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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의 글쓰기 도우미인 아만다 소벨씨(왼쪽)와 수산 스필레키씨. 이들은 "흥미로운 과제를 연구하고 있는 이공계 학생들의 글을 손질할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어 무척 재미있다"고 말했다.
▲ "이공계 학생들의 글이 오히려 더 재미있어요."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의 글쓰기 도우미인 아만다 소벨씨(왼쪽)와 수산 스필레키씨. 이들은 "흥미로운 과제를 연구하고 있는 이공계 학생들의 글을 손질할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어 무척 재미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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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톤에 위치한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입구에서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http://web.mit.edu/writing)까지 가는 길은 마치 미로 같았다. MIT 앞 지하철역에서 매리어트 호텔을 지나 우중충한 건물 여러 채를 거친 끝에 그 입구를 찾았다. 이용자가 느는 데 비해 공간이 비좁아 2007년 9월에 확장이전했다고 한다.

MIT는 공장 건물과 부지를 대학 캠퍼스로 개조해서 그런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건물들도 약간 낡았고, 내부도 비좁아 보였다. 게다가 일부 강의실은 지하에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아름다운 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은 학생들이 활기차게 거니는 모습이 그나마 MIT의 분위기를 살리는 듯했다.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에 들어서자 글쓰기 도우미(Writing tutors) 아만다 소벨씨와 수산 스필레키씨가 반갑게 맞아 준다. 이 센터의 소장인 스티븐 스트랑 박사를 만나려고 했으나 몸이 편치 않아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트랑 박사 인터뷰는 전자우편(이메일)으로 대신했다.

글쓰기 지도법에 대해 질문하자 아만다 소벨씨가 직접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교재까지 보여 주면서 답변한다. 10분 정도 지나 곁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수산 스필레키씨도 입을 열었다. 한 켠에서는 또다른 글쓰기 도우미가 중국계 학생을 상담하고 있었다.

미국 대학에서 글쓰기 도우미란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의 글을 손질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대부분 문장력이 뛰어난 대학원생들로 학비를 지원받는 강의 조교(Teaching assistant) 형식으로 일한다. 하지만 MIT의 글쓰기 도우미는 최소한 석사 이상의 글쓰기 전문가들로 다른 대학들보다 한 단계 위였다.

아만다 소벨씨가 단락 전개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종이에 적은 메모.
 아만다 소벨씨가 단락 전개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종이에 적은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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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계에 관련된 주제로 쓴 글을 손질해 주는 일이 어렵고 재미없을 수도 있을 텐데.
수산 스필레키 “그렇지 않다. MIT 모든 학생은 각자 흥미로운 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글을 손질할 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맛본다. 이를테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는 셈이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다.”

- 학생 한 명당 한 차례에 얼마나 지도하나.
수산 스필레키 “50분 간 진행한다. 그 시간엔 정신없이 바쁘다. 우선 학생 글을 충분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에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이들의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능률적으로 보고서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다. 이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글쓰기 도우미들에게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학생 한 명에게 50분이란 짧은 시간만 할애하기 때문에 좀더 효율적으로 도와주려고 무척 애를 써야 한다.”

- 이공계 대학으로 이름난 MIT가 글쓰기 교육에 신경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만다 소벨 “사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건축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표현하고 발표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과학자가 발명을 해도, 쉽고도 정확하게 글로 써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의 글쓰기 도우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만다 소벨 “나는 전문적인 글쓰기 지도 교사로 13년 째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학부에서도 강의한다. 글쓰기와 의사소통 방법을 공부하는 ‘의사소통 집중과목’(CI:Communication Intensive)을 맡고 있다. 글쓰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강사들이 모두 박사학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교수진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에겐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수산 스필레키 “나는 석사학위가 있고, 편집, 교정 일도 했고, 작가로 활약한 경험도 있다. 또 일본에서 비영어권 학생들에게 영어도 가르쳤다. 글쓰기 도우미는 대부분 석사 학위 소지자이면서 글쓰기 지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대학교 강의 경력과 논문 발표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1대1로 글쓰기 지도를 한 경험은 무척 중요하다.”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의 글쓰기 도우미인 아만다 소벨씨(왼쪽)와 수산 스필레키씨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의 글쓰기 도우미인 아만다 소벨씨(왼쪽)와 수산 스필레키씨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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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을 지도할 때 보람을 느낄 텐데.
아만다 소벨 “학생들을 만나는 건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외국 학생도 많아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각자 여러 분야에서 연구조사를 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도시를 조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엔 시, 문학, 경제학 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시신경 분야에 관한 것을 주제로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 덕분에 광범위한 분야를 접할 수 있다. 학생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 지도받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만다 소벨 “공과대 학부생의 글쓰기를 도와 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완벽한 글쓰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려면 글을 몇 번이라도 다시 써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신반의하며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주 후에 다시 나를 찾아와 내 말이 맞다고 하였다. 기술자들은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수도 없이 작업을 반복한다. 그런데 기술 공부를 할 때 활용하는 반복 작업이 글쓰기 공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바로 이런 원리를 깨닫고 놀라워한 것이다.”

