엔 사슴설화가 전해지며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 마을 뒷산에 있는 이명중 묘. 이명중은 이유의 손자다.
 녹천마을엔 사슴설화가 전해지며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 마을 뒷산에 있는 이명중 묘. 이명중은 이유의 손자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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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역에서 내려 5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소가 하품을 할 것 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녹천(鹿川) 마을이다. 여기서 '녹'은 '사슴 녹'이다. 월계동 중심 마을이 바로 녹천마을이다.

녹천마을은 사슴과 관계가 있다. 월계교 인근 아파트단지도 사슴단지아파트다. 월계4동사무소 홈페이지에 따르면 첫 번째는 동네 주변을 흐르던 하천이 두 가닥으로 시작해서 767번지 근방에서 하나가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슴뿔 같다 해서 '녹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슬픈 이야기다. 조선 중기 큰 홍수로 마을이 폐허가 됐는데, 신선이 촌주의 꿈에 나타나 사슴에게 정숙한 처녀 한 사람을 시집보내라고 말한다. 마을회의에선 염씨(簾氏)집 15세 난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고 제물을 준비했는데, 신선의 예언대로 사슴이 나타났다.

사슴은 처녀를 데리고 사라졌고 물줄기가 바뀌면서 황토로 뒤덮인 마을 앞 전답이 기름진 땅으로 바뀌었다. 이때 누군가가 '이건 사슴과 결혼한 염씨 처녀의 눈물이니 냇물 이름을 녹천이라 하자'고 제의해 마을 이름이 됐다고 한다. 

녹천마을은 조선시대 숙종 시절 녹천(鹿川) 이유(李濡:1645~1721)와도 관계가 있다. 숙종 때 한성판윤, 판부사, 이조판서, 영의정을 지낼 정도로 경력이 화려했던 이유의 별당이 이곳에 있었다고 알려진다.

초안산. 2006년 멸종위기종인 표범장지뱀이 발견된 곳이다.
 초안산. 2006년 멸종위기종인 표범장지뱀이 발견된 곳이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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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북한산성 축조를 지휘했다. 당시 북한산성 축조를 위한 창고를 만든 곳이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서 '창동(倉洞)'이 됐다. 녹천역 인근 마을이 창동이다.

마을 사람은 마을이 당시 영의정 이유와 큰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마을 뒷산인 초안산에는 이유의 손자이자 경기도 광주부윤을 지낸 이명중의 묘가 있다.

마을 뒷산인 초안산은 높이가 무척 낮아 산책하기에 좋다. 녹천역 인근 초안산엔 버려진 무덤이 여럿이다. 무덤 앞 단에 '경작엄금'이라고 써놓기도 했다. 이곳에 묘를 만들었으면서도 관심 한 번 못 기울였을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비가 오는 날인데도 우산을 쓰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산엔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생긴 자연스런 오솔길이 정겹다.

초안산은 2006년 서울환경연합이 멸종위기종인 표범장지뱀 서식을 서울에서 최초로 확인한 곳이다. 당시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서울시 보호종인 땅강아지와 무당개구리도 발견됐다.

산을 한 바퀴 돌아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무 훔쳐가도 내가 더 먹으니 괜찮아"

녹천마을에선 대부분 연탄을 땐다. 연말이 되면 구호단체가 연탄을 주는 단골마을이기도 하다.
 녹천마을에선 대부분 연탄을 땐다. 연말이 되면 구호단체가 연탄을 주는 단골마을이기도 하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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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녹천노인정이 있다. 원두막 같은 모양이다. 몇 발자국 옮기니 이번엔 녹천경로당이다.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길은 좁아서 자동차가 들어가기 힘든 넓이다. 흑백사진에서 볼 수 있는 골목 형태다. 바닥은 보도블록. 길가엔 다 써서 모양이 누렇게 변한 연탄이 쌓여 있다.

