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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연승가도를 달리고, 불과 며칠 전까지도 힐러리가 앞서던 오하이오 주와 텍사스주까지도 이제 오바마가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오바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오바마가 흑인이어서 백인 주류 사회인 미국의 변화, 나아가 전 세계 흑인들에 대해서까지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고 본다. 오바마가 전세계 흑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존 에프 케네디 아닌, 빌 클린턴 빼다 박아

 

이런 가운데 미국 바깥에 있는 흑인들, 특히 영국 흑인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글이 흥미를 끌고 있다.

 

영국 인종평등위원회 위원장 트레버 필립스가 영국의 유력 정치월간지 <프로스펙트> 3월호 기고문인 "오바마는 장대한 국민통합론을 제창하지만 실상 인종차별 종식은 더 늦춰지기만 할 것"(박스기사)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 민주주의 포럼>이라는 인터넷 매체의 칼럼니스트 딜데이가 <뉴욕타임즈> 2월 27일자에 기고한 "<아프리카계>가 아닌 <흑인>으로 돌아가라"(박스기사)는 글이다.

 

트레버 필립스는 영국 인종평등위원회 위원장이지만 전에 저널리스트 및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영국 흑인사회의 명사에 속한다. 그는 최근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셸비 스틸레가 오바마에 대해 쓴 <묶여 있는 숙명적 인간>이라는 저서를 주로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트레버 필립스에 따르면 오바마는 그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존 에프 케네디가 아닌,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빼다 박았다고 지적한다. 카리스마 유형, 정치적 수법과 전략, 냉혹함 등에서 똑같다는 것이다.

 

'대드는 유형' 아닌 '흥정형'

 

한편, 스틸레에 따르면 미국에서 공인으로 활약하는 흑인 명사들은 첫째 실패를 거듭하고 만 가비, 말콤 X, 잭슨 등과 같은 ‘대드는 유형’과 보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흥정형’ 두 유형이 있으며, 정치인 오바마는 그중 흥정형에 속한다. 

 

‘대드는 유형’은 백인들에게 위력을 행사하여 그들이 과거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도록 하며,  이러저러한 양보조치들을 취해야만 죄 값을 경감시켜준다.

 

‘흥정형’은 “당신 같은 백인들이 피부색을 이유로 나를 배척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면, 과거 당신들이 자행한 인종차별주의 역사를 내세워가며 당신들에게 저항하진 않겠소”라고 말하며 흥정을 시도하는 지도급 흑인 명사들을 가리킨다.

 

오바마의 희망과 인종차별현실 갭 너무 커

 

미국의 절대 다수 흑인과 상당수 백인들은 오바마가 정말 미국의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백인들은 오바마가 미국이 정말 과거의 유습을 진정 단절한 생생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흑인들은 오바마가 가비나 킹목사 혹은 제시 잭슨 목사처럼 해방을 가져다주는 예언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스틸레의 결론은 오바마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인종차별 없는 미국이라는 오바마의 약속과 인종차별과 불평등으로 찌들어 있는 미국의 현실 사이의 갭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틸레는 흑인이 책임감이 없어서 실패(문화와 교양의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세계화가 가난한 계층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있는 점이나 오사마 빈 라덴으로 인하여 흑백갈등이 은폐되고 있는 점들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

 

흑백분리지역 승리, 차별금지지역 패배?

 

오바마가 필연적으로 패배하다고 보는 스틸레는 선거 문제가 아닌 미국의 근본적 변화 측면에 대해서이다. 요컨대 인종차별 없는 미국이라는 오바마의 약속과 인종차별과 불평등으로 찌들어 있는 미국의 현실 사이의 갭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정형인 오바마 대통령도 인종차별에 대해 아무런 해결도 못하면서 정치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흑인과 백인이 바로 이웃에서 뒤섞여 살면 백인이 오바마를 지지하기 힘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오바마는 이렇게 흑인과 백인이 뒤섞여 사는 동네나 지역들에서는 제대로 승리를 거두질 못하였다.

 

즉 흑인과 백인 거주지가 아직도 분리되어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아직도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오바마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흑인과 백인이 관공서와 대중교통 등을 함께 뒤섞여 이용하고 있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주 같은 곳에서는 오바마가 패배하였다.

