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글의 제목은 "평화가 그대에게, 그대에게 평화가"라는 뜻입니다. <편집자주>

 

요르단에서 힘겹게 사는 이라크 난민들

 

이 공간을 통해서 요르단에 있는 이라크 난민 아부 아핫메트 가족을 몇 차례 소개 한 적이 있다. 그들은 2003년 말에 전쟁과 죽음의 위협을 피해 무작정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넘어왔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서 발급되는 난민증으로 6개월마다 자신들의 신분을 재갱신하며 요르단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과 헤어진 지 1년 반이 되었던 올해 초 6일 동안, 정말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났을 때 만남의 기쁨이 더 큰지, 또 다시 헤어졌을 때의 슬픔이 더 큰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이 있는 요르단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중동에 있는 국가로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직항편이 없기에 한번 내지는 두 번 정도 환승을 해야 하고, 환승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아서 가는데만 꼬박 하루 24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번에 나의 경우에도 거의 24시간을 비행기와 공항에서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과 기쁨, 이런저런 생각은 그 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할까? 내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은 좋아할까? 꼬마들(아이들: 아핫메트, 자하라, 디아나, 후세인)은 많이 컸겠지? 아저씨, 아주머니(부모님)는 일을 하고 있을까?'

 

 요르단 암만에 도착하였을 때 처음으로 나를 맞이하는 건조하면서 매서운 바람은 가물가물했던 요르단의 겨울을 다시 기억나게 했다. 아마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중동이라고 해서 일년 내내 더운 것은 아니다.

 

특히 지중해와 가까운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 북부지역은 겨울(그곳에서는 우기 雨期로 불린다)에는 눈도 내리고, 내복이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존재한다. 재밌는 것은 요르단 암만(수도)의 경우 흔치는 않지만 겨울우기에 눈이 많이 와서 도로에 쌓이면, 학교 및 관공서는 차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로 열지 않는다.

 

실제로 나도 재작년쯤에 눈이 많이 와서 어렵게 버스를 타서 요르단 대학교에 갔는데, 학교 문이 굳건히 잠겨 있어서 허탈하게 돌아온 적이 있다.

 

 

잘 사는 난민과 못 사는 난민으로 나뉘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이후 점령이 지속되고 이라크 내부 사회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이라크 전체인구의 1/7인 420만 명이 인근 국가 또는 이라크 내부 난민이 되었다. 이 중 요르단에는 약 70만 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있으며,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그룹은 점령 초기 이라크 내의 위험을 피해온 돈 많은 사람들로 이들은 요르단에서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낸다. 나머지 그룹은 아부 아핫메트와 같이 생명의 위협을 피해서 아무것도 없이 요르단으로 넘어온 난민그룹이다. 그들은 대부분 암만 외곽의 캠프에서 지내거나, 해외 NGO에서 운영하는 난민캠프, 그리고 암만의 두와르 싸니(‘두번째 서클’이라는 뜻)라 불리는 곳에서 집단으로 지내고 있다.

 

물론 NGO들에 의해 교육과 사회서비스면에서 조금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난민들은 요르단 정부의 단속과 추방, 무직으로 인한 빈곤, 난민이라는 사회 차별 등등 다층적 억압과 차별 속에서 지내고 있다.

 

 

아부 아핫메트가 지내고 있는 곳은 두와르 싸니이고, 이 곳은 이라크 난민 다수와 소수의 요르단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곳으로 암만 내에서는 고지대에 속한다. 한국으로 치면 1960년대 서울역 부근의 해방촌처럼 높은 고지에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 곳이다.

 

깜짝 놀라게 할 생각에 숙소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전화 한 통없이 아부 아핫메트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해맑게 웃을 그 집 아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살금살금 그 집 앞에 당도해서는 큰소리로 "아부 아핫메트, 얘들아, 저 셀림(아랍어 이름)이에요. 제가 왔어요!"라고 하자 3~4초간 시간이 흐른 후 집안에서는 우당탕탕! "뭐? 셀림이라고?" "와, 셀림!" 우당탕탕!

 

 그리고 나는 그들을 다시 만났고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서로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동화씨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라크, #난민, #중동, #요르단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