자세히 보니 집 앞마다 연탄 더미다. 집 안 마당엔 어느 집이든지 연탄이 가득가득하다. 동네 어르신 한 분에게 물어보니 이 동네는 모두 연탄을 쓴다고 한다. 한 때 기름보일러로 바꾸기도 했지만, 기름 값이 비싸 다시 연탄으로 바꾸었다고.

동네 가운데 집 한 채가 타 한창 수리 중이다. 자세히 보니 벽 재료가 짚과 황토다. 해방 이전엔 동네 집이 대부분 초가집이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 흔적인 듯하다.

아주 오래된 화장실도 보인다. 나무로 벽을 만들었고 집 밖에 나와 있다. 과거 화장실은 방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고 믿었다. 그 시절 지은 집 화장실은 마당 한 귀퉁이에 있었다. 방에서 멀리 떨어뜨리려다 집밖까지 내몬 화장실을 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장에선 닭이 눈을 두리번거리며 '구구'거렸다.

산 쪽으로 올라가니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 밭에서 한 어르신이 땅을 일구는 모습을 봤다. 어르신이 마을 유래와 영의정 이유에 대해서 한참 설명한다. 어르신은 산기슭에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이유의 정자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르신은 동네 역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창동을 과거 유만리이던 시절, 산 뒤에 여승 3명이 살던 절 등 동네 역사를 풀어놓았다.

어르신에 따르면 이 동네 집들은 대부분 70년 이상 된 집들이다. 동네 바깥쪽에 있는 한옥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무엇을 심고 있는지 물었더니 '무'란다. 사람들이 몰래 많이 가져간단다. 가져가도 그러려니 한다고. 그 사람들보다는 자신이 더 많이 먹지 않냐면서. "나중에 무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허허' 웃으면서 "들키지만 마시요"라고 말한다.

가게 앞 쉼터, 마을 주민 들렀다 가는 사랑방

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들. 저 나이 때는 모든 게 재미있는 것일까?
 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들. 저 나이 때는 모든 게 재미있는 것일까?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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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가니 녹천우물이다. 지금은 수질이 나빠져 못 마신다. 아이들 몇 명이 놀고 있다. 다섯 살짜리도 있고 여섯 살짜리도 있다. 가장 나이 많은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다.

6학년 아이가 바가지에 물을 퍼서 바닥에 버리자 아이들이 무척 신나 한다.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난 모양이다. 자연이 놀이터인 아이들에겐 모든 게 장난감이 되는 셈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입구 쪽으로 나오니 가게가 두 개다. 가게 옆에 있는 나무전봇대가 이 동네가 변화에서 한 발 빗겨나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갈 때마다 가게 앞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동네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 가게에 들어가서 우유를 사고 계산을 하는데, 돈통 모양이 독특하다. 물어봤더니 60여 년 된 물건이다. 총알 담던 통인데, 아버지가 주신 것이라고 한다. 신기해서 쳐다보니 가게 안에 있던 아저씨 두 명이 말을 주고 받는다.

마을 입구엔 가게가 두 개 있다. 가게는 동네사람들이 오며가며 들르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가게 앞에서 놀던 아이를 찍었다.
 마을 입구엔 가게가 두 개 있다. 가게는 동네사람들이 오며가며 들르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가게 앞에서 놀던 아이를 찍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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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TV 진품명품에 한 번 내보내 봐요."
"소용없어. 저것 얼마 안해. 딱 견적 나오네. 25만원짜리야."

가게 앞에도 원두막 같은 쉼터가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손자손녀와 놀고 있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오두막에 앉아 땀을 훔치고, 집에서 외출하는 아가씨 한 명도 이곳에 들러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비가 오는 날 찾았을 땐 또 다른 가게에서 어르신 여섯 명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60대 초반에서 70대 초반이었다.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데 안주는 빵 하나와 밥 한 그릇, 족발 몇 조각이 전부였다. 이렇게 부실한 안주라니…. 20대 초반 새우깡 하나 놓고 술을 마시던 때가 생각난다.

