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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오후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권 불법승계 고소고발 사건을 포함해 비자금 사건, 정관계·법조계 로비사건 등 3대 의혹사건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오후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권 불법승계 고소고발 사건을 포함해 비자금 사건, 정관계·법조계 로비사건 등 3대 의혹사건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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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옮긴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러 달 동안 소란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고, 진실이든 아니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룹 회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은 느낍니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이후 13년 만에 또 다시 '비자금' 문제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오후 1시 58분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는 그를 향해 삼성SDI 해고자들은 피켓을 들고 '강제해고 철회하라'라고 시위를 벌였다. 진보신당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사진이 붙은 피켓에 "아버지 오늘이 끝이에요"라는 '의미심장한' 말풍선을 달았다. 

이건희 회장, 10조원 비자금도 모르고 있었다?

이 회장은 포토라인에 서자마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날 기자들은 ▲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지시했느냐 ▲ 삼성생명 차명주식은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냐 ▲ 계열사들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했냐 ▲ 에버랜드와 SDS 경영권 승계를 직접 지시했느냐 ▲ 정·관계에 로비를 직접 지시한 적이 있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답은 매번 같았다.

기억에 없거나, 잘 모르겠고, 비자금을 조성한 적 없으며, 정·관계 로비사실도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혐의사실 일체를 부인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기자회견 이후 무려 5개월이 넘도록 제기돼 온 삼성의 3대 비리의혹(▲ 비자금 조성 및 관리 ▲ 불법로비 ▲ 경영권 불법승계)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제기된 삼성그룹 비리 의혹의 정점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었다. 10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삼성그룹 비자금 규모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몰랐을 리 없다.

또, "돈을 받지 않는 정치인 등에게는 호텔 할인권이나 와인을 주라"는 내용을 담은 '회장 지시사항'이 공개됐는데도 "정·관계에 불법로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양심불량'이다. 이미 추미애 의원도 삼성 측 로비를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고, 이용철 변호사(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는 삼성그룹의 불법로비 행태를 일찌감치 폭로한 바 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본인이 지시한 사항에 대해서조차 아니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대표그룹'의 회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삼성 비자금 비리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는 5일 천주교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열린 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에 동석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인사들 가운데 현직 최고위직 검찰 간부도 있다고 폭로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 김인국 신부.
 삼성 비자금 비리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는 5일 천주교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열린 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에 동석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인사들 가운데 현직 최고위직 검찰 간부도 있다고 폭로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 김인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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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전 법무팀장 "이건희 회장, 죄의식이 없다"

특히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이미 특검은 삼성생명 주식 일부가 이건희 회장의 차명 소유라고 확인한 바 있다. 이 회장의 차명 지분 가운데 얼마나 비자금으로 활용됐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게 특검의 의무다. 물론 이 회장과 삼성 측은 고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개인 돈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대고 있다. 

심지어 기자들을 향해 '삼성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간 것은 바로 너희들'이라고 화살을 거꾸로 돌린 대목은 정녕 점입가경이다. 이 회장은 마치 기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삼성그룹에 이상한 범죄혐의를 뒤집어씌워 의혹을 키웠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지난 5개월간 지속된 삼성의 증거인멸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왜 그토록 많은 직원들이 동원돼 증거인멸에 나섰을까.

김용철 전 팀장은 이날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범죄집단처럼 만든 것은 언론이라고 화살을 거꾸로 돌린 점에 대해 "죄의식이 없다"고 짧게 논평했다. 김 전 팀장은 "거대한 '삼성특검 드라마'의 마지막 무대가 올랐다"며 "이제 다 끝난 모양"이라고 씁쓸해 했다.  

피노키오 신드롬 그리고 페르소나의 함정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은 지난해 겨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구속이 아니다. 정말 바라는 것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이 습관적으로 비자금을 만들고, 회사의 결정 없이 아무 데나 함부로 회사 돈을 쓰는 관행과 행동을 국민 앞에 사과하는 일이다. 삼성이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앞으로는 깨끗한 기업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4일 특검조사에 앞서 "그룹 회장이기 때문에 (불거진 모든 문제에) 당연히 책임을 느낀다"고 밝힌 이건희 회장이 지난 5개월여 지속된 여러 의혹에 대해 얼마나 양심에 걸맞은 태도로 임할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삼성그룹 안에서 수년간 녹을 먹던 최측근 법무팀장의 '양심' 고백으로 불거진 삼성그룹의 여러 의혹에 대해 양심의 소리로 화답하기를 정녕 바랄 뿐이다. 

성인이 계속 거짓말을 반복해서 더 이상 그의 삶엔 진실이 남아 있지 않게 되는 마음의 질병, '피노키오 신드롬(Pinocchio Syndrome)'에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빈곤의 대물림처럼, 거짓말 불감증도 교육되고 대물림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견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의 이론처럼,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거짓말이 진짜라고 합리화하는 페르소나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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