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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1호)
 백련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1호)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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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고속도로가 바로 이어지지 않아 서울에서 보면  멀게만 느껴지는 강진으로까지 주말여행을 작정했다면 다분히 3월의 동백림을 염두에 둔 탓일게다. 겨우내 피고지기를 반복하다 3월에 절정을 맞는 동백은 봄 꽃의 화사함 보다는, 한겨울 추위를 뚫고 붉게 피워낸 꽃이 봉우리 채 툭 떨어져 버리는 그 처연한 모습에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강진 백련사는 동백으로 유명하지만 만덕산을 끼고 돌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흔적을 좇아 볼 때 일정은 좀 더 풍성해진다.

다산초당 전경
 다산초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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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은 정약용 선생이 18년 유배기간 중 마지막 10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며 머물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수백 권의 방대한 저술과 연구 업적을 남겼던 곳이다. 실제 선생께서 유배 중에 이렇게 거한 팔작지붕 기왓집에서 지냈을 리는 만무하고, 다산유적보존회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8년에 새로 지운 건물이다. 초당건물 자체의 역사적 가치는 없더라도 현판글씨는 한 번 볼 만한데, 추사 선생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 후손들이 여기저기서 집자해 만든 것이라 일체감은 다소 떨어진다.

추사의 다산초당 현판
 추사의 다산초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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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바로 오른편의 동암 역시 1974년에 새로 지은 것이지만, 보정산방(寶丁山房, 정약용을 귀하게 모시는 산속 작은집)이라고 적은 현판이 또한 볼 만하다. 평소 정약용을 존경했던 김정희가 직접 쓴 것으로 사상 최고 명필의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추사의 보정산방 현판
 추사의 보정산방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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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왼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바위에 직접 정석(丁石) 이라고 세겨 넣은 암각글씨를 볼 수 있다. 유배 생활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학구열로 다잡고자 한 다산의 의지가 느껴지는 단정한 글귀로 초당 주변에서 선생의 자취를 직접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흔적이다.

암각으로 세겨진 정석
 암각으로 세겨진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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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각의 풍광
 천일각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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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역사적 유물이 없어 답사행이 실속 없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찌 역사의 흔적을 그런 것으로만 찾을 수 있겠는가. 선생이 머물면서 사색하고 연구하며 정진했었을 공간들을 되돌아 보며 위대한 한 인물의 체취를 느껴보는 것 또한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은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진 초당 바로 오른편의 산마루는 선생이 틈틈히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도 쐬고, 고립되어 외로운 심정을 달래던 곳이다. 아마 더 멀리 흑산도에 유배되어 있던 형 정약전을 그리던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유배길에 울며 헤어진 후 형제는 다시 만나지 못했고, 16년 귀향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정약전은 병들어 죽었다.

만덕산에서 바라본 강진만
 만덕산에서 바라본 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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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초기 마을 아전의 아이들이나 가르치며 마땅히 대화할 상대가 없었던 다산은 혜장선사를 만나며 비로소 학문적으로 상대할 대상을 찾았고 둘은 오랫동안 가까이 교류하였다. 천일각을 지나 백련사로 넘어가는 산길은 그 둘이 유교와 불교의 경계를 허물고 지적 자극을 주고 받으며 넘나 들던 그 길이다. 완만히 만덕산을 끼고 도는 오솔길은 중간중간에 시원하게 펼쳐진 강진만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잠시 머물며 먼 바다를 내려다 보기에 좋은 곳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하다.

