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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 놀이'의 진달래
▲ 우리 겨례의 아름다운 '화전 놀이'의 진달래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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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30일) 봄비가 내렸다. 봄비 맞으며 장산을 올랐다. 해운대 운촌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산 속으로 깊이 들수록 봄비 맞은 진달래들이 길 따라 만개해 있었다. 봄비 속에 개나리, 벚꽃, 산수유도 더 고운 빛깔을 뿜어냈다. 그 많은 꽃빛깔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의 진달래는, 마치 길가에 분홍치마를 입은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듯 보였다.

봄숲, 꽃의 요정을 만났습니다.
▲ 꽃불 일렁이는 봄숲, 꽃의 요정을 만났습니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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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식물학상 철쭉과에 속하며, 통틀어 37종이나 된다고 한다.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 제주도, 동으로 금강산, 지리산 등 진달래는 없는 곳이 없다. 3월, 방춘이 되어 개나리가 필 때 진달래도 다투어 핀다.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칭송을 받아 온 진달래, 수 십년 전만 해도 봄이면, '화전놀이'가 세시의 연중행사였다. 하얀 찹쌀가루와 섞어서, 참기름에 예쁜 꽃잎을 붙여서 지져내어 나누어 먹는, 화전 놀이는 우리 선조들의 '한솥밥을 다 같이 먹는다'는 공동체 의식에서, 생성된 세시 음식의 하나였다.

꽃피는
▲ 새 울고 꽃피는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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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놀이는, 멋과 풍류와 '한 솥밥'의 단결력 상징

이는 농경사회에서의 친밀한 유대력 강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멋과 풍류를 아는 우리 선조들의 낭만과 지혜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생각하면 명절마다 '세시 음식'이 있다. 설날에는 떡국, 대보름에 약밥, 사월 초파일에 느티떡, 단오날에 쑥떡 ,유두날에 수단(水團),추석에 송편, 중양에 국화전, 동지에 팔죽 등.

한 가족 의식의 마을의 사람들이, 특정한 날이면 모두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었다.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해마다 열리던 그리운 '화전놀이'는 다 어디 갔을까. 이제는 먼 시간 속에서 모락모락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먹기도 아까울 정도의 화사한 꽃잎 같은 '화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봄비는 끄치고, 장산의 '진달래 길' 따라 깊이도 길은 들어왔다.

철쭉과에 속하고 37종에 이른다고 한다.
▲ 진달래는 식물학상 철쭉과에 속하고 37종에 이른다고 한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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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의 시장(詩章)은 고려 초엽의 최승엽을 시초로 보고, 진달래 화전 놀이의 시는, 이조 중엽 임백호의 것으로 효시를 삼는다. 이처럼 진달래 '화전놀이'는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것이다. 어느 고을 어느 산에나 만날 수 있는 진달래, 그러나 그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처럼 진달래라도 다 똑같은 진달래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남남북녀'라고, 백두산의 진달래 꽃을,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할 터다.

봄의 천사들의 환한 얼굴 같은
▲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봄의 천사들의 환한 얼굴 같은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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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봄비에 젖어가는 옷깃은 무겁지만, 진달래 꽃잎은 더욱 싱싱했다. 마치 봄의 천사 얼굴을 만난 듯, 두 송이 세 송이 네 송이, 한 가족의 행복한 얼굴처럼 다가오는 장산의 진달래는 특별하다. 바윗 틈에 솔숲 사이에 넝쿨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 등산객의 발소리에 귀를 종긋 종긋 세우기도 하고, 산 속의 뻐꾹, 뻐꾹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 깍깍 울어대는 까치 소리에 더욱 더 수줍어 하는 봄처녀의 얼굴이었다. 

바위 틈에 송이 송이 봄빛 머금고
▲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도 바위 틈에 송이 송이 봄빛 머금고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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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먹는 꽃 / 먹을 수록 배고픈 꽃//한 잎 두 잎 따먹는 진달래에 취하여/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조을리는 봄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진달래는 먹는 꽃/먹을수록 배 고픈 꽃 …   '진달래'-'조연현' 

물빛 산수화
▲ 봄비가 그린 물빛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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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꽃길
▲ 장산의 명소 찾기 진달래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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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중략)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진달래꽃', 김소월

계집애 쪼그리고 앉은 것 같은
▲ 산기슭에 조그만 계집애 쪼그리고 앉은 것 같은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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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꽃들, 무궁화도 그렇지만,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 가만히 보면 혼자 피어서는 절대 아름답지 않다. 군락지를 이루어 필 때,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 세시 음식의 하나인 '화전 놀이'만 보더라도, 동일한 음식을 다 함께 동시에 먹으면서, 신분의 위 아래 없이, 신분의 수직관계를 무너뜨리는, 평등과 단합, 화합의 한 민족임을 강화시키는 정말 아름다운 겨레의 세시 음식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 음식 중에 화전처럼 아름다운 음식이 있을까. 세계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세시 음식의 풍습인 것이다.  

사랑받아온 진달래
▲ 시인묵객으로부터 사랑받아온 진달래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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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겨례를 위해 목숨을 잃고 가시는 님에게 바친... '진달래 꽃' 길  

그러나 '진달래'는 넋의 꽃이기도 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읽는 이에 따라서 해석을 달릴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겨레의 한과 넋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온 산에 피는 진달래 꽃을, 겨레의 피로 상징하는 현대 시인이 많다. 봄마다 '꽃제'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온 산하를 피로 물들인 이 땅의 숱한 왜적의 침입과 6·25 전쟁 이후, '진달래'의 상징은 '겨레의 '피 눈물'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가신 이의 넋을 달래는 충혼제에, '철쭉제' 등 이름이 붙어진 것이리라. 국민 시인, 김소월의 '초혼'과 '진달래'는 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찾을 수 있고, 이 가엽은 사랑은, 겨레와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은 '님'인 것이다. 그래서 가시는 님의 길에, 아름다운 꽃잎을 뿌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붉은 피빛처럼 번져가는 진달래 꽃길 사이로 연발탄처럼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를 듣는다. 봄비는 다시 절룩거리며 정상에서 달려내려온다. 그날의 상이군인처럼.


태그:#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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