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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이 기사를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당선되지 못한 후보들 마음을 괴롭힐 이유도 없고, 선거 전부터 나름대로 '상처'를 안고 출발한 후보들에게 또 다른 생채기를 낼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들 중 상당수가 다시금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이 지역 어디에선가 계속 활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다시 말해, 한동안 '뒤뜰인생'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진정 남동구와 인천을 사랑한다면, 이곳 어디에선가 묵묵히 계속 활동하다가 다음 총선에 또 나와 보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최대한 솔직담백한 기사를 쓰고자 당사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굳이 넣었음을 알려드리며 후보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당신들은 '공인'입니다! - 기자 주]

 

 

'휴~ 끝났다.'

 

투표마감과 동시에 정식 개표방송 시작을 알리는 초침시계가 TV화면에서 울리는 순간 저는 몰래 깊은 숨을 고르며 괜히 가슴 한번 쓸어내렸습니다.

 

'정말 끝났구나. 자, 이제는 그동안 하지 못한 얘기가 있는지 찾아볼까?'

 

18대 총선 선거풍경을 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이번 선거에 이토록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뽑아놓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싸울텐데 나까지 그 싸움에 뭘 끼어드나' 싶었죠.

 

여느 선거에서 그랬듯, 그저 제 맘에 둔 후보와 당에게 무조건 표를 준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투표도 했고요. 후보와 당을 일치시켜 투표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미리 맘에 둔 후보와 당을 그대로 투표용지에 반영했습니다.

 

처음엔 이 정도로만 선거에 참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선거풍경을 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이번 선거에 최대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제 능력껏 지역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물취재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저를 내심 흥분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얘기를 한 번 해 보렵니다.

 

2:7:8, 기호였나 암호였나

 

제가 투표할 선거구에 출마한 이들 중 몇 명은 짧게는 4년 길게는 8~10년을 지켜봐 온 인물들이라 선거 초반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이번 선거에 너무 깊은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던 면도 있습니다.

 

인천 남동구에서만 20년 이상을 살아 온 제가 보기에, 근 10년간 저희 지역 출마자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람은 2명이었습니다. (참고로, 전 아직 젊은층에 속합니다.) 아니, 3명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기호 7번을 달고 나온 이원복 후보(무소속), 기호 8번으로 나온 이호웅 후보(무소속) 그리고 한 사람을 더 넣자면 기호 4번 배진교 후보(민주노동당)입니다.

 

이 세 사람은, 제 기억으론, 2004년에 있었던 17대 총선에서도 봤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엔 이호웅 후보를 찍었습니다. (이번엔 누구를 찍었냐고요? 글쎄요, 이 기사에서는 그 부분은 빼고 싶습니다. 다음 총선일 다음 날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을 맞았습니다. (참고로, 기호 4번 배진교 후보를 17대 첫 선거와 보궐선거에서 다 봤는지 어느 한 경우에서만 봤는지 불분명합니다.)

 

이호웅 후보는 지난 17대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던 사람입니다. 16대의원도 지낸 터에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었기에 적어도 이 지역에서 그의 인지도는 높았습니다. 문제는 이 후보가 지난 2002년 대선자금에 관련된 문제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실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그의 선거책자를 보면, '2007년 2.12자로 형사면특복'이라고 하여 정치생명을 다시 이어가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후 보궐선거가 있었고 '덩굴 채로 굴러 온' 기분 좋은 결과를 받게 된 사람이 바로 이원복 후보였습니다. (사실, 이원복 후보 역시 이미 15대 의원을 지낸 경력있는 후보였답니다.) 이호웅 후보만큼이나 이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던 이원복 후보는 당연히 보궐선거 당선 1순위였습니다.

 

물론, 이원복 후보는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이호웅 후보가 다 마치지 못한 17대 의원 잔여 임기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 지역 선거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문제가 또 터졌습니다.

 

 

한나라당 소속 17대 의원으로 활동 중이던 이원복 후보가 자기 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정치생명을 되살리려는 또 한 사람 이호웅 후보가 일전을 준비중이었습니다. 사실, 이호웅 후보 역시 본래 공천을 받고 싶었던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나오게 되었고요.