백련사 동백숲 부도
 백련사 동백숲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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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을 넘어 백련사에 이르면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동백숲이다. 숲 사이사이에는 몇 기의 이름 모를 부도가 남아 있어 동백나무들의 고색창연한 모습과 어울려 이곳의 유구한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동백꽃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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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나무숲
 백련사 동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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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둥치의 수백년 수령 동백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선 동백숲은 동백 특유의 짙은 잎새로 뒤덮여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터널로 장관을 이룬다. 1500여 그루의 이곳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 15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백련사 만경루 전경
 백련사 만경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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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1년(839)에 창건되고 고려에는 여덟 명의 국사를 배출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거찰이었지만 왜구의 침탈과 화재 등의 부침을 겪으며 사세는 크게 줄었다. 결국 영조 36년(1760)에 모든 건물은 다 타버렸고 지금 볼 수 있는 건물들은 그 이후에 새로 지은 것들로, 오히려 근래에 중창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백련사에 이르러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거대한 축대 위에 떡하고 버티고 있는 만경루의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소 답답한 느낌이다. 누각 아래를 뚫어 진입로로 삼고 있는데 원래는 없던 것이었으나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새로 내었다.

영조 때 화재이후 다시 세워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후기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이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136호)
▲ 백련사 대웅보전 영조 때 화재이후 다시 세워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후기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이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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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대웅보전 현판과 용두
 백련사 대웅보전 현판과 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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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으로의 답사는 유달리 건물보다는 현판에 눈길이 가는 경우가 많은데 백련사 대웅보전 또한 그렇다. 바로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원교(員嶠) 이광사의 글씨로 유배지에서 말년을 보내던 당대 명필의 원숙한 멋이 배어난다. 현판 좌우에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은 용두 모습이 특이하다.

칠량면 봉황읍 전경
 칠량면 봉황읍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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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과 백련사 답사를 마치고 봄의 풍경을 가볍게 둘러볼 요량으로 구강포를 끼고 돌며 마량까지 이어지는 강진만 드라이브 코스를 잡았다. 가는 길에는 전통 옹기의 맥을 잇고 있는 칠량옹기도 만날 수 있다.

강진만 동쪽 한켠에 아담하게 들어선 봉황리는 예전에는 전국으로 옹기를 실어나르기 위해 앞바다에 돛배가 가득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플라스틱 용기에 밀려 한 집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개의 마을 사람들은 바지락, 꼬막을 캐고 작게나마 농사도 지으며 살아가는데 이 곳 바지락이 상품으로 취급받으며 바로 현금 벌이가 되는 일이라 옹기만들던 시절보다는 오히려 형편이 좋다고 한다.

칠량옹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옹기가마.  그래도 옹기의 효능을 알고 찾는 사람들이 꾸준해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칠량옹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옹기가마. 그래도 옹기의 효능을 알고 찾는 사람들이 꾸준해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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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토가 들어오는 날은 마을사람들의 몇만원 남짓 품앗이 일거리가 있는 날이된다.
 진토가 들어오는 날은 마을사람들의 몇만원 남짓 품앗이 일거리가 있는 날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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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량옹기
 칠량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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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단을 발라 광택을 많이 내는 옹기가 각지에서 많이 생산된 시절도 있었는데, 광명단을 바른 옹기는 가열온도가 낮아 제조단가를 낮출 수 있고 번쩍거리는 모습을 보기 좋게 여기는 사람도 많아 널리 사용되었지만 정작 흙으로 빗어내 공기가 들고 나는 옹기 특유의 발효 기능을 막아 버린다.

칠량 옹기는 전통 방식인 자연 잿물을 사용해 색은 다소 투박 하지만 숨쉬는 그릇이 될 수 있었으며, 1200도 이상 고온에서 구워야 하므로 단단하고 불순물이 없어 김치, 장, 젓갈 등 유난히 발표식품이 발달한 우리 음식을 담아 두기에 제격이다.

대구면 인근 해안도로
 대구면 인근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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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량을 떠나 강진만을 오른쪽에 끼고 마량까지 가는 길은 야트막한 능선들을 따라 쪽빛 물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대로를 벗어나 해안으로 바짝난 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강진만의 한가한 모습은 더욱 푸근하고 아름답다.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강진만 풍경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강진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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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산초당, #백련사, #강진,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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