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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세상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꿈꾸는 열아홉입니다."
 
대학에 갓 입학하여 자기 소개 때 종종 애용하던 소갯말이다. 스물 한 살이 된 지금은 '렌즈' 라는 말은 빼야 할 것 같다.  꿈 없이 대학만을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쳇바퀴 굴러가는 팍팍한 생활 속에서 나를 살게 한 것은 축구 그리고 사진이었다.
 
그로 인해 전공을 선택했고, 찰칵하는 매력에 푹 빠져 사진 기자를 꿈꾸고 있다. 2년의 대학생활을 보내고 나서야 사진에 관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조금 더 느낌 있는, 조금 더 멋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리라. 뷰파인더 속에 보다 깊은 것을 담을 수 있게 되리라.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큰 기대를 한 수업, 첫 시간. 교수님의 말씀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사진은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다. 수업에 필요한 것은 카메라가 아닌 노트와 연필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진실습시간에 카메라가 아닌 노트와 연필이라니. 기껏 좋은 카메라를 빌려간 나에게는 콜라 김 빠지는 소리였다. 노트와 연필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백일 사진. 연필. 자유시간. 짝꿍. 봄봄. 그동안의 수업에서 이 주제들로 그림을 그렸다. 사진 수업시간에 웬 그림? 의아하고 못미덥기까지 했던 첫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출사를 다녀올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두어번 있었다. 손에 들고 나가는 것은 역시 노트와 연필이었고, 우리는 휴대폰으로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은 카메라로, 렌즈로 찍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찍는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은 좁은 렌즈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넓은 시야로 세상의 많은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교수님께서 매번 하시는 말씀이셨고, 여전히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머리 속에 먼저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눈으로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나서 사진으로 옮겨 찍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망원렌즈와 광각렌즈를 배울 때도 눈과 손가락으로 설명하고 체험한다.
 
기대했던 사진 수업과 너무나 다른 수업이다. 사진을 많이 찍을 줄 알았는데 기대에 못 미쳐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오른쪽 눈과 작은 뷰파인더를 통해 보던 세상을 내가 가진 두 눈으로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찍을 때 마다 감았던 왼쪽 눈으로 렌즈 밖의 세상도 보고 있다.
 
한 권의 연습장이 빽빽한 필기가 아닌 끄적임과 낙서와 그림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오만상 얼굴을 찌푸리며 작은 프레임 안에 무언가를 채워넣으려던 습성을 버려가고 있다. 분명 학기말이 되면 비싼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 카메라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렌즈로 세상과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태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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