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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한문으로 적으면, '미인(美人)'이 된다. 
 
미인의 '인(人)'은 모든 사람을 뜻한다. 사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많지만,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 만날 때, 정말 무얼 받지 않아도 흐믓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마음씨, 말씨, 글씨, 그리고 곁들어 생활의 솜씨를 가지고 있으면, 금상첨화의 '미인'이라 일렀다. 
 
좋은 사람(미인) 만나면 그래서 마냥 즐겁다. 해서 누군가에게 막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무에도 반창고... 식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동네 한바퀴 돌다가 집으로 가려면, 미인 아저씨가 계신 아파트 경비 초소를 지나야 한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셔서인지, 내가 인사할 때마다 낯가림 같은 어색한 미소 짓으신다. 그런데 항상 보면 아저씨는 너무 바쁘시다.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시거나, 채마밭을 가꾸시거나, 한 사람 두 사람 떠나는 아파트 주민들의 이삿짐 나르는 곳에 용무를 보시거나, 아파트 화단의 나무를 돌보는 등 업무에 여념이 없으시다.
 
초소 앞을 지나다 보니, 신기하게 '나무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늙은 벚나무가 보였다. "아저씨 ! 나무에다 나무반창고를 다 붙여 주셨네요?" 하고 물으니, 아저씨는 "나무가 상처를 입어서 잘 아물라고 나무 살점을 반창고처럼 붙어주었어요" 하신다.
 
아저씨 말씀 약간 이해가 잘 안되서 다시 물으니, 나무의 흉터를 그냥 놔 두면 새살이 돋지 않는다는, 뜻이다. 식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의 나무를 사람처럼 생각하고 계신 그 아름다운 미인의 마음씨에 감동을 먹었다.   
 
 
"어머, 아저씨, 아파트가 곧 철거 하다던데…, 채마밭을 많이 가꾸셨네요?" 하고 묻자, 아저씨 싱긋 웃으시며 "거 참…, 지구가 내일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는다잖소."
 
나는 어느 훌륭한 철학자의 말씀을 듣는 듯, 아저씨 말씀에 또 한번 감동 먹었다. 정말 이 말 숱하게 들었지만, 다음달이면 철거되는 버려진 빈터에 씨앗을 뿌리는 아름다운 사람은 실제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저씨의 텃밭에는 그 인동의 인내 만큼, 파릇파릇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저씨가 내심 귀찮아하겠지만, "이 아파트에서 얼마간 경비 생활 하셨어요?" 하고, 여쭈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경비 생활한 게 그리 중요한가요? 이 곳을 떠난다는 게 그저 너무 서운할 뿐이요, 정말 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데…"하고 말끝을 흘리는, 아저씨에게 더 이상 질문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아저씨 근무하는 초소 주위은 온통 재활용 폐품을 담은 자루로 가득했다. 분홍빛깔의 동백나무 꽃그늘 아래 놓여진 다탁은 폐품이지만, 툭툭 떨어지는 동백꽃잎이 수를 놓아서 정말 운치가 있었다. 
 
아저씨가 길고 긴 추운 겨울 연탄 난로 하나로 의지해 오신 초소도 거의 재활용된 폐품으로 가득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단정한 공간이었다.
 
곧 철거될 해운대 주공 아파트 내의 경비를 맡고 계신 아저씨는 입주자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이 아파트를 지킬 것이라고 하셨다. 
 
마치 잔치가 끝나고 뒷 설거지를 하는 사람처럼 세입자 주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정성껏 챙기기 바쁜 아저씨의 뒷 모습을 한참 지켜 보며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이 동네로 자꾸 산책을 나오는 것은 이 풍경이 남루한 내 마음에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떠나는 이웃들이 가꾸다 두고 간 텃밭에서, 무럭무럭 황금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내일이나 모레나 지나는 길에 이런 마음을 말로라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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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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