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바야시 전쟁만화 가운데 하나.
▲ 겉그림 고바야시 전쟁만화 가운데 하나.
ⓒ 초록배매직스

관련사진보기


- 책이름: 제2차 한국전쟁, 육이오 Ⅱ
- 글·그림: 고바야시 모토후미
- 옮긴이: 박맹렬
- 펴낸곳: 초록배매직스(2001.9.17.)
- 책값: 6000원

(1) 전쟁만화를 보다

대통령 선거가 지나고 국회의원 선거를 맞이합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에는 기초광역단체장 선거가 다가옵니다. 선거만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끊기지 않는 정치판 나라인 대한민국입니다.

사건사고도 참으로 많아서 신문과 방송마다 아이를 죽인다든지 괴롭힌다든지 성폭력을 휘두른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줄줄줄 이어집니다. 신문 1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방송 첫 소식부터 마지막 소식까지, 흐뭇하게 웃으면서 맞이할 만한 이야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어쩌다가 한두 차례 자리 메꾸기로 들어올 뿐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준위님, 복귀했습니다." "사업한다더니, 어찌된 거야?" "거품경제가 끝나면서 실업입니다." "저런, 이쪽(군대)은 실업은 없는데 말야" (27쪽)

4월 9일이 선거이고 오늘은 4월 3일. 그러나 선거 공보물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 정치꾼 힘이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한 동네와 한 나라 흐름을 움켜쥐거나 다스리게 될 사람을 뽑는 마당인데, 기본이 될 만한 정책 살피기를 해야 할 공보물을 받아볼 수 없습니다.

골목마다 서 있는 후보들이 뿌리는 이름쪽에 적힌 후보자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돈이 있는 정당은 그럴싸한 인터넷방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후보들이 내놓으려는 정책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 줄짜리 죽죽 적어 놓고는 있으나, 어떻게 실천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여쭈어 봅니다. 자기들도 인터넷방이나 '곧 배포가 될 공보물'에 정책 이야기는 제대로 안 실었다고 밝힙니다. 그러면 후보자들이 내놓으려는 정책, 그리고 정책을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이나 방법은 어디에서 알아보아야 할까요. 바쁘디 바쁜 후보자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지역신문을 샅샅이 뒤지면서 우리 구 후보자와 이웃 구 후보자 정책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봅니다. 그나마 신문에 나온 정책 검증 기사는, 후보자 인터넷방에 실린 이야기보다는 낫습니다. 지난번 선거 때 들고 나온 공약을 이번에도 들고 나왔다는 비교분석이 몇 가지 있고, 시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을 자기 공약인 듯 끼워넣었다는 비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아쉬운 대로 후보자들한테 '만나보기(인터뷰) 부탁'을 해 봅니다. 모두들 저녁 열 시면 하루 일을 마친다고 하기에, 그때쯤 보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연락을 하고 기다리는데, 한 후보자한테만 연락이 닿아서 엊저녁에 만나보기를 하고, 다른 후보자한테는 꿩 구워먹은 소식입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달가워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언론사 만나보기를 안 해도 자기들은 당선되리라 믿고 있는지, 아니면 만나보기를 해 보아야 도움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야말로 밤잠을 잘 틈도 없어서 기자들이란 만날 수 없어서 그러한지 알 길이 없습니다.

유권자로서, 또 인터넷신문 시민기자로서 후보자 만나보기는 안 되는가, 아니면 연락한 횟수가 모자란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만나보기를 손사래친다면 사무실로 바로 찾아가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예 저녁 열 시쯤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놈은 북한의 스파이지? 그 눈은 빨갱이들 눈이다." "용서해 주세요. 사토 삼좌님, 도와주세요." "함부로 만지지 마, 모두 네가 나쁘다. 쓰레기는 어딜 가도 쓰레기야!" (128쪽)