수산 스필레키 “아주 똑똑했던 비영어권 학생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문법에서 아주 작은 실수를 했는데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첨삭지도를 할 때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그의 문법 실수에 대해서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그런데 그는 내 설명을 듣지 않고 자기 글에서 틀린 부분이 없는지 훑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은 헛수고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 글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면 그것도 발전이라고 본다.”

- 대학원생들도 많이 이용하나.
아만다 소벨 “논문 준비를 위해서 글쓰기센터를 자주 찾는다.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연구 프로젝트를 흥미있게 지켜볼 수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사고의 발전 상태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생각을 쫓아가면서 좀더 좋은 논문을 쓰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척 보람있다.”

- 언제 학생들이 몰리나.
아만다 소벨 “전공에 따라 학생들이 찾아오는 시기가 약간 차이난다. 1년으로 봤을 때 다달이 다른 부류의 학생들이 찾아온다. 예를 들면, 의학대학원에 12월까지 원서를 내야 하는 학부 4학년들이 10월과 11월에 가장 많이 찾아온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전공 학생들이 찾아온다.”

- 한편의 완성된 글은 여러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다. 단락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라고 생
각하나.
아만다 소벨 “무엇보다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단락 원리를 활용하는 게 좋다. 한 단락에서 주제문은 독자에게 전하려는 요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이어서 주제문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와 예를 들어가면서 글을 써야 한다. 글은 독자의 대상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글쓴이의 생각이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단락 구성을 잘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50여 년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써 왔다.”

수산 스필레키 “단락 처리를 하면 독자가 내용을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쉼표나 마침표로도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읽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새 단락이 나오면 다른 종류의 내용이나 생각이 나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식단을 예로 들어보자. 식단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이 있다. 주가 되는 음식이 있으면 밑반찬 수준의 음식도 있다. 그것들이 저녁 식단을 구성한다. 주된 음식을 글의 주제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음식을 중심으로 뒷받침 문장들이 모여 한 단락을 구성하는 것이다.”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에 비치해 놓은 글쓰기 관련 서적들.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에 비치해 놓은 글쓰기 관련 서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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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는 무엇인가. 공통적으로 많이 틀리는 부분이 있을 텐데.
아만다 소벨 “학생들은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비영어권 학생들은 정관사나 부정관사 부분과 전치사 부분에서 자주 실수한다. 영어는 그런 부분에서 비영어권 학생들이 배우기가 어렵다. 영어권 학생들의 경우는 불완전한 문장을 쓰고, 글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생각을 각각 떨어트려서 작은 문장 하나하나로 표현하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이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힘들어하는 것이다.”

수산 스필레키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을 좀더 체계적으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전문 작가들은 물론 나 역시 여기서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누구나 자신이 전달하려는 생각을 전부 다 옮겨 적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기 글을 다시 읽을 때는 머릿 속에 있는 생각까지도 포함할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한다. 대부분이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옮겨 적지는 않기 때문에 중간중간 문맥이나 단락을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느끼기 어렵겠지만 독자가 좀더 능률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나는 문맥을 잘 연결하지 않으면 좋은 글로 평가하지 않는다.”

- 글을 잘 쓰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만다 소벨 “많은 분야의 일이 글쓰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글쓴이는 읽는 사람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의사소통 능력이 우수해 대인관계도 자연스럽다. 이런 점으로 보아 글쓰기 능력은 궁극적으로 성공의 기회를 넓혀 준다고 볼 수 있다.”

수산 스필레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사고력이 뛰어나면 모든 일에서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정말로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MIT에서도 글쓰기 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 어려서부터 글쓰기 공부를 하면 창의력, 사고력이 좋아질까.
아만다 소벨 “흥미로운 질문이다. 사실, 글쓰기를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이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언어를 더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확실하다. 책을 읽은 후에 자기 생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말하면 글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내 주장에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유를 동원해야 한다. 때문에 글쓰기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력, 창의력을 기를 수 있지 않겠는가.”

수산 스필레키 “글쓰기와 창의력 향상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글을 많이 읽지 않으면 글을 잘 쓸 수 없다. 그 반대로,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많이 읽으면, 좀더 넓은 세계를 지각할 수 있다. 창의력도 좋아질 것이다.”

- MIT가 글쓰기교육에 전념하는 사례를 든다면.
아만다 소벨 “MIT는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 수업도 하고, 좀더 난이도 높은 수준의 수업도 하고 있다.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 외에 학년별로 글쓰기 교육과정이 있다. 이 과정에서는 문법 교육도 하고 여러 가지 종류의 글쓰기를 가르친다.”

- 외국어 교육은 언제부터 하는 게 좋다고 보는가.
아만다 소벨 “30세 이전에 외국어 교육을 하는 게 효과적이다. 내가 가르친 한 태국 학생의 경우, 자기는 태국어로만 생각할 수 있고 영어로는 생각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꼭 태국어로 먼저 글을 쓴 후에 영어로 번역해서 글을 완성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글쓰기 능력을 닦아 놓으면 생각하고 표현하는 일을 좀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글쓰기, #MIT, #작문, #의사소통,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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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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