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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말해 인수위가 말한 대로 하면 나라가 망할 게 뻔하기 때문에 실제로 실현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 인수위가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이명박 정부와 인수위의 '국책기관 민영화' 정책에 대한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신랄한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금산분리 완화 역시 금융산업의 경쟁심화와 과잉중복투자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며, 고용 현황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전망하며 “마구잡이 시장주의자들이 선무당 사람잡듯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경제연구소'는 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구조조정을 막기 위한 금융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설립되었다. 현재로서는 진보진영에서 금융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연구소로 금융노조 산하에 있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그 결과물로 연구소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지점일 것이다.

 

연구소는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시작된 한국사회의 급격한 금융화와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서 일어는 변화를 다룬다. 특히 금융화가 가져온 불안정성이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주목한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곧 자본시장 통합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시행될 것으로 보고 이것이 미칠 영향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연구 성과물은 보고서나 자료집 형태로 제작되어 배포된다. 노동조합의 정책을 세우거나 조합원들을 필요한 대중들의 교육용으로 사용된다. 이외에도 정기적 간담회와 토론회를 진행하며 연구위원들의 활발한 기고, 저술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핵심원리는 금융

 

다음은 이종태 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

 

- 연구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극심한 구조조정을 당한 분야가 금융산업이었습니다. 그때 금융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로 우리 연구소가 세워졌습니다. 금융노조 산하의 사단법인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97년 이후 한국사회는 많이 변화했습니다. 지금도 변화가 계속 되고 있죠. 그런데 이런 변화는 ‘금융화’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금융이라는 핵심고리를 중심으로 노동, 산업구조를 비롯한 각종 사회변화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융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해석하는 것이 우리 연구소가 하는 일입니다."

 

- ‘금융화’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금융이 전 사회를 조직하는 핵심원리가 되는 것이죠. 금융이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들어온 것입니다. 80년대 중반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한번 휩쓸고 호주와 유럽을 딛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생활 깊숙이 금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전의 사람들이 저축 행태는 주로 은행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증권이나 투자성 펀드 등으로 저축을 합니다. 이를 자산보유의 증권화라고 합니다. 또 의료보험이나 실업보험 등 국민들의 돈을 정부가 운용하는 경우들을 봅시다. 이런 것들은 일종의 펀드입니다. 그런데 이 펀드들이 더 많은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죠.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자신들이 낸 돈이 결국 주식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 금융화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

"우선 금융화는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리 사회에도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죠. 그런데 비참세대, 1000 유로 세대 등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금융화론자들은 금융시장의 효율화를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빈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금융화는 경제의 숙명적 불안정성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 시장의 변화가 노동 시장 유연화로 이어져..."

 

- 금융의 문제가 노동의 문제가 연결된 셈이군요?

"그렇죠. 97년을 겪으면서 한국의 은행과 기업은 사고팔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외환위기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은행이나 기업을 사고파는 것은 결국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투자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려고 하죠. 결국 노동자들의 고용악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진보진영에서도 금융문제를 심도 깊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한국사회를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 올해는 어떤 것을 연구할 계획이십니까?

"이명박 정권과 함께 내년 정도에 자본시장 통합법이 통과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금융지주회사법이나 보험법 개혁도 시동이 걸릴 것입니다. 이런 법들이 시행되면 한국이 본격적인 금융화의 단계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예측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영국과 같은 금융 선진국가들이 금융화를 거치면서 겪었던 변화를 살펴볼 생각입니다. 향후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는 이런 변화가 금융 노동자나 서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 재벌이 주도하는 금융화 가져올 것"

 

- 이명박 정권 하에서 금융 분야는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지난 기간 핵심적으로 해왔던 금융정책을 이명박 정부 역시 이어갈 것입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금융개방, 금융허브론, 금융기관 대형화 등의 정책을 이명박 정권이 그대로 계승할 것입니다.

 

특히 재벌에게 유리한 금융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금산분리 완화입니다. 이는 재벌이나 재벌 계열의 자본을 금융기관에 집어넣어서 재벌을 금융기관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재벌 중심의 금융화, 재벌이 주도하는 금융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재벌들이 금융화의 바람 앞에서 소수의 지분을 갖고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느라 곤란(?)을 좀 겪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IMF가 요구했던 바가 쉽게 말하면 재벌들의 특권을 없애라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노무현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재벌들이 스스로 개혁을 하고 금융화 부분에서 점차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것이 더 심화될 것입니다."

 

- 말씀하신 금산분리 완화가 시행될 경우 어떤 문제점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요?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입니다. 예전에는 은행은 은행끼리, 증권은 증권끼리, 보험은 보험끼리 경쟁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경쟁대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들마저 뛰어든다면 경쟁은 더 심해지겠지요.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불필요한 과잉투자와 중복투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과잉중복투자로 비대해진 금융산업은 국내시장만으로는 체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금융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세계 경제가 한번 출렁할 경우, 커다란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 분야는 고용 창출이 크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런데 재벌들이 금융 산업에 뛰어들면서, 고용 창출을 하는 다른 산업들을 축소해나가면 우리의 고용 상황은 더 어려워집니다."

 

국책기관 민영화하면... "나라 망할 게 뻔해"

 

-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를 통해 ‘국책기관 민영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본적으로 체계가 없고, 현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인수위가 말한 대로 하면 나라가 망할 게 뻔하기 때문에 실제로 실현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 인수위가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정책금융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흔히 미국을 두고 금융 무한 자유화의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정책금융의 왕국입니다. 전 세계 금융의 주도권을 쥔 미국도 정책금융이 큰 역할을 하는 마당에 한국에서는 마치 정책금융은 아무 필요도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마구잡이 시장주의자들이 선무당 사람 잡듯이 잡는 격이죠."

 

- 수많은 금융관련 연구소 중 '금융경제연구소'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금융을 다루는 연구소는 많으나 주로 정부나 관변단체, 기업과 연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풍부한 인력과 재정을 가진 수많은 연구소들이 이제까지 금융화로 인한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근간이 되는 정부나 기업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진보진영의 유일한 금융 연구소로서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왔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인원이 총 4명인데, 인력이 많이 부족하실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웃음) 물론 연구소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그러나 모든 진보 연구소들이 그렇듯이 재정이 풍족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연구소는 금융노조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수월한 편이지만요. 관변연구소나 기업연구소처럼 돈을 팍팍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현재의 조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금융경제연구소(소장 이찬근). 홈페이지 http://www.fei.or.kr 전화 02-2095-0095 / 팩스 02-2095-0099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정책대안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태그:#금융경제연구소, #금융노조, #국책기관 민영화, #금산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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