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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황복·웅어가 올라오지 않는 금강 포구.
 이젠 황복·웅어가 올라오지 않는 금강 포구.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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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2일), 충남 강경에 갔다. 점심을 먹으려고 지인들과 어울려 황복 요리로 널리 알려진 집을 찾아갔다. 나는 사실 복어 요리 마니아는 아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식이다. 그보다는 오랜만에 웅어회가 먹고 싶어졌다. 웅어는 1월에서 4월 사이에만 잡히는 물고기로 봄의 진미라 할만 하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짐짓 "혹시 웅어회를 먹을 수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지금 이곳에선 잡히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1990년에 완공된 금강하구둑 때문이다. 둑을 막으면서 물고기들이 오가도록 어도(魚道)라는 걸 만들긴 했다. 그러나 둑 안에 갇힌 물이 민물로 바뀌면서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살아가던 물고기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웅어가 대표적인 어종일 것이다.

물고기들의 귀향길을 누가 막아버렸나

내가 웅어라는 회귀성 물고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전북 일대를 떠돌던 시기였다. 오라는 곳은 없지만, 갈 곳만은 많은 나그네였다. '오늘은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집에 들어가야지' 하고 벼른다. 그러나 선술집에서 처음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나서 주거니 받거니 잔을 주고받은 친구가 자기 집으로 함께 가서 일박할 것을 청하는데 그것을 어찌 거절한단 말인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자기와 일점혈육 관계도 아닌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논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어이 자기 집으로 끌고 가 식구들의 흉흉한 눈총까지 받아가면서까지 깊이 있게 논의할 사항은 아닌 것이다. 이른바 모주꾼들에게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벨로 창시도 없다'라는 점일 것이다. 하긴 압박과 설움을 칵테일하여 마시는 술맛이 더 혀끝에 짜르르 감겨들긴 하더라만.

그렇게 백수의 지복을 맘껏 누리던 나날이었다. 그날도 역시 선술집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를 따라 그의 집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그의 집이 어디인고 하니, 전북 익산시 웅포면이었다. 함라산 아래에 있는, 고려 때 창건된 꽤 고풍스러운 숭림사라는 절 근처였다. 때는 바야흐로 봄철이었다.

백수도 낯짝이 있고 급수가 있다. 아침을 얻어 먹고 나니 그냥 앉아서 제비 새끼 마냥 주는 밥만 꿀꺽꿀꺽 받아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일 나가시는 그의 아버지를 위풍당당하게 따라나섰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손바닥 만한 쪽배를 타고 장어의 어린 새끼인 속칭 '시라시'를 잡아서 생계를 도모하고 있었다.

아직 차가운 바닷바람을 견디며, 모기장처럼 촘촘히 짜인 그물을 던졌다. 시라시에 섞여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가 걸려 올라왔다. 몸통과 꼬리는 회갈색인데, 배 쪽은 은백색이었다. 살이라곤 별로 없는 꼭 갈치 사촌 비슷무레하게 생겨먹은 녀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웅어라는 물고기였다.

그 당시 내겐 늙수그레한 막걸리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날 보고 "뼈 속으로 살이 찐 놈"이라고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릴 하곤 했다. 꼭 이 웅어란 놈이 그랬다. 뼛속으로 살이 찐 놈인지 살이라곤 별로 없었다. 그 친구에게 이름을 물으니, 웅어라고 했다. 이놈들을 시라시와는 따로 모아 두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의 어머니에게 회무침을 부탁했다. 초고추장을 풀고 나서 다진 마늘, 생강즙, 통깨 등 갖은 양념을 집어넣은 다음 조물조물 무쳤다. 맛이 아주 담백하고 고소했다. 게다가 나는 웅어에게서 나와 똑같은 멸치과에 속한다는 동류의식을 느꼈다. 이후로 난 웅어에게 영락없이 '사로잡힌 영혼'이 되어버렸다. 넙치니 도다리니 우럭 따위야 군산 바닷가에서 실컷 맛보았지만 웅어가 안겨주는 미각을 맛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회귀성 물고기 웅어

강경의 한 음식점에 진열된 병에 담긴 웅어.
 강경의 한 음식점에 진열된 병에 담긴 웅어.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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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는 연어나 황어처럼 회귀성 물고기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어린 웅어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바다로 내려가서 월동한다. 그러나 성장한 후에는 다시 처음 태어났던 자리로 돌아온다.

갈대 사이에 알을 낳는 습성 때문에 위어(葦魚. 갈대 위 )라고도 부르는 웅어는 성질이 지랄이다. 그물에 걸리자마자 서둘러 죽고 만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기를 원한다'라는 것인가. 그래서 상하기 전에 잡는 즉시 내장이나 머리를 떼어내고 얼음에 쟁여 놓아야 한다.

한 가지 희한한 것은 익혀 먹으면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는 것. 또 4~5월까지는 뼈째 오독오독 씹어 먹어도 되지만 5월이 넘어가면 뼈 가시가 억세어진다. 그때쯤이면 없던 살마저 쭉 빠져버려 아무런 맛이 나지 않게 된다.

아무튼 웅어는 맛이 좋아서 조선시대에는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물고기로였다. 조선 말기에는 경기도 행주에 사옹원 소속의 위어소라는 관청을 두어 웅어를 잡아 임금에게 진상하던 진귀한 물고기였다.

웅어 맛을 알게 된 이래, 난 한 동안 봄만 되면 "아는 만큼 골라 먹는다!"라는 명제에 목매달고 웅어회 맛을 보려고 웅포라든가, 강경이나 부여 선착장 부근의 웅어회집을 찾아다니느라 극성을 떨곤 했다. 부여 지방에선 사투리로는 우어, 우여회라 부르는데, 한 접시만 시키면 소주 두어 병은 족히 마실 수 있으니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요새는 익산 웅포 근처나 가야 웅어회를 맛볼 수 있다는데 모두 금강하구둑 밖에서 잡히는 것들이라 한다.

돌아가리라, 한 마리 웅어처럼

돌아오는 길에서 웅어·연어·황어·은어 등 회귀성 어류에 대해 생각했다. 물고기들은 어떻게 자기가 태어났던 모천(母川)을 찾아올까? 하기야 자기가 태어난 태자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수구초심이란 말이 있듯이 여우도 죽을 순간엔 자기가 태어난 언덕을 쳐다보고 죽는다지 않는가. 그러나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 물고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해류를 따라오는 것일까, 강어귀의 냄새를 기억하고 그 후각으로 찾아오는 것일까. 술꾼들의 귀소본능보다 더 희한한 게 물고기들의 회귀본능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물고기의 회귀는 모천에 돌아오는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일까. 내가 생각키로는 '어쩌면 물고기의 회귀는 인간의 뱃속에 들어가서 정치한 소화과정을 거친 뒤라야 끝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기 살까지도 아낌없이 보시하는 이타야말로 '돌아옴'의 마지막 과정인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한 마리 연어처럼, 황어처럼. 웅어처럼 돌아가고 싶다. 이 대책 없이 떠도는 유목의 세월을 끝장내고 고향, 그 생명의 태토(胎土)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모든 걸 초월하라고 나를 부추기는 본능 하나만 있으면 될 테니까.


태그:#금강 , #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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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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