 

이들 두 이씨 후보가 지닌 '상처'들은 지역 유권자 중 한 사람인 제가 보기에도 무엇보다 가리고 싶은 '아픈 곳'이었습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참 '아픈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 후보가 '한 수 접고 들어가기' 상징과도 같은 여당 후보로서 '기호 2번'을 휘날리며 떡 버티고 있으니, 아무리 인지도 높은 두 후보라고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이없는 일은 기호 1번 후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지난 기사에서도 말했듯이 통합민주당이 이 지역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호웅 후보는 그의 대형 현수막에서 통합민주당과 정책연합을 약속했다고 합니다만, 그 문제와는 상관없이, 통합민주당이 사실상 이호웅 후보에게 이 지역을 내 준 셈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호웅 후보가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낄 만한 부분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 곳이 바로 제18대총선 인천 남동을 선거구입니다. 그러다보니, 지역 유권자 중 한 명인 저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것인가, 어떻게 균형을 맞추어야 할까 등등 여러가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현수막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대면하여 취재하는 방식으로는 어딘가 균형을 잃기 쉽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 결정을 한 데에 제 내성적 성격과 부족한 취재 실력도 한 몫을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 기사가 한 두 개 나간 이후 현수막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가 제 기사의 영향력에 대해 대단한 착각을 하기 쉬울 정도로 말입니다.

 

 

'내 기사가 설마... 선거에 영향을...?!'

 

'설마... 아니겠지.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레 설레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제가 뭐라고.

 

'인물취재를 해서 선거 현황을 자세히 보도한 것도 아니고 그저 현수막 몇 개 가지고 지역 소식을 전한 것 뿐인데, 설마...'

 

처음엔 정말 순진한 착각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니까요. 정말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착각 때문에 결국 저희 동네 선거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현수막 한 가지만으로도 이 지역 선거 소식을 전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착각은 날개를 달고 날기 시작한 거죠.

 

선거 초반을 떠올려보면, 그 땐 한나라당 조전혁 후보 현수막이나 이원복, 이호웅 후보 현수막 모두 그저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속사정이 얼마간 반영된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선거기간 마지막 주말이자 투표일(4.9 수요일)을 3~4일을 앞두고부터는 현수막에 의미있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조전혁 후보가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 같다는 변화였습니다. 다른 두 후보에게도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전혁 후보측 현수막에 생긴 변화는, 제게 당장이라도 어떻게든 조 후보와 대면을 해봐야겠다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분'이 나타나셨거든요. 바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말입니다. 유세방송차량에서 목소리와 화면을 통해서도요.

 

그래서였을까요. 각 후보들 거리현수막이 이동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것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여러 내용의 현수막을 만들었는지 갑자기 선거 상황에 따라 추가 제작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건 선거 초반에는 주요 유세 지역에서 보지 못했던 현수막들이 새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현수막 한 가지로는 또 우려먹기가 좀 어렵지 않습니까? 전 사실 처음엔 그런 점에 무게를 두고 한 두 번 정도로 이번 선거 기사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암묵적 약속을 깨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 거죠. 그러다보니, 안 그래도 이 지역 출마자들에게 관심이 많던 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저희 지역 선거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유권자들 관심을 받는 선거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이제야 좀 본심이 나오네요.)

 

어쨌든, 그런 사정들 속에서 제 기사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천 남동갑 선거구에서 4명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같은 남동구인 저희 쪽(남동을 선거구)은 참 많이도 나왔고 기호 1번부터 '구멍'이 나 있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론, 인천 남동갑 선거구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나라당 이윤성 후보 중심으로 돌아가던 것에 비하면 저희는 어느 유권자 할 것 없이 저울질하기에 바빴습니다.(이건 정말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한 것으로, 거의 '사실'에 가까운 일임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원래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당선 유력 후보군들 가운데서 조전혁 후보 현수막과 이호웅 후보 현수막에 등장인물이 4명이나 될 뿐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사이좋게(?) 아래 위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이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모를 만큼 놀랐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참 재밌고 또 씁쓸한 사진이었습니다.

 

[관련 기사1: 거리에 둥지 튼 선거현수막, 후보들을 대신해 입 열다]

- 이 기사에서는 선거 초기 거리현수막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조전혁 후보 현수막 등장인물은 조 후보 한 명이었습니다.

[관련 기사2: [사진] 현수막은 두 갠데 등장인물은 4명?]

- 이 기사에서는 선거 막바지에 달라진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초기부터 이 현수막이 그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든 거리를 제가 다 다닌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애걸복걸하고 시끌벅적하게 호소하던 목소리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정말 18대총선이 끝났습니다. (그럼, 전 이제 어디로 가야하죠?^^)

 

아마도 지금 말씀드리는 게 정말 이번 총선 뒷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세 마지막 날 밤 일입니다. 저는 그날 저녁 집으로 가다가 언제나 마주치는 유세 차량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주요 유세 지역이었습니다.

