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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밤 11시 40분에 방송하는 <MBC 스페셜> '그해 겨울 의항리'.
 22일 밤 11시 40분에 방송하는 <MBC 스페셜> '그해 겨울 의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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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라곤 39만원 밖에 남지 않은 처지에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또 보상은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온다."

굴 양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원이 할아버지는 깊은 시름을 털어놓았다. 민박과 낚싯배 영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의항리 어촌계장인 이충경씨는 "정부와 삼성을 쳐들어가고 싶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2007년 12월 7일,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쏟아버린 기름은 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그 뒤 100일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천안 나사렛대 심재권 교수가 태안 기름 유출 피해지역 주민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민들 70% 이상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나왔다. 자살 충동의 이유로 85.2%가 '생계 곤란'을 꼽았다.

'뉴스'가 아니라 '사람'을 찍었다

'그해 겨울 의항리'의 한 장면.
 '그해 겨울 의항리'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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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토) 밤 11시 40분, <MBC 스페셜>이 '그해 겨울 의항리'를 방송한다. 황우석 사건으로 유명한 한학수 PD가 연출했다. <PD수첩>을 떠난 뒤 <W>를 만들며 해외 뉴스를 캐던 한학수 PD는 지난 해 8월 <MBC 스페셜>로 자릴 옮겼다.

'그해 겨울 의항리' 는 지난 해 11월 방송한 <MBC스페셜> '그 배는 어디로 갔나'에 이은 한학수 PD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그 배는 어디로 갔나'에서 10년 전 IMF 때 퇴출당해 고통 받고 있는 충청은행원들 삶을 그렸던 그가 이번엔 태안 주민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검은 기름이 바다를 덮은 뒤, 충남 태안 의항리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찬찬히 살폈다. '뉴스' 속 인물이 아니라 먹고 자고 울고 웃는 '사람'에 주목했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왜 살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을까? 아이들은 어찌 자랄까? 지난 가을만 해도 은행에서 3500만원을 빌려 낚싯배도 새로 사고, 해수욕장 앞 방갈로 3채도 수선하며 네 살 배기 쌍둥이 남매를 키우며 오순도순 살 생각에 부풀었던 의항리 어촌계장 이충경씨는 왜 이리 절망했을까?

의향리 주민들은 말한다.
"바다를 빼앗기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된 것 같다."

22일 밤 방송하는 <MBC 스페셜> '그해 겨울 의항리'를 연출한 한학수 PD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 태안에 100일 동안 가 있었다던데?
"100일 동안 주구장창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럼 가정이 붕괴하니까(웃음). 3월 15일까지 왔다 갔다 했다."

-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건이 난 지 벌써 100일이 지났다. 태안은 지금 어떤가? 방제 작업은 많이 됐나?

"겉으로는 많이 말끔해졌다. 손길이 닿지 않는 섬들은 시꺼먼 기운이 많이 있지만. 2월 말에 마을 대책위 분들이랑 굴착기로 1m는 파봤는데 틈틈이 기름이 다 쌓여 있더라. 겉으론 멀쩡하지만, 기름이 밑으로 스며들어서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게 조금씩 올라온다. 걱정이다.

초기에 사람들이 많이 달라붙어서 겉에 달라붙은 기름을 걷어냈지만, 아무리 걷어내도 30퍼센트에 불과하다. 지금 유화제를 뿌려 다른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게 했지 않나. 그게 바다로 가라앉힌 거다. 그건 한두 해 만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 인력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시기는 지났다. 차분하게 장비를 갖고 바다 밑이라던가 해안선, 특히 섬 지역에 대한 방제 작업을 해야 한다."

- 직접 오랜 시간 있어보니 어땠나?
"답답하다. 프로 제작하면서도 답답했다."

'그해 겨울 의항리'의 한 장면.
 '그해 겨울 의항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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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하긴 어렵지 않았나?
"처음 취재 시작할 땐 어려웠다. 두 가지였다. 먼저 주민들 반발이랄까. 언론이 자원봉사 이야기만 보도하고 가해자를 규명하지 않는단 반발이 컸다. 언론이 삼성과 짜고 노는 게 아니냔 거다.

