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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씨와 나탈리아씨가 텃밭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두 아들 지윤(왼쪽), 성우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정희수씨와 나탈리아씨가 텃밭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두 아들 지윤(왼쪽), 성우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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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중에서도 선도적으로 문제점을 꼬집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가정이라는 카자흐스탄 다문화 가정을 만나러 갔다. 어떤 꿈을 꾸는 사람들이고 이들에게서 나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기대가 됐다.

제주시에서 차로 50분 정도 달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도착했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한적한 마을에 도착하니 정희수(45)씨가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정씨를 따라 조그만 길로 들어서자 넓은 텃밭과 각종 차나무 등으로 가득찬 집 한 채가 보였다. 정씨와 카자흐스탄 부인 나탈리아 보르니나(35)씨가 가정을 꾸민 곳이다. 나탈리아씨는 다섯 살짜리 아들 지윤이와 세 살짜리 성우의 손을 잡고 배웅을 나와 인사했다. 동서양 사람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가정이다.

"국제결혼, 편견을 버리세요"


정씨는 별로 보여줄 것이 없다더니 나탈리아씨가 금세 보랏빛 '선인장'차를 내왔다. 그러면서 집에 들어가기 앞서 허브 잎을 따서 향을 맡아보라고 권했다. 허브며 차나무, 선인장 등 각종 식물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정씨. 정씨는 자원식물 전문업체를 운영하면서 이와 관련 논문도 쓰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국제결혼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그는 외국 여행을 좋아했고 그들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00년 11월 지인의 소개로 나탈리아씨를 만나고 결혼식을 올렸다.

"저는 세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많이 찾아다니려고 했어요. 그래서 국제결혼에 대해서는 당연히 좋게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주변을 돌아볼 때 국제결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많은 다문화 가정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보다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정씨는 "보통 외국사람하고 결혼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외국사람하고 결혼할 생각으로 한 것보다 늦게까지 결혼을 못해서 한 경우가 많이 있다"며 "사회의 일원으로 뒤처진 사람들의 선택이나 혼기를 놓친 농촌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돈 주고 신부를 사오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편 정희수씨는 다문화 가정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편 정희수씨는 다문화 가정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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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것 찾지 마세요. 아내가 가장 아름답죠"

그런 주변의 좋지 않은 시각 때문에 외국에서 온 며느리들은 죄인처럼 숨어 사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하고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어눌해 보이고 모자라 보인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은둔생활이 오히려 다문화 가정의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하고 있다.

정희수씨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정씨의 어머니가 외국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의 굳은 결심에 형제와 부모 모두 이해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세계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국제결혼을 해서 가정이 화목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결국 화려함도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 됐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 데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것보다 좋은 것이 있으리라고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그것을 갖고 있는데 밖에서 찾으니…"

그는 아내와 자식들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데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정씨의 어머니나 나탈리아씨도 여느 며느리와 마찬가지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한국말을 잘 못해서 힘이 들었다는 나탈리아씨. 그러나 나탈리아씨는 "평소 어머니와 지내면서 말을 해서 한국말과 제주도 사투리를 할 수 있다"며 "오일시장에 가도 외국사람이니까 깎아 주기도 하고, 덤으로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탈리아씨는 제주에서의 삶도 만족스러운 듯 "카자흐스탄은 많이 추운데 제주는 따뜻하고 바다도 예쁘고 좋다"고 웃음 지었다.

공룡과 디나자브리, "우리아이 2개 국어 능수능란해요."

나탈리아씨는 한국말을 아직 잘 못하지만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려고 항상 노력한다. 이들 부부는 다문화 가정의 가장 큰 장점이 엄마와 아빠의 모국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탈리아씨는 "러시아어로 공룡을 디나자브리라고 하는 데 두 아들이 공룡이라는 단어보다 디나자브리라는 단어를 먼저 알았다"며 아이들이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씨는 "이제는 세계화시대이기 때문에 저도 영어를 하면서 외국업체와 거래를 하는데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거침없이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데 큰 도구가 된다"며 "완벽하게 외국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고 조금 서툴러도 사리사욕없이 부딪치면 문은 열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언어습득에 도움이 되도록 나탈리아씨와 수시로 대화를 하게 한다. 그와 동시에 정씨는 영어도 조금씩 가르쳐서 한국어·영어·러시아어 거기에다 제주도 사투리까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제주도 사투리와 한국어 교육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이 다른 언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또 한국어는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안다는 것 자체가 외국어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는 이런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 제품을 판매할 때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는 등 국제교역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정씨는 "인적 자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외국어도시를 만들어서, 굳이 외국유학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사람들이 일정 금액을 내서 체류하면서 제주에서 다양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나탈리아 보르니나씨와 아들 지윤(왼쪽), 성우.
 카자흐스탄 출신의 나탈리아 보르니나씨와 아들 지윤(왼쪽), 성우.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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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한가족이라는 인식이 필요

아직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들어갔을 때 겪을 '얼굴색 차이'에 따른 혼란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씨는 "제주에 다문화 가정이 1000여 가정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문제"라며 "엄마가 한국말을 못하다 보니까 엄마와 항상 같이 접하는 아이들도 한국말이 서툴러서 어휘능력이 떨어져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나중에는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더욱이 "필리핀이나 동남아 지역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경우 검은 피부색 때문에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 아이들은 백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친구가 되려고 하는 아이가 많을 것으로 본다"고 학교생활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

기자는 정씨의 이 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사회가 백인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보지만 흑인은 천시하는 인식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씨도 "이제는 사회적인 시각도 많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로 나가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시대에 걸맞지 않은 행태를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전 세계가 하나인 것 처럼 마치 모두가 하나의 냄비에 녹아 있는 것으로 보고 지구는 한가족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세계화를 강조하고 국제화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씨는 "피부가 검든, 희든 모두 소중한 인격체이며 누릴 자유도 똑같다"며 "모든 구성원이 다 건강하게 서로 존중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마음을 모아서 이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공유하면서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가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다문화 가정은 우리네 가정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낯선 사회에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모두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서고 있다면, 그들에 대한 적극적인 한국어 교육과 인재육성 교육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들은 다문화 가정을 우리 이웃이라고 여기고 편견 없이 손 잡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제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다문화가정, #카자흐스탄,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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