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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여행

 

로마에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바로 뒷골목을 여행했다. 한밤 중에 그래피티를 구경하며 다녔다. 그래피티 태깅은 인적이 드문 밤에 많이 하기 때문에 어딜가나 상점 셔터에 많은 편이다. 낮에는 셔터가 올라가 있어서 잘 보이지 않다가도 상점의 문이 하나 둘씩 닫히면 그제서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밤의 도시와 낮의 도시는 그런 면에서도 다른 풍경이다. 그렇게 셔터를 따라 들락날락거리면, 로마의 밤거리는 낙서들의 세상이 된다.

 

 

로마는 치안이 불안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그날밤은 안전했다. 위험할 만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숙소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늦은 밤 숙소를 찾는 행렬들 속에서 나 홀로 그림 감상을 한다.

 

시차가 적응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와 달리 시차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긴 하루를 보낸 기분이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침이 유럽에서의 저녁으로 끝났으니, 비행시간 만큼 인생이 추가된 것 뿐이었다. 되돌아 갈 때 다시 그대로 갚아야 할 빚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낮에도 그래피티를 따라 걸어다녔는데 그 길을 따라 걷다보니 젊은 분위기의 숍이 많은 곳으로 이어졌다. 떼르미니역과 칸부어역 사이 한블럭 뒤에 있었는데 재즈 아카데미가 있어 분위기도 자유로워 보였고, 재미난 숍이 몇 개 있었다. 낯이 익은 듯, 낯선 이 골목이 마음에 들었다. 골목이름은 비아 우르바나였다. 로마라고 하면 유적지를 많이 떠올리는데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역시 새로운 기운이 감돈다. '클러빙'을 주목적으로 여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핫'한 곳은 가지 못 했지만 딱 내 마음에 들었다.

 

현대 로마에 반달리즘은 별로 없었다

 

 

낙서를 따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관광지에서 점점 멀어졌다. 이곳에서는 문화 유적지에 대한 반달리즘은 만나기 어려웠다. 반달리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의 유적지를 파괴하려는 행위 때문에 생긴 개념이고, 유적에 그래피티를 하는 행위에도 똑같이 반달리즘이라는 단어가 적용되기 때문에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문화재에 낙서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라면 재빨리 지울 것이다. 관광이 중요한 도시에서 낙서를 방치하면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클 테니까.

 

이곳에서 그래피티를 지우는 장면을 우연히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색 페인트로 덧칠하는데 이쪽 동네는 건물이 대리석이라서 난감한 것 같다. 콤프레샤 같은 것으로 약재를 강하게 뿌려서 착색 성분을 벗겨낸다. 신기했다. 성분이 뭘까 궁금해서 아저씨들 일하는데 살짝 다가가서 냄새도 맡아 봤다. 화학약품 냄새가 강했기 때문에 방독면 없이는 참기가 힘들었다.

 

▲ 낙서를 지우는 사람 대리석 벽에 있는 낙서를 지우고 있다. '로마'시의 로고가 박혀있는 트럭에서 나오는 강한 압력으로 화학약품을 뿌린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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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에서 급식을 먹다

 

계속 낙서들을 따라 걸었다. 꽤 규모가 크게 돼있는 곳을 발견하고 신나게 따라 갔는데 성당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감시 카메라가 달려있고 그 카메라 케이스에 아르데코 스타일로 장식이 예쁘게 들어간 것을 보고 한 컷 찍었다. 약간 녹까지 슬어서, 그런지한 맛까지, 암튼 호감이었다. 성당 문이 열렸다. 입장을 위해 줄을 서있어서 굉장히 유명한 곳일 거라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한국사람들은 잘 모르는 유명 관광지에 나도 모르게 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나도 따라 줄을 섰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고 보니 무료급식이었다. 그냥 갈까 말까 하다가 자연스럽게 한 그릇 받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대부분은 길에 앉아서 먹었다. 행색이 멀쩡하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아서 무료급식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미 나도 모르게 받은 음식을 어쩔 수 없었다. 먹는 수밖에. 외국에 나가서 하는 행동은 조심스러운데 이런 모습이 좋지 않게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국적을 밝히지 말까, 생각했다. 얼굴만으로는 중국이나 일본과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한국사람임을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길에서 한끼를 해결했다. 계좌에 잔고가 있는 사람이 이런다는 게 미안하고, 한편 놀라웠는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가 이럴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이런 상황과 동네 분위기가 날 그렇게 만든 거 같았다. 식사를 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예전에 충북 음성 꽃동네로 자원봉사 갔었을 때 봤던 메시지가 생각났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축복입니다." 이렇게 얻어 먹는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나, 몸이 성하니 이렇게 여행을 한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지나던 자동차의 운전자들이 나만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운전을 하며 지나갔다. 뚫어져라 봤다. 동양인이이라서 그런가. 하긴 서울에 있는 '작은예수회'나 '밥퍼'에 서양인 여행객이 줄 서 있으면 나라도 눈길이 갈 것 같다.

 

유럽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너 부자냐'고 물으면, 입으로 항상 '거지여행'이라고 답했다. 돈이 많아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로 그런 비슷한 상황이 됐다. 교통비나 숙박비는 고정되어있는 편이니까 식비에서 경비를 아끼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다닐 수는 없는 처지였다. 늘 그렇게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 실제로 그런 상황에 직면했는데, 그까짓 것 못 먹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는 먹었지만 사실 굳이 맛을 따지자면 좀 역겹긴 했다. 스파게티도 그렇고, 느끼하게 치즈가 잔뜩 든  식빵, 그리고 기분이 그랬다. 구역질이 났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해서 괜찮아졌다. 남기는 것이 굉장히 실례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다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파스타는 원래 이런 건가 하고 생각했다. 워낙에 식빵으로 떼우고, 현지에서는 식사를 많이 안 했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후에 먹었던 이탈리아 음식들과 비교하자면 이곳에서 얻어먹은 음식은 신선하지 않았던 거다. 요리의 질이라는 것이 천차만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 경우는 신선도가 가장 큰 차이였다. 그러고 보니 난 늘 신선한 음식만 먹었었다. 역시 집 밖에 나가서 고생해봐야 고마운 거 알게 되나보다.


태그:#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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