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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만난 귀한 설중매

하라즈루에서 만난 설중매
 하라즈루에서 만난 설중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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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가 7시에 시작되니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어제 저녁 아리타 도산을 내려오면서 약간의 추위를 느꼈지만 눈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가까이 치쿠고가와(筑後川) 주변의 나무에는 까마귀가 몇 마리 앉아 있고 더 멀리 보이는 산은 완전히 겨울로 변해 있었다.

식당으로 가 식사를 마치고 눈을 즐기기 위해 조금 일찍 밖으로 나갔다. 호텔 앞 주차장을 지나 밭으로 가니 매화꽃과 사과나무가 눈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보여준다. 특히 어제 하루 종일 보았던 매화꽃이 오늘은 눈 때문에 잠시 시간의 진행을 멈춘 것 같다. 매화가 눈에게 잡혀 다가오는 봄과의 만남을 유예한 것 같다.

파릇한 풀과 매화나무 그리고 눈
 파릇한 풀과 매화나무 그리고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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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눈 앞에서 그리고 매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은 대지 위에는 눈이 덮여 흰색과 녹색이 조화를 이루고, 사과나무 밭은 바닥과 나무에 눈이 덮여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다. 매화나무 꽃에는 하얀 눈이 덮여 말 그대로 설중매(雪中梅)다. 꽃봉오리와 가지 그리고 활짝 핀 꽃을 덮고 있는 눈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뜻하지 않은 진기한 풍경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정말 아늑하고 평안한 곳 후나야마 언덕

아침 8시 차는 하라즈루를 출발 구마모토(熊本)현 다마나(玉名)군 기쿠수이(菊水)정을 향한다. 이곳에 있는 후나야마(船山) 고분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차는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토수까지 간 다음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큐슈 자동차도로를 타고 구마모토 쪽으로 간다. 우리 차는 토수에서 약 40분을 달린 다음 기쿠수이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지방도를 타고 마침내 희고(肥後) 민가촌 주차장에 이른다.

후나야마 고분 표지석
 후나야마 고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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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야마 고분 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후나야마 고분 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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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날씨가 좋아지고 기온이 올라가 눈은 정말 눈을 씻고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정말 겨울의 세계에서 다시 봄의 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차를 내리니 아주 아늑하고 평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아직 자연에 의지하며 자연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보금자리로 삼을 만한 지세이다. 우리는 먼저 이곳에 있는 에다 후나야마(江田 船山) 고분을 찾아간다.
   
여기서 에다는 에다가와(江田川)를 말하는데, 동에서 서로 흘러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기구치가와(菊池川)에 합류한다. 후나야마 고분은 에다 남쪽 기구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무덤이 기구치가와를 향하고 있다. 후나야마는 선산(船山)인데,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배 모양의 언덕이 된다. 이들 봉분들이 마치 배처럼 기구치가와로 나가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풍수지리를 고려한 지명이고 풍수지리에 입각해 만든 고분이다.   

전방후원분의 전형을 보여주는 후나야마 고분

전방후원분의 전형을 설명하는 안내판
 전방후원분의 전형을 설명하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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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야마 고분은 하나의 작은 산이다. 서쪽으로 향한 입구로 가니 고분의 바깥 철문이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유리로 차단한 두 번째 문이 나온다. 이 문은 석관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닫혀있다고 한다. 유리 안에는 기온차로 인해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전방후원분을 제대로 알려면 안으로 들어가 확인을 해봐야 하는데 아쉽다. 전방후원분이란 말 그대로 앞부분은 방형 즉 네모꼴로 되어 있고 뒷부분은 원형 즉 둥근 형태로 되어 있는 무덤을 말한다.

고분 앞에 설명을 보니 전방후원분도 시대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경 처음 생겨날 때는 전방이 낮고 후원이 높은 형태였다. 이것이 5세기경에는 전방의 앞부분이 높아져 후원의 높이와 같아졌을 뿐 아니라 무덤 주위에 해자를 둘렀다. 이것이 6세기에는 전방부의 입구 부분이 넓어지고 연도가 짧아지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후나야마 고분 입구의 모습
 후나야마 고분 입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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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 후나야마 고분은 5세기 말 6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 길이가 46m, 전방부의 폭이 23m, 높이가 6m, 후원부의 지름이 26m, 높이가 7.9m이다. 이 고분에서는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었는데, 청동 거울, 구슬, 옥, 갑옷, 칼, 금동관, 금귀고리, 금팔찌 등 모두 92점에 이른다. 이중 은상감을 한 철제 칼(鐵刀)에서는 90자에 가까운 명문(銘文)이 확인되었다.
 
