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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떨어지다.'

 

꽃 피는 봄에 꽃잎이 떨어졌다.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떴다.

 

고 김음전 할머니. 올해 여든네 살이란다. 지난 3일 새벽 1시경 마산 연세병원에서 한 많은 생을 뒤로 하고 잠드셨다.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17살 때 위안부로 갔단다.  좋은 곳에 취직시켜 준다는 어떤 아저씨의 말을 듣고서. 부산에서 중국으로 간 할머니는 위안부로 모진 고통을 당하셨다. 그 시간은 3년.

 

귀국길도 힘들었다. 주먹밥 몇 개로 허기를 채우며 몇 달이 걸려 왔단다.

 

그 뒤 할머니는 경남 창녕 출신의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네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단다. 그런데 남편은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혼자서 네 자식을 키운 것이다. 할머니는 마산에서 살아왔다.

 

17살 때 취직시켜 준다는 말 듣고 위안부로

 

그런 할머니를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창원·마산지역 시민단체가 '고 김음전 할머니 시민사회장(葬)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영만·이경희·이덕자·이병하·이창현·이흥석·전점석·황광지씨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문순규씨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추모식이 4일 저녁 마산 연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강주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과 김유철 경남민언련 이사, 이옥선 마산시의원, 정성기 경남대 교수, 송도자  '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 강성진 민주노총 경남본부 조직국장 등이 참석했다.

 

'일본국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이경희 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진작 우리가 함께 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우리가 모여 뜻을 같이하고 있어 고맙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오셨습니다. 주먹밥 하나 먹고 며칠을 지냈다고 합니다. 할머니 집에 가면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문은 할머니가 세상을 보는 통로였습니다. 할머니들이 계속 우리 곁을 떠나고 계십니다. 가시기 전에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가 회복되는 날까지 우리가 힘을 모아 나갑시다."

 

 

"진작 우리가 함께 했어야 했는데…"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활동가 심수임씨가 추모시를 써서 직접 낭송했다. '김음전 할머니, 꽃잎 가득한 날 가시었습니다'는 제목의 시다.

 

하늘가 언저리/할머니의 웃음소리가 그리운 날입니다/어여쁜 색들로 터뜨리는 꽃들의 향연 사이로/파란나라, 하얀나라/그리웁던 내 조국에/가난이 죄인지라 … 봄빛이 춤을 추고/신록이 반기는 그 빛으로 할머니 미소처럼 환하게 가시옵소서 ….

 

마산·창원에서 노래 활동을 하는 가수 김산씨가 추모곡 '귀천'(시 천상병)을 불렀다.

 

이병하 경남진보연합 공동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먼저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운명으로 육신을 찢기고 살아온 지난 아픔을 보상받기는커녕 억울하다 표현도 못하고 눈을 감아버린 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고 말했다.

 

"국가가 돌보지 못하여 어린 시절 고향과 친구를 뒤로 한 채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끌려가 청춘을 잃어버렸음에도 '화장을 하지 말고 그냥 묻어달라'고 하신 유언에서 다시금 우리 강산과 우리 민족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오늘을 계기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슴에 한을 품고 억울하게 한분 한분 우리 곁을 떠나게 되는 잘못을 공유하여 국가나 지방단체가 우선하여 여생을 편히 마치도록 행정 지원을 하도록 하는 등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를 알고 찾아가는데도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을 다짐하면서 오늘의 아픔을 꼭 기억하였으면 합니다."

 

유족 대표로 고 김 할머니의 딸이 나와 인사했다. 그 딸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고맙습니다"고 말할 뿐.

 

할머니의 빈소에는 변도윤 여성가족부장관과 김태호 경남지사, 황철곤 마산시장, 이흥석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창원대 총학생회 등에서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망향의 동산' 가지 않고 마산으로 장지 정해

 

고 김음전 할머니는 평소 땅에 묻히기를 바랐다. 화장하지 말았으면 하는 뜻을 남겼다. 장례위원회와 유가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할머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묻혀 있는 경기도 '망향의 동산'에 갈 수 있는 자격이 되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에 가려면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 화장에 반대하셨고, 유가족들과 가까이 있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마산 진동에 있는 공원묘원으로 장지를 정했다.

 

장례식은 5일 거행된다. 추모식에 사용된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소녀 같은 할머니 사랑합니다. 꿈결같이 행복함 가득한 곳에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태그:#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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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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