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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6년차 주부인 제가 본격적으로 밥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과 이태 전, 아이의 밥상을 차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서는 사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진지하게 문제의식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식당에서 사먹는 화학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에 십오 년 이상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먹는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고 싶지 않은 성격 탓도 큽니다. 음식이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제가 갖고 있던 먹을 거리에 대한 생각이었으니까요.

진도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김종북씨의 밥상
 진도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김종북씨의 밥상
ⓒ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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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제가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쓰게 되고, 친지들이 텃밭에서 기른 채소에 열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세 살 된 딸아이 쿠하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네 시간 만에 젖을 물리기 시작해 13개월에 젖을 끊을 때까지 '완전 모유 수유'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뿌듯함과 의기양양함은 곧 밥상에도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잘 나오지 않는 젖을 입술이 부르트도록 빠는 아이도 고생, 유선염에 걸리고 밤잠도 설치게 되는 엄마도 고생인 모유수유를 고집한 건 이제와 돌이켜봐도 참 잘한 일입니다.

젖을 먹이는 동안 아이와 제가 느낀 친밀감과 일체감, 신뢰감 형성은 다른 어떤 노력으로도 채우기 힘든 흡족한 수준으로 커졌으니까요.

애써 내 몸에서 만든 완전식품을 먹여 키운 아이에게 이유식과 밥을 먹이기 시작하게 되면서 되도록 좋은 재료로 단순하게 조리한 음식으로 입맛을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밥상에 대한 책을 찾다보니 대여섯 권의 좋은 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세 권을 소개합니다.

상에 오른 재료를 살펴보게 하는 '희망의 밥상'

"소비자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는 제인 구달의 밥상 이야기.
 "소비자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는 제인 구달의 밥상 이야기.
ⓒ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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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신적으로 무장하기에 좋았던 책은 제인 구달이 쓴 <희망의 밥상>이었습니다.

2006년 가을, 서울의 화계사에서 발우공양을 포함한 특강을 들으면서 읽게 된 이 책은 우리가 먹는 식품들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이야기부터 유전자변형 식품의 문제점,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거대 기업들의 횡포에 대해 세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대량생산을 위해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각종 성장 호르몬제와 화학 비료, 항생제를 사용해 농작물을 길러내고, 더 많은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비좁은 공간에 많은 수의 소나 돼지를 몰아넣고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제가 범벅이 된 동물성 사료로 기릅니다.

게다가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 기업들의 유통망은 전 세계 밥상을 빠르게 단일화 하면서 지역 사회의 건강한 음식문화를 파괴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제인 구달의 제안은 간단명료 합니다.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못 지킬 게 없어 보이는 아주 쉬운 방법들입니다. 그는 우리 '소비자의 힘을 이용하자'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느 제품에 지갑을 여느냐에 따라 기업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당연하면서도 제일 쉬운 방법인 것 같습니다. '내 고장에서 나는 제철 유기농 식품을 먹자'는 제안을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게 되면 자연히 생산자들이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아이들의 밥상에 관심을 갖자'고 주장하면서 집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여도 학교 급식이 엉망이라면 절반의 실패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요. 아이의 급식까지 신경쓰는 학부모들이 결국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패스트푸드를 버리고 슬로푸드를 먹자'고 권합니다. 진정한 웰빙은 속도를 늦추는 데서 시작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지만, 사실 가장 지키기 어려운 항목이기도 합니다. 워낙 바쁘게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천천히 만들어 먹으며 한 끼 식사에 긴 시간을 할애하자는 주장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지요.

간단한 조리법으로 차리는 '소박한 밥상'

니어링 부부를 건강한 노인으로 만들어준 소박한 밥상.
 니어링 부부를 건강한 노인으로 만들어준 소박한 밥상.
ⓒ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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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의 책이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품의 제조 과정과 그 폐해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거칠고 단순한 음식 조리에 관해 긴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녀가 요리책을 쓰게 된 사연은 요리가 꼭 수고스럽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미학적으로 뽐내는 '작품'이 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스콧 니어링의 아내로 더 잘 알려진 헬렌 니어링의 음식에 대한 생각과 실제 생활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생식(生食) 대 화식(火食), 육식 대 채식, 가공 식품 대 신선한 음식에 대해 살펴본 뒤, 조리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합니다.