 

인천 남동을 선거구에 해당하는 지역들 중에서 만수동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 중에서도 제가 사는 동네는 길목 중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유세 마지막 날 저녁이었기에 저는 조금 더 주변을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다른 후보들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인천 남동구 선거구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남동갑 선거구와 남동을 선거구입니다. 남동을 선거구엔 8개 구역이 소속되어 있는데, 간석3동, 만수1동, 만수2동, 만수3동, 만수4동, 만수5동, 만수6동, 장수서창동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희 지역 출마자들 유세차량 대부분을 그날 밤 한자리에서 보았습니다. 길목 중 길목에 해당하는 곳에 선거사무실을 갖고 있던 이호웅 후보측은 사무실 앞 큰 사거리를 아예 점령하다시피 늘어서서 그야말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선 제 마음도 울컥하더군요. 감성정치 효과를 제대로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또 묻고 싶으신가요? 그 감성정치에 영향을 받았는지... 글쎄요...)

 

그 뿐인줄 아십니까? 얼마간 거리를 두고 또 다른 곳에서는 배진교 후보측 선거운동원들이 도로 양쪽 횡단보도에 늘어서서 재밌는 율동과 노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왜 생각이 안 나는지 좀 답답합니다만, 하여튼 일렬로 늘어선 노란 여성운동원들이 아기자기하게 울동을 하고 도로 맞은편에서는 유세차량 앞에 선 3~4명의 남성운동원들이 윗도리만 벗은 채 양복 차림을 하고서 박진감있게 율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배진교 후보측 율동을 보고 집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한 번 더 주변을 돌다가 이호웅 후보측 대형 유세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배 후보측 마지막 유세는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뭐랄까, 소속 후보로 나온 사람이 누구이든 서민 냄새를 가장 많이 맡을 수 있는 당 후보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호웅 후보측 마지막 유세는 한마디로 '어게인 2004'였습니다. 16대 의원에 이어 2004년 17대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가 어이없이 스러진 그 영광을 다시 일으켜보겠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정말 정리를 해야겠군요. 그 두 후보들이 보여 준 '군무'를 보며 집으로 가는 중 다른 후보들 유세차량이 지니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날 밤이어서 그런지, 왜 그랬는지 몰라도, 이원복 후보측 유세차량을 보지 못한 것이 괜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투표일이 왔고 저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표를 주어야 했습니다. 이젠 정말 끝났습니다. 정말 다 끝났습니다. 정치권은 이제부터 시끄럽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지역 선거는 다 끝났습니다. 다 끝났기에 몇몇 후보들에게 재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모든 후보에게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고 서운해 하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듣기에 따라선 모두에게 드리는 친밀한 대화일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동갑 선거구와 달리 남동을은 올해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번의 총선에서도 참 굴곡이 많았습니다. 지역 선거 역사를 그런대로 잘 알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굴곡진 이 지역 정치 역사 때문에도 더 많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아 참, 제 기사의 영향력에 대한 착각은 이젠 좀 날개를 접어야 할 듯합니다.)

 

정책 없고, 뽑을 만한 마땅한 사람 없고, 선거 자체가 중구난방이던 이번 총선을 역사 속으로 보내면서도 고민거리는 참 많습니다. 국회 너머 저 '푸른집'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안고 제 본래 일에 더욱 충실하고 싶습니다.

 

고민거리가 많다는 제 고백 아닌 고백은 사실 제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반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 그리고 지역 출마자들에게 이토록 끝까지 관심을 가진 건 그들에게 바라는 충실함이 곧 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총선에 나온 이 지역 출마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부탁을 끝으로 기사도 총선도 정말 마무리하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다른 곳으로 가지 마시고 이 지역에서 다음 총선에 또 나오십시오. 그래서 정말 이 지역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정치인이 되어 주십시오. 정말 아쉬운 건, 제가 아마도 다음 선거에선 이 지역 유권자가 아닐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최대한 노력해서 다시 이 지역 유권자 신분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다시 이 지역에 출마하셔서 제 앞에서 또 멋지게 선거를 치러주십시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정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작년에 있었던 17대 대선도 이번 18대 총선도 다 끝났습니다. 이젠 정말 각 당이 어떻게 싸우는지 볼 일만 남았을까요? 부디 멋지고 충실한 국회가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맑은 대한민국 산하를 떠올리며, 인천에서.


태그:#4.9총선, #18대총선, #인천 남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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