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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13~14일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연합뉴스>가 보도해, 회담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핵 신고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해소될 경우, 북미관계와 6자회담은 다시 탄력을 받으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남북관계 역시 호기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6자회담 비관론'이 팽배해지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병행 후퇴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그리고 그 파장은 4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김계관-힐 회동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이다.

 

'상하이 코뮈니케' 방식, 돌파구 열까

 

일단 관심의 초점은 북핵신고 해결 방안이다. 2차 한반도 핵위기의 발단 원인이었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북한과 시리아의 핵협력설, 플루토늄의 분량과 사용처 등이 핵심적인 사안들이다. 이 가운데 UEP 논란의 해결 여부가 제네바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방안이 미중관계의 이정표로 불리는 '1972년 상하이 코뮈니케'이다. 이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내놓은 절충안으로 UEP 등 북미 양측의 이견이 큰 사안들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각기 자신의 입장을 병기해 공동문서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절충안에 대해 북미 양측은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려고 할 경우, 관건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북미 양측이 공동문서에 병기한 이견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은 UEP 및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에 대해 '부인'할 것이고, 미국은 보다 명확한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양측의 이견이 병기된다고 해서 북핵 신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해 절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합의문에 "북미 양측의 이견에 대해서는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안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협력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UEP 등 까다로운 문제를 중장기적인 과제로 넘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미 양측은 UEP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6자회담의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3단계, 즉 북핵 폐기 및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협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

 

미국,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할까?

 

둘째는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 등 미국측 약속 사항의 이행 여부 및 그 시점이다.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가 이뤄져야 이러한 공약 사항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말해왔고, 북한은 "미국이 자신이 할 바를 하지 않으면" 핵문제는 풀릴 수 없다고 맞서왔다.

 

만약 미국이 '동시 행동' 차원에서 '상하이 코뮈니케' 형식의 공동문서가 나오는 즉시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고 적성국 교역법를 종료하겠다고 제네바 회담에서 약속하면, 6자회담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상응조치 이행에 다른 조건을 붙이거나 지연시킨다면, 제네바 회담은 이렇다할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제네바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포인트이다.

 

셋째는 제네바 회담이 성공할 경우 미국에서 불어닥칠 '후폭풍'의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하지 않으면 제네바 회담은 성공하기 힘들다. 이는 반대로 제네바 회담의 성공이 미국 강경파들의 거센 반발을 예고해준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핵 신고가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양보를 했다'며 들고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강경파들의 반발이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를 이탈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부분의 네오콘들은 행정부에서 물러나거나 퇴출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임기 내 북핵 해결을 선호하고 있어, 미국 강경파들이 반발할 경우 직접 나서서 진화에 나서게 될 것이다.

 

김계관과 힐, '예방외교'의 진수 보여줘야

 

결국 제네바 회담의 성패 여부는 북한이 핵 신고와 관련해 보다 진전된 성의를 보여주고,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이 핵 신고 문제는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을 받아내기도 힘들다. 반면 미국이 계속 북한에게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요구하면서 이를 테러지원국 해제와 연계시키면, 제네바 회담은 하나마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양측이 조금만 양보하면 실용적인 해법은 충분히 존재한다. 북한은 UEP와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과 관련해 부인을 하더라도 이러한 의혹을 해소하는데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이에 호응해 테러지원국을 즉각 해제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1994년 10월 북미 양측은 제네바에서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제네바 합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최소한' 동결시켰으며, 위기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만은 틀림없다.

 

14년전 제네바 합의가 '위기 관리'에 기여했다면, 이번 제네바 회담은 '예방 외교'의 성격이 짙다. 성공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큰 디딤돌을 놓게 되지만, 실패하면 모두가 원하지 않는 위기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핵 신고, #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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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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