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무리 무딘 사람들도 "꽃이 피었구나!"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젠 작은 꽃들도 무리지어 피어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주어진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판을 바라보면 만날 수 있는 꽃들이 참으로 많은 계절입니다. 특별히 꽃을 만나러 간 길이 아니라 4월 5일(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자투리 시간을 내며 만난 꽃들은 모두 16가지나 됩니다. 그 중에서 10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민들레는 싹이 연할 때에는 이파리를 나물이나 쌈으로 먹어도 맛나고, 뿌리도 봄나물로 그만입니다. 씁쓰름한 맛, 그 맛은 어릴 적 풀피리를 만들기에 딱 좋은 민들레의 빈 꽃대를 입에 물었을 때의 그 맛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쓴나물들이 입맛을 되찾아줍니다. 아무리 뽑아도 잘라내어도 풍성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그 생명력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식목일이자 한식이라 잠시 교외에 다녀오는 길에 휴식을 위해 잠시 차를 세우고 산길을 걸었습니다. 요즘 한창이지만 쉽게 만날 수는 없는 만주바람꽃을 만났습니다. 피어나는 곳에서만 피어나는 꽃,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꽃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행운이겠지요.
 
올해는 꼭 만나고 싶은 풀꽃이 있습니다. 깽깽이풀, 모데미풀, 연령초, 들바람꽃, 보춘화, 구상난풀…. 만나기만 하면 바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 터인데 들꽃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 이후 만나기를 간절히 고대해도 아직 만나지 못한 꽃들입니다.
 
 
"야, 개나리다!" 하고 감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너무 흔하디 흔해서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문득 제주도의 개나리들이 생각납니다. 노란 개나리들이 제 아무리 만발해도 유채꽃에 파묻혀버리고 마는 봄날, 그런 봄날 비라도 내리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제주의 개나리가 있었습니다.
 
 
봄나물의 대명사 '냉이', 냉이국이나 냉이무침은 밥도둑입니다. 긴 겨울 추위를 향기로 바꿔 온 몸에 간직한 냉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옹골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볼품없지만 깊은 향을 가진 꽃, 겉으로 드러난 것은 작아도 속뿌리는 깊은 꽃입니다. 정치하는 분들이나 권력깨나 잡았다고 하는 분들의 속내가 냉이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 속에서도 핀다던 매화가 꽤 늦잠을 잤습니다. 막 피어나는 벚꽃과 잘 구분이 되지 않아 지난해 매실이 탐스럽게 달린 것을 보았는데도 다시 한 번 이름표까지 확인해 봅니다. 나른한 봄햇살에 활짝 피어난 꽃, 그 꽃이 열매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천천히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감성은 그런 것에 무관심한 사람들과는 달라도 뭔가 다르겠지요.
 
 
오늘 소개해 드리는 꽃들 가운데 앞에 소개한 만주바람꽃과 뒤에 소개할 올개불나무의 꽃만 가까운 산에서 만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 한복판 공원을 산책하다 만난 꽃들입니다.
 
공원의 비탈진 곳의 흙유실을 막기 위해 잔디를 심은 곳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잔디뗏장을 옮길 때 함께 묻어왔을 것입니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공원에서 산자고나 할미꽃, 조개나물 같은 야생화다운 야생화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물론 그들만 야생화가 아니라 냉이나 꽃다지 같이 작은 꽃들도 야생화지요.
 
 
꽃줄기의 끝이 둘둘말려 꽃이 하나 둘 피어나는 것은 꽃마리, 아주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꽃줄기의 끝이 말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꽃바지입니다.
 
꽃마리라는 이름도 꽃바지라는 이름도 앙증맞게 느껴지는 것은 그 꽃들이 작고 작아 앙증맞기 때문입니다.
 
 
할미꽃을 서울 하늘에서 원예종이 아닌 야생화로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주변에 서너 개체가 함께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만났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난 할미꽃, 혹시라도 누가 캐가면 어쩌나 했는데 뿌리가 깊은 덕분에 잘 자라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할미꽃 곁에 무릇도 열심이 줄기를 내고 있네요. 할머니의 손녀딸이 서울로 시집을 왔는가봅니다.
 
 
이 꽃을 제대로 담아야지 했는데 어느 새 시들시들, 이제 막 피어난 듯한 꽃이라고는 이것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너무 늦게 나왔구나 싶더군요. 벌써 피고 지는 꽃들이 있는 것을 목도하니 봄이 이렇게 빨리 왔다가 빨리 가는구나 싶더군요.
 
이른목련들은 벌써 화들짝 피었다가 하나 둘 꽃잎을 날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봄이 참으로 깊습니다.
 
지천에 꽃이 피었습니다. "이래도 우리가 보이질 않아요?" 하며 작은 꽃들도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쯤은 숨을 고르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세요. 자연에게로 눈길을 주어보세요. 콘크리트 틈, 아스팔트 틈 사이에도 봄이 완연하니까요. 자투리 시간이라도 눈길을 주는 시간만큼 여러분의 삶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꽃다지, #올괴불나무, #냉이, #할미꽃, #야생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