 

"'아프리카계' 아닌 '흑인'으로 돌아가라"

 

한편 딜데이는 전세계 '오바마니아'의 원천이 검은 색의 흑인이라는 포괄적 연대감이라는 특성에서 찾는다. 그래서 인종분류도 '아프리카계' 아닌 '흑인'으로 복귀할 것을 제창한다. 영국이 흑인 노예제를 경험하지 않았으며 흑인사회가 파벌로 존재하며 흑인인구 비중도 미국의 1/6에 불과하여 사회적 정치적 파워가 미국에 비해 약하다.

 

반면 미국 흑인사회는 출신지역에 상관없이 흑인 중에서도 구체적인 검은 피부 색깔이 어떠한가에 상관없이 모두 환영한다. 흑인이면 모두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단합된 흑인사회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흑인인 딜데이는 미국흑인사회가 인종분류에서 '아프리카계'라는 용어를 버리고 '흑인'이라는 인종분류법으로 돌아가도록 요청하였다.

 

트레버 필립스 위원장은 왜 영국엔 미국 흑인지도자 같은 인물이 없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느라 곤욕을 치른다면서도 오바마의 선전에 대해 반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인인 그가 인종차별 종식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별 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프로스펙트> 3월호는 그외에도 로버트 레이히의 기고를 게재하였다. 트레버 필립스가 영국정부의 '인종평등위원장' 시각에서 접근하여 정치인 오바마의 성공을 반기나 그의 실질적인 인종차별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고 진단했다면, 레이히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 옥스포드 대학 유학 동기이면서도 힐러리 아닌 오바마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즉 레이히는 “오바마는 좌파 아닌 이상주의자”라는 글에서, 오바마 마니아 층의 폭발 현상은 좌파 대이동까지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1960년대처럼 다시 한번 더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는 장대한 국민통합론을 제창하지만

실상 인종차별 종식은 더 늦춰지기만 할 것”

 

오바마가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대해 난 화가 치솟으며 심술이 난다. 난 주변의 백인친구들이 왜 영국엔 미국처럼 오바마, 마르틴 루터 킹, 말콤 X, 오프라 윈프리 같은 흑인 유력인사들이 없는가 하고 하소연하듯 물을 때마다 대답하는데 녹초가 되고 말았다. 공인으로 활동하는 영국 흑인 인사들에게 그 질문은 결국 '왜 당신은 미국의 그들처럼 하질 못하는 것이오?' 하는 힐난이 배어 있다.

 

답은 간단하다. 미국의 흑인 정치권 명사들처럼 카리스마가 흘러넘치며 유능하고 냉혹성을 갖춘 인물들이 영국 흑인사회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적으로도 영국 흑인인구 비중은 미국의 1/6에 불과하다. 따라서 영국 흑인들이 미국 흑인처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역사적으로도 영국 백인은 미국 백인 같은 노예제를 경험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흑인을 깔아뭉개는 인종차별주의가 영국에서는 미국처럼 심하진 않다. 영국 흑인들은, 수백년 동안 가혹한 노예제를 운영하다가 그로부터 벗어난 지 불과 5,60년 밖에 안 된 미국 백인들과 같은 죄과를 겪지 않았다. 영국 흑인들은 영국에 온 지 60년이 채 안 되는 흑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영국 백인들은 미국 백인들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영국에서 노예제가 없었던 탓에 그것은 피비린내는 아주 먼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영국 흑인은 아마도 미국 남서부의 가난한 라틴계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노예제에 대해서는 나도 카리브계로 노예생활을 한 이들과 분노를 함께 하고 있다. 미국 아프리카계 거물 정치인들 상당수가 바로 이 카리브계이다. 마르쿠스 가비(자메이카), 말콤 X(트리니다드), 시드니 포와티에(바하마)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노예제를 겪지 않은 아프리카계인 한 미국인이 미국정치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오바마이다.

 

오바마는 대다수 흑인들과는 달리 흑인 케냐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백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흑인 보수주의 작가인 셸비 스틸레(Shelby Steele)가 최근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오바마에 관한 최근 저서 <묶여있는 숙명적 인간>(A bound man)은 부제로 '왜 우리는 오바마에 흥분하는가, 왜 오바마는 승리할 수 없는가'를 택한 것과는 정반대로, 지금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에서 연승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꺾고 매케인과 맞대결을 벌일 것 같다.

