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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의 삼성'으로 불리우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이 일제 강점기 징용피해자들의 국내 소송과 관련 일본 대기업을 변론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005년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귀국한 여운택(85)씨 등 5명이 "미불 임금과 돌려받지 못한 강제 저축금·위자료 등을 지급하라"며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앤장이 신일본제철 측의 변론을 맡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누구든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론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최고 영향력을 지닌 법률가 집단의 몰역사적인 처사"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내 소송에 김앤장 변호사 3명 투입

김앤장(KIM & CHANG) 법률사무소가 입주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세빌딩.
 김앤장(KIM & CHANG) 법률사무소가 입주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세빌딩.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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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회원인 여운택씨 등 5명은 지난 2005년 2월 28일 "지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동원돼 일본제철(신일본제철의 전신) 소유의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했으나 당시 임금과 강제저축금을 받지 못했다"며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총 5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전까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강제징병 등과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것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씨 등이 제기한 소송은 일제 강점기 때 부역한 일본기업에 손해배상의 책임을 국내에서 물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여씨 등이 국내에서 일본기업을 상대로 청구소송을 낸 것은 중국의 한 징용피해자가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었고, 일본에서 제기한 동일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의 최고 재판소는 지난 2003년 10월 "당시 여씨 등을 강제동원한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의 법적 연속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본 사법부는 그동안 ▲현 회사(신일본제철)는 예전 회사(일본제철)와 다르다 ▲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다 ▲전쟁 피해를 국가가 배상할 수 없다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 등의 이유로 배상을 거부해왔다.

그런 가운데 여씨 등이 국내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자 신일본제철측은 국내 최대 법률가 집단인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웠다. 김앤장은 이 소송과 관련 3명의 변호사를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3일 1심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변론?" vs "잘못이라고 할 수 있나?"

신일본제철 측 변호인단은 ▲동일한 소송이 일본에서 패소했다 ▲65년 한일협정으로 인해 개별 청구권이 소멸됐다 ▲신일본제철은 법률에 의해 일본제철과 전혀 다른 회사로 재구성됐다 ▲배상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등의 이유를 들어 '손해배상불가론'을 폈다.

이는 일본 정부나 사법부가 한국 징용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요구를 거부해온 논리와 거의 동일하다. 

이에 원고인 징용피해자측은 "국가적 차원의 범죄는 소멸시효를 배제해야 하며, 법률에 의해 회사가 재구성됐기 때문에 전혀 다른 회사라는 주장은 채무를 면탈하기 위한 주장일 뿐"이라며 "일본 판례에서도 신일본제철과 일본제철이라는 회사 사이에 동일성이 없다고 주장했지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맞섰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김앤장이 강제징용의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기업의 편에 서서 변론하는 것이 적절한가? 김앤장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문제제기에 맞서 '토종 로펌론'이라는 애국주의를 설파해왔다는 점을 헤아릴 때 김앤장의 신일본제철 변론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많다. 

원고측 소송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는 있지만, 이 사건을 꼭 김앤장이 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 재판부에서 조정안이라도 한번 내라고 권유했는데 김앤장 측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김앤장을 선임할 정도의 돈이라면 합의할 수 있지 않았겠나"라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토종로펌이라며 애국주의 설파하더니...

최병모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법률상으로는 신일본제철도 국내 변호사의 변론을 받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징용이나 징병이 일제에 대한 충성심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변호사법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가 그런 소송을 맡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소송은 민사소송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징용은 전시 강제동원의 결과이고, 이것은 결국 구 일본 제국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런 관점에서는 김앤장이 변론을 맞는 것이 일본의 가혹한 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피해자인 동아시아 여러 나라 공통의 역사의식을 부정하고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전쟁, 강제노동, 위안부 강제동원과 같은 반인륜적 국가범죄는 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추궁하는 것이 현재의 국제적인 추세이고, 구 일본 제국의 지배와는 관계가 없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의회마저도 구 일본 제국의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등에 관해 최근에 결의안을 채택해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을 압박한 사실이 있다. 

책임을 부인하고 나선 일본기업을 직접적인 피해자인 한국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로펌으로 인식되는 김앤장이 변론하는 것은 법률상 흠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윤리상 문제제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최 변호사는 "징용은 일본 제국에 의한 전시 강제노동이고, 징용피해자는 전쟁피해자"라며 "히로시마 원폭투하 당시 3만명의 조선인이 히로시마 군수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었는데 이런 것들을 일본은 여전히 모른 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해배상 측면에서 보면 강제로 끌고 가 통장에 입금된 임금마저 돌려주지 않고 그것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신일본제철은 반인륜적인 기업"이라며 "만일 한국의 로펌이 이런 사건을 맡는다면 적절한 수준의 배상을 권고해 이행하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유족 "김앤장에 찾아가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회원인 장양익씨는 지난 3월 15일 <법률사무소 김앤장> 저자와의 간담회에 참석해 "내가 김앤장 사무실에 찾아가 '무려 22만 피해자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건에 당신들이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지만 허사였다"고 털어놓았다.

장씨는 "판사가 원고와 피고를 한 자리에 불러, 김앤장 측에 화해 의사가 없느냐고 제안했을 때 김앤장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고도 전했다.  

반면 국내에서 제기된 소송인 만큼 신일본제철도 누구든 국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원론적 의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한국에서 재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신일본제철측을 변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런 사건을 김앤장이 맡았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앤장 측은 "변호사에게는 고객 기밀 유지 의무가 있어 그 소송과 관련 어떤 언급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65년 한일협정과 포스코-신일본제철의 관계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2007년 3월 신일본제철이 포스코(과거 포항제철) 지분 5%를 매입했을 당시 신일본제철 측의 법률대리인도 '김앤장'이었다는 점이다. 신일본제철과 포스코는 지난 2000년 8월부터 주식을 상호보유하고, 최근에는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전략적 제휴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신일본제철과 포스코는 1965년 한일협정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한일협정 당시 합의된 대일청구권 자금(3억달러) 중 일부(3080만달러)가 포스코의 설립자금으로 들어갔고, 한일협정으로 인해 개별 청구권이 소멸된 상황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패소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4월 태평양전쟁 피해자 유족 100명이 "포스코가 대일청구권 자금 귀속을 방해하고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과 제휴,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며 포스코를 상대로 총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8월 "원고는 포스코가 대한민국과 공모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당한 청구권을 방해했다고 주장하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를 입증하기가 불충분하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앞서 '강제동원 진상규명 시민연대' 회원 151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동일한 소송도 "원고들의 주장을 인정할 만한 근거나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태그:#김앤장, #일제 강점기 징용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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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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