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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신제의 음식을 담당했던 장찬의 집에서 지신밟기는 시작되었다. 정월 초 이렛 날부타 약 일주일동안 장찬의집에는 함부로 손님을 받지 않고 장찬은 몸조심을 하며 제 음식을 준비하게된다.
▲ 지신밟기 별신제의 음식을 담당했던 장찬의 집에서 지신밟기는 시작되었다. 정월 초 이렛 날부타 약 일주일동안 장찬의집에는 함부로 손님을 받지 않고 장찬은 몸조심을 하며 제 음식을 준비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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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12시 30분경에야 별신제가 끝났다. 별신제의 모든 장면을 사진에 담고 돌아오는 길에 전대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고 있는 정명철 후배가 내일 아침에 다시 호계리에서 지신밟기를 한다고 전했다.

아침 일찍 다시 찾은 호계리마을은 어젯밤 보이지 않던 아주머니들이 음식준비에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별신제의 모든 준비와 제사는 오직 남자만 할 수 있다는 옛날 옛적부터 전해 내려온 오랜 풍습에 따라 여자들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여자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음식을 나르며 앞장을 섰다.



호계리마을에서는 별신제가 끝난 다음 날인 보름날 오전에 별신제의 결산을 보는 마을 회의를 열어 별신제를 치르면서 제관으로 참여한 모든 제관들의 이름과 역할을 기록한다.

별신제를 처음 지내기 시작하면서 기록해 두었던 별신제의 모든 기록이 300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현재까지 잘 보존된 것은 호계리 마을의 큰 자랑이다.

전국의 민속학자들이 호계리 마을에 주목하는 것은 그 만큼 오랫동안 빠짐이 없이 잘 정리되어 기록해 둔 별신제의 기록물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라고 김종관(68)씨는 말해 주었다.
마당굿을 해준 학생들을 집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음식을 권하고 있다.
▲ 지신밟기 마당굿을 해준 학생들을 집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음식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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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시작한 회의는 진통을 겪고 있었다.n어젯밤 별신제에서 자기 역할을 잘해야 함에도 갈수록 제를 올리는 사람도 없고,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우왕좌왕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자리가 되고 있었다.

회관 밖까지 큰소리가 들려 지신밟기를 오전까지만 해주고 떠나려고 했던 전남대 국학과 전통극문화연구회 학생들과 나는 불안하기까지 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회의에 참석했던 종관씨께서 “모든것이 그 놈의 사람 땜시 그래,  제를 올릴 사람이 없응께 그런 거여, 인자 귀찮은 거, 심든 거 서로 안 할라고 하제. 옛날에 서로 제관을 할라고 난리였는디, 인자는 참말로 할 사람이 없당께”하신다.
정갈하고 깨끗한 상위에는 현금 3-5만원 그리고 쌀 한 대접이 놓여있다.
▲ 집집마다 상을 놓았다. 정갈하고 깨끗한 상위에는 현금 3-5만원 그리고 쌀 한 대접이 놓여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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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래도 이라고 학생들이 왔응께 지신밟기는 해야제, 한 해 동안의 모든 액 매귀는 풍악이랑께,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풍물을 뚜들고 나믄 시원하제”한다.

지신밟기의 앞잡이 역할은 김종근(86)할아버지가 했다.
“먼저 그랑께 어지께까지 고상을 제일 많이 한 장찬(제사에 음식을 장만한 사람 집) 집 부터 해야제” 하시면서 풍물패를 장찬집으로 안내했다.

“왔따 참말로 좋네,  저 놈의 풍물소리를 들은께 속이 시원하구마, 벌써 한 20년이 흘러불었구마, 이라고 마을에서 집집마다 다니믄서 풍물을 치고 마당굿을 한 것이,  정월 대 보름 날은 뭐니뭐니해도 이라고 시원하게 액매귀를 확 해부러야 속이 후련하당께” 하신다.

마당굿이 이집 저집으로 옮겨가면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집도 한 번 풍악을 두드려주었으면 한다고 부탁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20년전을 생각했다. 그 때는 정월달 내내 이렇게 풍물을 치고 놀았제 하신다.
▲ 학생들의 지신밟기는 흡족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20년전을 생각했다. 그 때는 정월달 내내 이렇게 풍물을 치고 놀았제 하신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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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대학생들의 마당굿을 보며 옛날 옛적을 생각했다.
“어린 것들이 이쁘게 생겨갔고, 참말로 별 것이네, 영판 잘하네, 우리집도 한 번 해주면 좋것구마, 종근이 아제 우리집 꼭 해주믄 안 되것쇼.”

“왔 따 그란디 어쩌께라, 학생들이 바쁘다고 한께, 내 생각 같으믄 이왕에 시작했응께 집집마다 확 두둘겨불믄 좋것는디, 바쁘다고 안 하요.” 종근할아버지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어이 종관이 그래도 저그 범섭이 집은 꼭 가야 쓰것는디, 그랑께 그 놈이 속이 무지 상해갔고 있데, 어지께부터 부탁을 했어 꼭 해달라고” 하신다.
왔따 쬐끔만 젊었어도 함께 놀고 싶은디, 인자 몸이 안따른께,,,
▲ 동네 아짐들과 아제들 왔따 쬐끔만 젊었어도 함께 놀고 싶은디, 인자 몸이 안따른께,,,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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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섭씨는 나이가 50쯤된디 아직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믄서 삿시를 하고 댕긴디, 아부지는 얼마전 돌아가시고, 엄니가 엇 그저께 마당에서 치칸을 갔다 오다가 쓰러져 갔고, 지금 장흥병원에 입원에 있고, 또 그 와중에 광주서 교통사고가 나갔고 500만원이나 합의금을 물어 주었데야, 그랑께 한 번 해주쇼.” 동네 옆집 아주머니는 간절하게 풍물패에게 부탁을 했다.

자신의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법섭씨 그는 너무나 사는게 힘이 들었다며 지신밟기로 모든 액귀를 다 쫒고 잘 살았으면 한다고 했다.
▲ 지신밟기 자신의 소원을 간절하게 비는 법섭씨 그는 너무나 사는게 힘이 들었다며 지신밟기로 모든 액귀를 다 쫒고 잘 살았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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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섭씨집에 도착했다.

범섭씨는 대문 앞에서 풍물패를 맞이했다.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풍물이 울려퍼지는 동안 두 손을 모아 간절한 기도를 했다. 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풍물패와 그 모습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은 숙연해졌다. 풍물패가 마당굿과 곳간굿 샘굿을 하고 집을 한 바퀴 돌고 나자, 범섭씨가 풍물패를 다시 대문앞 도로가에 세워둔 자신의 화물차로 안내했다. 엊그제 교통사고가 나 500만원을 쓰게 된 화물차에게 풍물을 울려주고 자신은 간절하게 두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범섭씨집의 지신밟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풍물패와 동네 사람들은 그의 소박한 순수함에 고개가 숙여진다고 하며 그의 어려운 사정이 액매귀 굿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을 했다.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동네 아짐들과 동네를 떠나기 전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 회관앞에서 동네 아짐들과 기념촬영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동네 아짐들과 동네를 떠나기 전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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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21일 보름 날 촬영하였습니다. 별신제와 지신밟기를 통해 농촌의 오랜 전통이 지켜나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것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소중하다고 느껴봅니다.



태그:#호계리, #지신밟기 , #마동욱, #김종관, #부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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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장흥군 마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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