 

스틸레가 말하는 건 선거 승리의 문제가 아니다. 스틸레는 오바마가 과연 미국의 근본적 변화를 대변하는 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정말 미국의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백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이 정말 과거의 유습을 진정코 단절한 생생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흑인들은 오바마가 가비나 킹목사 혹은 제시 잭슨 목사처럼 해방을 가져다주는 예언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스틸레의 핵심 논점은 오바마가 희랍비극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이런 희랍비극적 성격이야말로 결국 오바마를 숙명적 실패자로 몰아갈 것이라고 본다. 요컨대 오바마가 백인의 희망을 달성해주면 필연적으로 흑인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며 그 역도 맞다는 것이다.

 

스틸레의 분석논리는 명쾌하다. 오바마가 고집불통의 무교주의자이자 학자인 케냐인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심리를 무시한다 해도, 핵심은 간단한 것이다. 즉 스틸레에 따르면 미국에서 공인으로 활약하는 흑인 명사들은 첫째 실패를 거듭하고 만 가비, 말콤 X, 잭슨 등과 같은 ‘대드는 유형’과, 보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흥정형’, 두 유형이 있다.

 

‘대드는 유형’은 백인들에게 위력을 행사하여 그들이 과거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도록 만들며,  이러저러한 양보조치들을 취해야만 죄 값을 경감시켜준다. 여기서 양보조치란 어떤 때는 흑인들을 위한 어떤 사업추진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명목상에 불과한 정치적 직위 부여가 되기도 한다. 이들 ‘대드는 유형’은 흑인 중간층의 성공을 지향한다. 이들 흑인 중간층은 과찬을 받기도 하나 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서, 이들은 통상 백인들의 적극적인 양보정책 조치나 명성 있는 로펌 측의 입사 허락 등과 같이 혜택을 받은 층을 가리킨다.

 

예컨대 오바마가 콜롬비아대학과 하버드대학 최고위층으로부터 입학을 허용 받은 것이 그 예가 된다. 하지만 ‘대드는 유형’은 아무리 요구해도 단지 점진적인 양보조치들만을 얻어낸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짓밟히거나 배제 당하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 한 위력행사도 할 수 없다. ‘대드는 유형’은 성공하더라도, 그 순간부터는 도덕적 설득력과 윤리적 힘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흥정형’은 “당신 같은 백인들이 피부색을 이유로 나를 배척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면, 과거 당신들이 자행한 인종차별주의 역사를 내세워가며 당신들에게 저항하진 않겠소” 라고 말하며 흥정을 시도하는 지도급 흑인 명사들을 가리킨다. 흥정형대로 하면 모두가 승자가 된다. 백인은 ‘인종차별주의 혐의는 이젠 무죄’라고 하는 것으로 우쭐해지면서 승리하는 것이 되고, 흑인은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루이 암스트롱에서 시작하여 포와티에, 킹목사, 빌 코스비, 그리고 이 유형의 정수라 할 오프라 윈프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흑인 인사들이 눈부신 크로스오버 흥정형으로서 성공을 거둬왔다.

 

오바마는 두 유형 중 천성적으로 흥정형에 속한다. 오바마가 고등학교 때 마약에 손댔다가 체포 당한 사건에서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오바마의 흥정형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당시 백인 어머니가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학교로 뛰어왔다. 오바마가 저서에서 쓴 바에 따르면 이때 그는 어머니에게 “‘안심하세요’ 하며 웃으며 엄마 손을 잡고,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하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오바마에 따르면 “이렇게 하는 게 보통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이유는 공손하게 웃으며, 갑작스런 행동은 하지 않도록 하면 다른 사람들은 안심하며, 예의바른 흑인 청소년으로 언제나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하면 굉장히들 유쾌해 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럽 시각에서는 모두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미국 일상생활에서 어느 인종이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거의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예컨대 아프리카계가 저녁에 TV를 볼 때 백인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미국을 시청하고들 있다. 즉 통계를 보면, 지난 20여 년 동안 백인, 흑인, 히스패닉 별로 인기프로 20개가 두세 개를 제외하곤 전혀 다른 것들로 꽉 차있다.

 

미국 백인들 입장에서 이와 같은 분리현상은 노예제의 원죄 같은 것을 일상적 현실로 만드는 것이 된다. 그런데 오바마가 이기게 되면 백인들은 킹목사가 말하는 인종차별을 일소한 세계가 도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바마에게 투표하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인종차별 행위를 부정하는, 즉 고통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흑인과 백인이 바로 이웃에서 뒤섞여 살면 백인이 오바마를 지지하긴 힘들다. 오바마는 그렇게 흑인과 백인이 뒤섞여 사는 동네나 지역들에서는 제대로 승리를 거두질 못하였다. 요컨대 흑인과 백인 거주지가 아직도 분리되어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아직도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오바마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흑인과 백인이 관공서와 대중교통 등을 함께 뒤섞여 이용하고 있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주 같은 곳에서는 오바마가 패배하였다.