두 번째는 사람들하고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방송에 나가면 태안에 좋을 게 없다고 보더라. 이름도 '허베이 스피리트 사고'가 아니라 '태안 기름 유출사고'로 돼버려서, 주민들은 보도가 될수록 태안에 타격이 크다고 봤다.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컸다."

자살한 이영권씨 임종 장면 취재하면서 믿겨지지 않아

- 직접 보니, 뭐가 문제인가?
"보상이 너무 답답하다. 예를 들면 지금 (기름 오염이) 빨라도 2년, 길면 3년에서 5년까지 갈 수 있는데, 그 사이 당장 먹고살 게 없지 않나. 우리 (<MBC스페셜>에 나온) 주인공들도 굴 양식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그 굴이란 게 3년을 키워야 하는 거다. 아무리 빨라도 올 연말, 내년 봄부터 (굴 양식을) 한다 해도 3년 이상 공백이 생기니까 대책이 없다. 우리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답답한 실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자 했다.

국민들 개인 성금이나 따뜻한 손길, 그것만으론 안 된다. 정부가 나서서 보상을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진다. 특별법 본 내용이 '선 보상'하고 피해 실태 조사하겠다는 거 아니었나? 그 취지로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안 돼 안타깝다."

- 그런데 태안 사람들의 절망적인 상황만 보여주고 끝날 건가? 이들을 구원할 대안이나 대책은?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태안' 하면 검은 기름, 자원봉사자만 생각난다. 언론에 많이 보도된 게 그거다. 그게 사람들 머리에 크게 박혀 있다. 이젠 자원봉사자도 별로 없다. 결국, 남는 사람들은 그 땅에 뿌리박고 사는 주민들이다. 가장 아픈 사람들은 주민들이다. 이 사람들을 보자. '사람'을 보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초기 석 달은 주민들이 너무 힘들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영권씨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농약 드셨단 이야기 듣고 달려갔는데 취재한 지 1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임종 장면을 찍고도 믿기지 않았다. 태안에서 첫 번째 자살한 분인데, 우리가 취재하던 주인공들도 그분 친척이고 이웃 사람이고 그랬다. 취재진도 믿기 힘들고 동네 사람들도 충격에 빠졌다. 우리도 믿기 힘든데 같이 사는 가족이나 이웃은 어떻겠나? 농약 먹고 자살하고 분신하고 그래서 3명을 보냈다. 그걸 취재하는데 우리도 힘들었다. 우리도 너무 아팠다."

"우린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말하는 것"

MBC 한학수 PD.
 MBC 한학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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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 유출 사고 이야기를 하면서, 삼성 이야기를 피해갈 순 없지 않나?
"그 내용이 이번 이야기에 배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PD수첩>처럼 누가 옳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 사안의 문제와 원인, 왜 이토록 사람들이 아픈가, 그걸 구성할 생각이다. 주민들 입장에서, 가장 아픈 자 입장에서 그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예를 들어, 12월에 처음 이 동네에 걸렸던 플래카드는 "자원봉사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게 주였다. 그런데 다음에 들어가니 삼성에 대한 분노와 항의의 플래카드로 바뀌었다. 2월 넘어가면서 특별법과 보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찌할지 말하는 그런 플래카드로 또 바뀌었다. 우린 그런 걸 담으려고 노력했다.

또 이걸로 끝이 아니다. <MBC 스페셜>팀에서 지금 1년 기획으로 준비하고 있다. '보상'에서 사람, 생태까지 다룰 생각이다."

- 마지막으로 꼭 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 방송을 한다니까, 태안 주민들이 이 방송 때문에 태안이 이미지만 더 나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더라. 자기 이야기를 있는 대로 담아주는데도 자기네들에게 혹시 피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아이러니하다. 절대 약자로 몰려버린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이랄까. 그런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이분들이 너무 약자 위치에 있어서다. 내 마음이 아프더라. 그래서 걱정 마라 그랬다.

방송이 태안 문제 해결에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볼까, 도움이 돼볼까 하고 만드는 것이다. 우린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말하려는 거다."


태그:#허베이 스피리트, #기름 유출, #태안, #한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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