자리엔 재개발추진위원회 총무이자 동제(洞祭) 총무인 한명수(68)씨도 있었다. 마을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서 말을 건네니 대뜸 "옆에 앉아서 술이나 한 잔 받으라"고 한다. 술 한 잔 비우고 이제 그만 주시려나 했더니 계속 잔을 채운다. 그렇게 마신 게 두 병. 빈속이라 "알딸딸"했다. 그렇게 몽롱한 가운데 어르신들을 통해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비가 오는 날 가게 앞에서 술을 마시는 어르신들. 옆에 앉아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마을 동제 총무인 한명수(68)씨.
 비가 오는 날 가게 앞에서 술을 마시는 어르신들. 옆에 앉아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마을 동제 총무인 한명수(68)씨.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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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선 음력 3월 1일, 6월 1일, 10일 1일 동제를 지낸다. 동제를 지낼 때는 국회의원까지 올 정도로 규모가 크단다. 과거 유교문화가 남아 있어 제를 지낼 때 여자는 참석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좌중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치성드리는 날 그때 여자들은 못 와."
"그게 잘못된 거야.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여자는 꽃이라서 제사와는 안 어울려."
"치성을 드리기 전엔 열흘 동안 여자 곁에 가면 안 돼."
"원래는 석 달이야."
"석 달은 너무 길어."
"옛날만큼은 아니야.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

재개발은 되겠지만...

동제를 드리는 마을 뒷산 가묘.
 동제를 드리는 마을 뒷산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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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엔 재개발추진위원회 건물이 있다. 녹천마을 재개발 역사는 꽤 오래됐다. 1990년 녹천마을 재개발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94년 12월 서울시는 녹천마을을 주택불량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1996년 4월엔 건교부가 녹천마을 6000여 평을 포함, 이 일대 1만2000여 평을 서울시 요청에 의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했다. 1999년까지 아파트 800여 가구를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택지개발지구란 대규모 주거 단지를 새로 만들기 위해 만드는 공공택지를 말한다. 녹천마을은 200여 미만 세대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택지개발지구 계획이 나오자 녹천마을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마을에선 재개발구역 지정을 위해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택지개발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 결국 이 계획은 없던 것이 됐다.

동제가 열리는 음력 3월 1일, 6월 1일, 10월 1일은 마을잔칫날이다. 그 외에도 잔치가 열린다.
 동제가 열리는 음력 3월 1일, 6월 1일, 10월 1일은 마을잔칫날이다. 그 외에도 잔치가 열린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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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서울시는 1996년, 1998년 녹천지역 재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녹천마을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이 난 것은 2004년 들어서였다.

이틀 동안 동네에서 만난 주민들은 재개발을 원했다. 단 워낙 오랫동안 재개발 계획이 나고 무산되는 경험을 해서인지 "재개발을 원하지만 언제 될지는 모른다"는 태도를 보였다.

녹천마을은 서울에서 유일하다시피한 연탄이 주연료인 마을이다. 연말 구호단체와 각종 기업들이 연탄을 지원할 때 꼭 들어가는 마을이기도 하다. 오래된 집들만으로 마을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동제를 지내는 유일한 마을이기도 하다.

영화 <무방비도시>는 이런 녹천마을의 매력을 영화에 담았다(극 초반 김명민의 어머니인 김해숙이 아이를 놔두고 떠날 때 나오는 흑백 장면 속 마을이 녹천마을이다).

재개발이 이뤄지면 마을엔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금처럼  마을제사를 정해진 날에 지내고 마을 잔치를 여는 게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한 어르신에게 "재개발돼서 지금과 같은 정이 사라지면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속에서 재개발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느꼈다면 내 주관일까.

"재개발되면 좋지. (…) 지금과 같은 정은 사라질 수도 있겠지. 외지인도 많이 들어올 것이고. (…) 우리 마을 정말 좋아. 내가 실력이 되면 우리마을에 대해서 책을 쓰고 싶어. 그런데 지금은 너무 늦은 것 같아."


태그:#녹천마을, #골목, #자전거, #미니벨로,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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