이 내용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된다. 첫째 다이가 다스려 천하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둘째 8월 중에 쇠솥을 사용하여 4척의 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셋째 이 칼을 지니는 자는 장수하고 자손이 번창할 뿐 아니라 계속 통치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글씨를 쓴 사람이 장안임을 알리고 있다.

"台(治)天下獲□□□鹵大王世、奉事典曹人名无□(利ヵ)弖、八月中、用大鉄釜 并四尺廷刀、八十練、□(九ヵ)十振、三寸上好□(利ヵ)刀、服此刀者、長寿、子孫洋々、得□恩也、不失其所統、作刀者名伊太□(和)、書者張安也(東野治之)"

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
 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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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은 공주 무령왕릉의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청동 거울은 후쿠오카 지역에서부터 출토되기 때문에 그 전래 경로를 추적해볼 수도 있다. 금관과 금동제 신발도 공주와 익산 등에서 나온 백제의 유물과 크기만 조금 다를 뿐 모양은 똑같다. 그리고 금귀고리 역시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같아서 가야와도 문화 교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건 또 모양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네

후나야마 고분 옆의 경총 고분
 후나야마 고분 옆의 경총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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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야마 고분을 보고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경총(京塚)고분으로 간다. 경총고분은 히고 고대의 삼림에 둘러싸인 고대 유적지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경총 고분은 원형으로 이루어진 봉분으로, 윗부분을 무 자르듯 잘라내 마치 안이 꽉 찬 분화구처럼 보인다. 민속 씨름할 때 단을 쌓고 그 위에 모래를 얹은 씨름판 생각이 난다. 아직은 2월이라 잔디에 싹이 나지 않아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석인의 언덕에 서 있는 유물
 석인의 언덕에 서 있는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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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경총고분 옆에는 석인(石人) 즉 돌로 만든 석상 언덕이 있다. 이곳에는 석전(石殿), 석인(石人), 요괘(腰掛)이 있다고 하는데 석인을 제외하고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을 보고 나서 우리는 조몬(繩文)시대의 패총을 보기 위해 에다가와를 건넌다. 이 하천에는 조몬교라는 다리가 있어 건너기도 편하고 운치도 있다. 안내판을 보니 안전성과 내구성 그리고 주위경관의 조화를 고려해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인다운 섬세함이 느껴진다.

다리 건너는 약원(若園, 와카조노)지구로 시대가 조몬시대 즉 석기시대로 넘어간다. 앞에서 보았던 후나야마 고분이 5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인데 비해 와카조노의 패총은 기원전 1만년∼23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다리를 건넘으로써 우리는 짧게는 3000년 길게는 1만년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셈이 된다.

조몬시대 패총
 조몬시대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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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 옆에는 이들 석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움집을 만들어 놓아 고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짐작케 해 놓았다. 계단을 통해 움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운데가 파여 있다. 이곳에는 화덕이 놓여 있어 평시에는 음식을 만들었을 테고 겨울이면 불을 피워 난방을 했을 것이다. 움집 안에서 밖을 보니 문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정말 밝게 비쳐든다. 빛의 중요성을 여기서 실감하게 된다.

밖으로 나와 우리는 기구치가와를 쳐다본다. 파란 강물이 자연과 어울려 정말 아름답다. 기구치와 에다 두 개의 하천은 이곳에 살던 고대인들에게 생명의 젖줄이었다. 강전(江田)이나 선산(船山)과 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서인지 그들은 죽어 고분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하천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기구치가와의 아름다운 모습
 기구치가와의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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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월 22일에서 26일까지 큐슈 북부를 여행하고 기록한 여행기이다. 2월 27일부터 3월 22일까지 10회를 이미 연재한 바 있다. 오늘부터 다시 연재가 이어진다.



태그:#후나야마고분, #경총고분, #석인의 언덕, #조몬교, #기구치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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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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