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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 도화가 벌써 피었나?”

 

이상하였다. 매화도 아직 만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도화가 벌써 피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겨울 심술로 인해 아직 산수유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빨간 꽃을 피어났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도화는 매화가 다 지고 난 뒤에야 피어나는 꽃이다. 그러니 더욱 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 매화에요.”

 

섬진강 변의 주유소 화단에 피어난 빨간 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기름을 넣으면서 주유소 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화가 벌써 피었느냐고? 그랬더니 주인은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도화가 아니라 꽃 매화라는 것이다. 꽃 매화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꽃이 반복되는데, 색깔이 달라 그렇게 부르고 있단다.

 

 

홍매는 붉은 기운만을 느낄 수 있고 청매는 푸른 기운을 느낄 뿐이다. 홍매라 하여서 빨간 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청매 또한 푸른 꽃을 피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꽃 매화는 완전히 빨갛다. 그렇게 화려하게 피어나는 대신,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화려하게 피어났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니, 슬픈 일이었다.

 

비전 상실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비전을 상실하게 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프랑스 요리에 손님 앞에서 산 개구리를 직접 요리하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폴짝폴짝 뛰어서 난장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손님 앞에서 요리를 하여도 아무런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개구리가 좋아할 정도로 물의 온도를 맞춘다고 한다. 적당한 온도에 취한 개구리는 기분이 좋아서 느긋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조금씩 온도를 높여 결국은 삶아지게 하여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삶아지는 지도 모르고 온도에 취하여 그렇게 있다가 죽어가는 어리석은 개구리를 보고 따온 말이 비전 상실 증후군이다.

 

꽃 매화의 화려한 색깔에 젖어 있다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똑 같은 이치다. 꽃을 피워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는 데 있다. 색깔에 취하여 정작 중요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전을 가지고 그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식하지는 못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많은 것이다. 비전 상실 증후군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목적 상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비전 상실 증후군은 스스로의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당연 그에 대한 대책도 강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속절없이 그렇게 당하고 말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서운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 인생이 잘못되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 아닌가?

 

오관을 자극하는 현란한 모습에 취하여 목적을 상실하는 일은 분명 심각하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되돌리기 어렵게 될 것이 확실하다. 말초적인 자극 정도에는 초연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자극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각은 모두 다 허상이다. 실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체 없는 찬란함에 현혹되어 그것을 쫓아간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런데 이런 감각적인 변화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 주인으로서의 권한을 조금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때 인생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꽃 매화의 색깔이 화려하다. 자동차를 몰고 가는 데에도 시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돋보인다. 그만큼 꽃 이파리들의 유혹은 컸다. 그렇지만 그 꽃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겉으로 아무리 화려하여도 결국은 바람일 뿐이다.

 

꽃 매화의 붉은 빛을 바라보면서 내 인생을 돌아다보게 된다. 감각적인 그림자를 쫓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허송세월을 보낼 밖에 없었다. 그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바로 헛것을 헛것으로 보지 않고 실체로 착각한 나 자신의 책임이 아닌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다보니, 모두가 다 바람이다.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허망한 그림자를 진짜로 생각하고 그 것에 매달려온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실감하게 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지만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꽃 매화의 붉은 이파리를 바라보면서 바람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어야겠다.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절실함을 실감한다. 어리석음의 원인은 바로 욕심이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바람 같은 욕심을 버린다면 비전 상실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때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남 구례에서


태그:#꽃, #주객전도, #깨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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