 

흑인 하층민들에게 최후의 메시아는 오바마를 넘어서는 곳에 있다. 그러나 흑인이 일자리와 소득이나 재산을 두고 백인과 타협의 여지없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흑인이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오바마 마니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미국사회가 인종차별 극복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 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흑인들 입장은 어찌되었든 간에 백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틸레의 결론은 오바마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인종차별 없는 미국이라는 오바마의 약속과 인종차별과 불평등으로 찌들어 있는 미국의 현실 사이의 갭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나(트레버 필립스)는 스틸레가 부분적으로 맞다고 본다. 스틸레가 잘못된 부분은 분석시각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에 있다. 즉 스틸레는 되풀이하여 흑인은 책임감이 없어서 실패(문화와 교양의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세계화가 가난한 계층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스틸레는 오바마가 인종간 불평등에 대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보게 만든 측면을 놓치고 있다. 미국의 지도급 공직자 사회에서 흑백간의 분열상을 물리친 것은, 역설적이도 또 하나의 키가 크며, 카리스마를 갖추고, 백인이 아닌 인물에 의해서였던 것이 사실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다. 9.11 사태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사회에서 새로운 ‘남’을 만들어낸 것이 되었다.

 

새로운 이 위협세력을 앞에 두고서 미국은 그때까지 정말 오랜 분열상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각오한 것처럼 보였다. 오바마의 승리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결국, 흑인들은 과거의 흑인이 아니며 흑인들을 달래며 회유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즉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 흑인들을 빈민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고대하는 수천 만 명의 흑인들은, 오바마가 당선되면 그와 같은 소망은 단지 상상 속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 흑인지도자의 진짜 문제점은 스틸레의 저서에서 가장 중요하며 비극적인 인물인 빌 코스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코스비는 한때는 영향력이 엄청나서 미국 TV 방송이 자신의 제안 그대로 방송을 해야 할 정도였다. 스틸레에 따르면 코스비는 대표적 ‘흥정형’ 인사였다. 1980년대 ‘코스비 쇼’ 프로그램에서 깜찍한 코스비 가족 모습은 미국사회에 인종차별은 무죄이며 이제 더 이상 없다는 인상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최근 코스비는 미국 전역을 돌며 흑인의 책임감을 유난히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흑인 어린이들도 정확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번지르르한 값비싼 옷을 입는 랩가수들을 비난하는가 하면, 흑인남성들에게는 자식들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하고 다녔다(오바마 아버지도 오바마를 버렸다). 모두 좋다. 그러나 코스비는 이제 정말 슬프면서도 외로운 인상을 주고 있다. 그가 ‘흥정형’과 ‘대드는 유형’이 모두 사용하는 윤리 도덕적 무기를 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스비가 흑인을 해방시키는 것은 결국 백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에 대해 오바마를 포함하여 누구도 제대로 알려고 하질 않는다. 바로 이게 문제이다. 대드는 유형과 흥정형 둘 다 인종차별이 미국사회의 중심부에 그대로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끝내, 인종차별 없는 미국의 도래를 늦추고야 말 것이다. 난 오바마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바마가 승리하면 여기서 말하는 냉소주의가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해 그런대로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오바마는 결국 정치인, 그중에서도 정말 좋은 정치인에 속한다. 즉 오바마는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그는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인종차별 없는 미국의 선구자까지 될 수 있겠는가? 난 그렇진 않다고 본다.

