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남 영광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양지식당. 오른쪽 기둥의 ‘모범음식점’ 팻말이 그냥 걸린 게 아니었습니다.
 전남 영광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양지식당. 오른쪽 기둥의 ‘모범음식점’ 팻말이 그냥 걸린 게 아니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지난 일요일(6일)에 굴비의 고장인 전남 영광에서 전주비빔밥도 울고 갈 정도로 맛있는 육회비빔밥을 먹고 왔습니다. 목포와 무안을 다녀오는 길에 영광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었거든요.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전화도 하지 않고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약국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옆집 가게 아저씨에게 "일요일마다 문을 닫느냐?"라고 물었지요.  

"아니랑께요! 일요일도 문을 여는디···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가 싶소. 쪼끔 기다리믄 문을 열것 잉게·· 기다려 보시지라···."

목포에서 부산으로 바로 오려다 친구 얼굴이 떠올라 저녁이라도 하려고 왔는데 약국 문이 닫혀있어 여간 허탈한 게 아니었습니다. 손님과 저녁식사 하러 가느라 문을 잠근 것 같아, 한 발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할지 망설이는데, 작년 여름 아내와 함께 영광에 왔을 때 친구와 불고기 백반을 먹었던 길 건너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왕 왔으니 저녁이나 먹으면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주인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반찬들

쟁반은 비록 쭈글어졌지만 비빔밥과 반찬이 깔끔하고 정갈하게 차려져 있어, 돌아가신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연상시키더군요
 쟁반은 비록 쭈글어졌지만 비빔밥과 반찬이 깔끔하고 정갈하게 차려져 있어, 돌아가신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연상시키더군요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식당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정돈된 식탁 사이에서 젊은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하며 맞이했습니다. 간판에는 비빔밥, 곰탕 전문이라고 적혀 있는데, 무엇을 먹을까 하다 육회비빔밥을 시켰습니다. 비빔밥 맛은 어느 지방을 가도 비슷비슷 하니까요.  

주문을 하고 조금 있으니 쟁반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빔밥에 싱싱한 육회와 계절 나물과 채소, 고명이 얹혀있는 걸 보고,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들과 모이면 '비록 범부에 지나지 않지만 입은 청와대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미식가인 제가 육회비빔밥은 물론 계절에 어울리는 반찬 하나하나에서 음식의 생명인 정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밴뎅이 젓갈에 담근 매콤한 파김치는 고향에서 먹던 입맛을 되살려주었습니다.
 밴뎅이 젓갈에 담근 매콤한 파김치는 고향에서 먹던 입맛을 되살려주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매콤한 파김치 맛이 일품이었는데, 뿌리가 둥근 것이 시골집 텃밭에서 자란 토종으로 보이더군요. 건강식품으로 인정받는 배추김치와 버섯나물은 시장 반찬가게에서 사먹기만 했던 저의 입맛을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소의 양지 국물이 깃들여진 고소하고 시원한 미역국과 상큼한 향이 그만인 미나리 무침, 겨울철의 백김치처럼 양념이 없이도 봄철의 모든 맛을 사로잡는 배추나물과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숙주나물은 육회비빔밥의 진가를 더욱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미역국, 미나리무침, 버섯무침, 숙주나물, 배추나물. 각자 독특한 맛으로 육회비빔밥의 진가를 더욱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미역국, 미나리무침, 버섯무침, 숙주나물, 배추나물. 각자 독특한 맛으로 육회비빔밥의 진가를 더욱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봄철의 별미인 배추나물과의 조화

흔히들 비빔밥의 맛은 콩나물과 고추장에 있다고 말합니다. 계란을 말하는 분도 계시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밥에 윤기가 흘러야 하고, 밥톨을 손으로 건드렸을 때 달라붙지 않을 정도로 밥이 토실토실해야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국내에서 재배한 참깨로 짜낸 고소한 참기름도 무시할 수 없는데, 모든 음식에는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 되겠네요.

잘 비벼놓은 육회비빔밥. 고소한 숙주나물과 상큼한 배추나물이 맛을 더욱 돋워주었습니다.
 잘 비벼놓은 육회비빔밥. 고소한 숙주나물과 상큼한 배추나물이 맛을 더욱 돋워주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육회비빔밥은 산과 밭에서 나는 나물과 채소에 해물과 육류까지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입니다. 그런데 봄철에 딱 어울리는 싱싱한 색깔의 배추나물이 상추와 함께 들어 있더라고요.

배추나물의 담백하고 상큼한 맛은 봄철에 잃기 쉬운 입맛을 돋워줍니다. 특히 맵거나 짜지 않아 당뇨나 혈당을 걱정하는 분들도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봄철의 별미로 인기가 좋지요.

가끔 씹히는 참깨의 고소한 향이 그만인 배추나물과 상추 그리고 육회가 어우러진 비빔밥의 맛을 음미하며 먹다 보니 침샘에서 침이 솟더군요. 그럴수록 더욱 천천히 먹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먹으면 소화가 금방 되기 때문에 식후 포만감으로 인한 졸음이나 나른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거든요.  

군에서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받은 양지식당은 육회비빔밥과 일반 비빔밥의 값이 같았는데, 그만큼 맛내기에 자신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식사를 마치고 주인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이번 18대 총선 결과도 영광의 육회비빔밥처럼 자질과 능력을 겸비한 여야 후보들이 잘 비벼져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소하고 담백하고 상큼하게 말이지요.  

다음을 기약하고 광주행 버스에 오르다

식당에서 나오니 땅거미가 어둡게 깔렸고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친구는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도 연결되지 않고, 옆집 가게 주인은 기다리면 올 것이니 기다려보라고만 하고,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아쉬우면 찾는다고 '이럴 때 아내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년 여름 영광군의 관광명소인 원불교 영상성지와 백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넓게 펼쳐진 서해바다를 마음껏 가슴에 품으며 머리를 식혔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부산 지하철 막차 시간을 생각하니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다음을 기약하고 광주행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위기 탓인지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제 가슴을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태그:#육회비빔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