이럭저럭 계획을 짜고, 어제 만난 후보자와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하다가 골이 쑤셔서 잠깐 쉬기로 합니다. 쉬지 않고 타자를 치느라 팔이 쑤시고 손가락이 굳고 팔뚝이 저립니다. 옆구리는 결리고 무릎과 다리도 뻐근합니다.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입니다. 낮햇살을 받으며 살짝 잠이 들었고, 아직 지지 않은 저녁햇살을 받으며 잠에서 깹니다. 시금치를 씻어서 늦은 낮밥을 먹습니다. 튀밥으로 입가심을 합니다. 손도 쉬고 머리도 쉬고자 밥상 맡에 놓고 있던 만화책을 하나 펼칩니다. 지난주에 헌책방에서 만난 만화책입니다. 번역을 하는 어느 선배가 "줄거리는 내키지 않아도, 붓질은 놀랄 만하다"고 하면서 소개를 했기에 저도 한 권 찾아보면서 읽고 있는 만화책입니다.

"중사, 이쪽으로 와 봐라. 재미있군." "터커, 뭐야? 사체가 새삼스러운 건가?" "저놈(죽은 북한 병사)들은 먹을 것을 죽어도 놓지 않습니다. 전쟁의 원인이 식량부족이라는 건 정말인가 봅니다." (147쪽)

그린이는 고바야시 모토후미. 이른바 '전쟁만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 '초록배 매직스' 출판사는 이 만화 <제2차 한국전쟁, 육이오 Ⅱ>까지 하여 모두 열한 권에 이르는 고바야시 작품을 우리 말로 옮깁니다.

이 만화를 무슨 마음으로 우리 말로 옮겼을까 궁금해서 책 앞뒤를 살펴보지만, '옮긴이 말'은 없습니다. 다만 '그린이 말'이 203쪽에 빽빽한 글자로 들어가 있습니다. 고바야시 님은 <제2차 한국전쟁, 육이오 Ⅱ>을 그리기 앞서 한국에 왔을 때 느낀 이야기를 적는데, 아래 대목이 눈에 띕니다.

"한국에는 중고차 시장이 없다고 한다. 국산 엔진의 내구력이 없어서 5, 6년 만 지나면 못 쓰게 되는 모양이다. 소형 엔진은 국산이라도 대형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88형 전차는 엔진을 크라이스러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마츠다는 한국에 엔진을 1만 5천 엔에 팔고 있다고 한다. 기본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일까? 이렇게 쓰면 일본 쪽이 훨씬 뛰어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GNP 1위로 일본인의 90%가 중류의식을 가진 우리는 정말 부유하단 말인가? 생활고로 전차에 뛰어들거나, 아사한 노인의 뉴스가 화면에 나와 노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일본이 정말 풍요로운 나라인가? 고도성장과 고학력 사회에 의한 결과라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다시 한 번 읽어 보지만, 아리송할 뿐입니다. 고바야시님은 적어도 1994년 뒤에 한국에 왔고, 이 작품도 그 뒤에 그렸습니다. 그런데 남·북녘 군인 복무기간 숫자를 틀리게 적은 대목이 보이고, 남녘 국인이 디엠지에서 몇 달을 보내고 바꾸는지를 잘못 적습니다(24쪽). 군인 내무반 그림을 보면 무척 꼼꼼히 그린 듯이 보이지만, 군화 놓인 자리를 잘못 그립니다(58쪽. 군화는 침상 바로 밑으로 들어가도록 놓고 잠을 잡니다.)

남북 사이에 전쟁이 터지니, 군인들이 어깨에 붙은 사단마크를 떼어내는 대목이 있습니다. 번역에서는 '부대장 계급장'을 뗀다(75∼76쪽)고 나오는데, '사단마크와 계급장'을 뗀다고 해야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자잘한 숫자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도 아닌 일본사람이니 그럴 수 있고, 이분이 그린 만화결을 보면 슬그머니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다만, 출판사 편집자는 이런 대목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나저나, 고바야시님은 전쟁만화를 왜 그렸을까요?