 

오바마를 홍보하는 측에선 그를 존 에프 케네디에 비유한다. 하지만 난 오바마는 보다 최근 역할모델이 존 에프 케네디가 아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라고 본다. 버락 오바마와 빌 클린턴, 이 두 사람은 카리스마 유형이나 온갖 정치적 수법과 냉정함과 냉혹성 측면에서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대등하기 때문이다. (<프로스펙트> 3월호, 트레버 필립스, 번역 / 문성호)

 

'아프리카계'가 아닌 '흑인'으로 돌아가라

 

 

난 1970년대 미시시피에서 태어난 흑인이다. 1980년대엔 가끔 <아프리카계> 혹은 <아프로(Afro)계> 미국인으로 변신해야 했다. 제시 잭슨이 힘 있을 때의 얘기다. 그런 아프리카계는 마치 내가 아프리카계 행세를 하길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는 난 아프리카계가 아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영국이다. 영국에서 난 다시 아프리카계가 아닌 흑인이 되었다. 영국 흑인은 세계 각지 출신들이 뒤섞여있다. 물론 영국 식민지 국가들에서 온 흑인이 가장 많다. 가장 최근 통계를 보면 영국 흑인 중 40% 정도는 카리브계로서, 이들도 아프리카계 흑인이라고 생각하며, 나머지는 전적으로 영국에 온 지 오래 된 흑인들이다. 영국 흑인은 선조의 국적에 따라 분류되기도 하나, 미국과는 달리 모두 하나의 '흑인'으로 분류한다. 흔히는 인도 출신 아시아계 흑인까지 여기에 포함시킨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은 흑인에게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불행한 노예제 유산으로 인하여 이들이 각자의 선조가 누구인지 그리고 원래 국적은 어딘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노예제가 종식된 이후에 미국에 건너왔기 때문에 원래 출신 국적이 어딘지 아는 '흑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오바마가 대선에 출마할 당시 진짜 '아프리카계'는 아니라고 말하던 바로 그 이유이다. 하지만 오바마 아버지는 아프리카 출신, 어머니는 미국인이므로 명백히 '아프리카계'에 속해 있다.

 

선조가 미국에 온 시점에 따라 미국의 흑인들을 구분하게 되면 국경과 가족 계보를 초월하는 온갖 경험의 양상들을 무시하면서 전세계 흑인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된다. 과학적으로 흑인은 생물학적 명칭에 불과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북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내가 여행하는 곳마다 검은 색 피부를 가진 이들 흑인들이 다가와 부드러우면서도 공세적인 자세로 연대감을 표시하곤 한다.

 

민주당 경선 초창기 미국의 흑인들이 과연 오바마를 지지할 것인지 몹시 궁금해 했다. 난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지난 두 해 동안 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오바마의 뜻과 의미를 해독하게 되었다. 나를 미국인이라고 알고 있어서 그런지, 아랍어로 말하는 카사블랑카의 모로코인, 프랑스 파리 외곽에 살며 불어로 말하는 핸드폰 가게 흑인 점원, 자메이카 출신의 탁한 발음으로 말하는 흑인 영국인 등등이 내게 다가와 오바마에 대해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한 바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바마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흑인들이 아프리카계라는 말을 쓰면서 왜 일부 흑인들을 배제하려 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다. 흑인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파워는 바로 그 포괄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에서 흑인이라면 구체적인 피부색깔이나 미국 도착 시점에 상관없이 모두 예로부터 환영해왔다. 반면 영국에서 검은 색 피부를 가진 식민지 출신 사람들은 파벌 형태로 살아간다. 영국은 미국보다 흑인 비중이 낮다는 점을 무시한다면, 출신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현상이야말로 영국 흑인사회가 미국 흑인보다 사회적 정치적 파워가 훨씬 약한 이유라고 본다.

 

난 내 선조가 3,4대 위까지 누구인지 알려고 애걸복걸하진 않는다. 나의 배우자는 영국인이며 족보를 따지면 11세기 잉글랜드 시조 아서왕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식들이 나 때문에 검은 피부를 지니게 되고 온갖 특별취급을 당하며 고통을 겪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 더 많은 위로를 받아야 할 형편이다.

 

미국 흑인들은 오바마 덕분에 낙인을 제거하게 되었다. 민주당 경선 투표결과를 보면 흑인 중 80% 정도가 오바마를 지지하였다. 모로코의 산악지대, 파리 변두리 가난한 동네, 케냐의 작은 마을, 런던 지역 등에 사는 흑인들은 모두가, 미국의 여러 주마다 이어지는 오바마의 연승행진에 기뻐해 마지않는다. 오바마는 바로 자신들과 똑같은 흑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들은 이 점을 존중해야 한다. 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인종분류 용어를 내던져 버리고 빨리 '흑인'이라는 분류법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 (<뉴욕타임즈> 2월 27일자 칼럼, 딜데이 / openDemocracy 칼럼니스트, 런던거주, 번역 / 문성호)


태그:#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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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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