미국 시골에서 자연을 벗해 사는 부부의 식탁에 오른 음식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과는 많이 달라서 이 책에서 얻은 레시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실제로 해 먹은 음식은 여름에 좋은 스페인식 냉수프(생토마토가 주재료로 시원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입니다)와 따뜻한 감자스프 등 주로 만들기 쉬운 수프와 다양한 샐러드들 입니다.

저장하는 방법이나 양파를 맵지 않게 써는 법, 허브 등 양념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가 여럿 있어 필요한 부분은 메모해 두고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씩 꺼내보기에 좋습니다. 헬렌 니어링의 책에는 밑줄을 그어놓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 구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특권을 누리는 동물이다. 우리는 소의 저녁 식사감이 되지도 않고, 원숭이처럼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균을 주사 맞지도 않는다. 또 다람쥐처럼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쳇바퀴 속에 들어가 계속 달리는 훈련을 받지도 않는다. 우리에 갇혀서, 저녁식사때 예쁘게 노래하라고 성대 수술을 받는 일도 없으며, 신기한 인간 표본으로 뽑혀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히지도 않는다. 우리의 젖을 짜내서 송아지에게 먹이지도 않고, 우리 아기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 잘려서 누군가의 저녁식사 재료로 쓰이는 꼴을 당하지도 않는다. (이 책 71쪽)

고기가 많은 제 밥상이 끔찍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끊기는 어렵겠지만 저는 서서히 육식을 줄이고 '풀밭 위의 식사'를 늘려갈 작정입니다.

우리 몸을 살리는 '농부의 밥상'

농부의 밥상 겉그림. 소박하고 단촐한 밥상에 우리 건강이 있다.
 농부의 밥상 겉그림. 소박하고 단촐한 밥상에 우리 건강이 있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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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대표 농부 10명의 일상과 밥상을 기록한 <농부의 밥상>에는 부러운 사진 몇 컷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장독대 가득 들어찬 커다란 독들 사이로 웃는 부부의 사진이 너무 정겨워 나도 저들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졌습니다. 물론 도시에서 태어나 흙일을 해 본 적 없어 '귀농학교'부터 다녀야 할 테지만, 언젠가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로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는 기약없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걸어두며 책장을 덮었습니다.

단백질 부족은 아닐까 염려될 정도로 온통 초록 일색인 김종북 씨 댁 밥상은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주부에게는 모범 답안처럼 보입니다. 시장한 상태에서 이 사진을 봤을 때,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입안 가득 쌈을 싸 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이 책에는 전국 각지에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땅과 인간을 함께 생각하는 농부들이 등장합니다.

갖가지 약초를 발효해 만든 백초액과 오행쌀을 생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식품 회사를 운영하는 분주한 농부가 있는가 하면, 두 부부가 밭 한 가운데에서 꾕과리를 두드리며 자라는 식물들에게 신명을 느끼게 해주는 농부도 있습니다. 부부의 장단에 흥이난 식물들도 즐거운 기분으로 햇빛을 쬐고 단비를 빨아들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농부들의 농사 이야기는 시장에서 쉽게 사먹는 도시인에게 때로 경이롭고, 겸허하고, 경건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두메산골에서 퇴비조차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에 모든 결과를 의탁하는 자연농을 실천하는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친환경이나 유기농법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자연에 많은 부분을 맡기는 농법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오래된 방법에 따라 가장 겸손하게 짓는 농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농부의 밥상>에는 각 집마다 특색 있는 반찬이 소개돼 있고, 사진으로 잘 차려진 건강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옵니다. 솜씨는 없지만 튼튼한 딸아이의 입맛과 건강을 위해 농부 아내들의 비법을 흉내내볼까 합니다. 젓갈이나 된장 담는 것도 배우고 싶고, 땅에 묻기 어렵다면 김치냉장고에 의지해서라도 시원한 동치미와 아삭아삭한 김치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엄마의 손이 거칠어지고 수고스럽더라도 마늘짱아찌와 쌉쌀한 쌈밥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장독대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독들. 공들여 키운 농산물로 저 독에 가득 정성을 담가두었다.
 장독대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독들. 공들여 키운 농산물로 저 독에 가득 정성을 담가두었다.
ⓒ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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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2006)


태그:#농부 , #유기농 , #밥,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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