"우리는 쪽바리가 아냐, 일본사람이야! 알겠어? 바보야!" … "나는 일본인이다! 북한놈들 나와!" … "난 쪽바리가 아니야. 일본인이다." ..  (159, 166, 167쪽)

<제2차 한국전쟁, 육이오 Ⅱ>에서는, 북녘이 남녘을 쳐들어옵니다. 땅굴을 파서 들어오고 탱크로 밀어붙이고 폭격기가 서울을 뒤덮고 ……. 그렇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빨갱이(117쪽)' 나라 잠수함 두 대는 일본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고 멋지게(?) 가라앉습니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에까지 떨어지는 건가? 그 노동인가 대포동인가 하는 미사일 말일세." "수상 각하, 떨어지느냐 안 떨어지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직접적인 위협을 없애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요 안건은 나 혼자로는 불가능하네."
"수상 각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국가니까요. 지금이야말로 진짜 위기관리능력을 보이셔야 할 때입니다. 우리 일본의 주권과 안전보장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65쪽)

(2) 일본은 무엇을 바라나

탱크 한 대를 그려도 꼼꼼하고 멋들어지게 그렸다고 하는 고바야시님입니다. 빈틈없는 자료살핌과 힘이 넘치는 붓끝은 뭇사람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렇지만 고바야시님 만화에는 머리가 없습니다. 가슴 또한 없습니다. "총을 들고 뛰어! 총을 들고 죽여!"하는 명령이 있고 계통이 있고 무기가 있고 전략이 있습니다만,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가 없습니다. 무엇이 안전이고 무엇이 평화이고 무엇이 전쟁인지는 없습니다.

크레모아를 맞아서 주검이 너덜너덜해지고 이빨만 남고 머리통은 날아가고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오고까지 하는 그림을 그릴 줄 알지만, 이와 같은 그림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가는 만화에 스며 있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적으로 삼아야 하는 나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가 첫째입니다. '누구이든 적이 되었으면 용서를 받을 수 없이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가 둘째입니다. '일본군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대인데,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때에 자위대로만 머물러 있어서 국방예산이 아깝다'가 셋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곁들이자면 '일본을 쪽발이라고 깔보는 남북녘 놈들한테 본때를 보이고 싶다'가 있구나 싶습니다.

장래적으로 3개의 시나리오가 분석가에게 상정되어 있다. (1) 김일성 왕조는 완만한 붕괴를 해 한국에 흡수통일된다. 이것은 백에 하나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컬어진다. (2) 자살적인 북한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남침. 이것이 본편(이 만화)이다. (3) 주체사상을 내걸고 경제원조를 받으면서 궁핍한 세상을 당면현상 유지해 갈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148쪽)

책을 덮습니다. 찜찜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무기 그리기를 좋아해서 국민학교 다닐 적부터 비행기며 탱크며 총이며 잠수함이며 미사일이며 사진 보고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세계대전과 얽힌 자료를 수없이 모았다가 버리곤 했고, 돈푼을 모아서 1:35 프라모델을 산더미처럼 만들어서 쌓아 놓기도 했습니다. 실물 장난감 권총과 소총으로 비비탄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쟁이 무엇이고,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짓이 무엇이며, 맨 밑바닥 땅개(육군 보병)가 되어 칼을 휘두르고 살아남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조금도 모르던 철없던 때 이야기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너를 죽여야 한다'가 전쟁이 아닙니다. '내가 걱정없이 살고자 너를 죽여야 한다' 또한 전쟁이 아닙니다. '네가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 또한 전쟁일 수 없습니다.

전쟁은 네가 아닌 내가 죽는 일이고, 너보다 나를 무너뜨리는 짓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버리고 내 배만 뚱뚱하게 불리고자 하는 이기주의입니다. 윗사람이랍시고 백성을 누르고 있는 권력자가 더 큰 이익과 권력을 움켜쥐고자 힘없는 이들 사이에 이간질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 할퀴도록 붙이는 싸움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제2차한국전쟁 - 육이오 2

코바야시 모토후미 지음, 박맹렬 옮김, 초록배매직스(2001)


태그:#만화책, #만화, #전쟁, #고바야시 모토후미, #책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