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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에서 내내 눈물을 흘리는 착한 한유림
 졸업식장에서 내내 눈물을 흘리는 착한 한유림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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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졸업하기 싫어.”

우리 집 큰 아이 인효 녀석이 며칠 전부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습니다. 졸업하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가 아니라 6학년 2학기에 들어서고부터였습니다.

“졸업하기가 그렇게 싫으냐?”
“나만 그러는 게 아니구, 우리 반 얘들 다 그랴.”

한 학급이 전부인 인효네 반 아이들은 모두 열아홉 명입니다. 이중에서 1, 2학년 때 전학 오거나 6학년 때 전학 온 녀석들 몇몇을 빼고 나면 모두가 6년 내내 한 학급에서 공부한 아이들입니다.

윤영웅 송인효 김지수 김수진
 윤영웅 송인효 김지수 김수진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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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졸업하기 싫은데….”

녀석은 오늘 아침 졸업식장으로 향하면서도 내내 한숨을 내쉽니다.

“아빠 때는 얼른 졸업하구 싶었는디….”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인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 초까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의 ‘국민학교’ 시절은 즐거운 기억보다는 힘든 기억이 더 많았습니다. 툭하면 얻어터지고, 군대처럼 늘 긴장 속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정말로 징그러운 6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효 녀석의 초등학교 시절은 즐거운 시간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3,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여행을 가기 위해 종종 학교 수업을 빠지곤 했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엄마 아빠 하고 여행 떠나는 일보다 학교에서 애들 하고 어울려 노는 일이 더 재밌었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고 학교 수업에 대한 중압감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임승호 이주석 윤소연(6학년 2학기 때 전학) 이보은
 임승호 이주석 윤소연(6학년 2학기 때 전학) 이보은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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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6학년에 들어와서는 담임선생님에 대한 신뢰감이 높았습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처럼 학업 분위기가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녀석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선생님께서 이러니저러니 했다며 기분 좋게 조잘대곤 했습니다.

녀석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 중에 특히 가난한 아이들이며, 집안에 우환이 있는 아이들, 외고집으로 아이들에게 따돌림 받는 아이들, 서로 다퉈 등 돌리는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 주고 화해시켜주는 듯했습니다.

“사실 아빠도 엄청 서운혀. 니들 졸업하지 않고 지금처럼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니들 모두 다 똑같은 중학교에 쪼르륵 올라가 공부했으믄 좋겠다.”

나는 녀석들 한 놈 한 놈의 성격을 어지간히 알고 있습니다. 1학년 때부터 6년 내내 거의 매일 같이 녀석이 반 아이들과 어떻게 재밌게 놀았는지 꼬치꼬치 캐묻곤 했습니다. 가끔씩 녀석들 이름을 혼동해 되묻고 하지만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한재우 김연아 한유림 임종필
 한재우 김연아 한유림 임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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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애들 모두 다 착해, 성격 나쁜 애들 하나두 없어.”
“아빠두 그렇게 생각 한다.”

녀석들 스스로 만든 추억록에도 한 놈 한 놈의 성격이 그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 엄마처럼 아이들 잘 챙겨주는 고윤미, 늘 웃고 다니며 남자애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김수진. 화나면 무섭지만 애교가 넘치는 강혜경. 장난스럽고 퓨마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착한 박인혁. 노래를 좋아하고 꾸미길 좋아하는 착한 김연아. 낙서 좋아하고 동생 잘 챙기는 김지수. 수줍음 많고 바보처럼 헤헤 웃고 다니는 착한 송인효.  

송효섭 이건주 이규성
 송효섭 이건주 이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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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여성스럽고 여자애들이 가장 깜찍하게 여기는 눈이 큰 아이 송효섭. 부끄럼을 많이 타지만 이름처럼 영웅답고 의리 있는 윤영웅. 핸드폰 좋아하고 한자 많이 아는 착한 이건주. 웃기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썰렁하여 아이들 잘 웃게 만드는 착한 꺽다리 이규성. 잘 웃고 잘 웃기는 아저씨같은 이만욱.

여자애들 하고 잘 어울려 노는 착한 이건진. 잘 웃고 순수하고 먹는 거 좋아하고 성격 좋은 이보은. 존재감 없을 만치 조용하고 심성이 더 여린 이주석. 친구들과 잘 지내며 재치 있는 임승호. 매너 있고 개그가 썰렁하지만 착한 임종필. 잘 웃고 웃기고 닭소리 잘 내는 착한 한재우. 신비롭고 상상력 풍부하고 성격 좋은 한유림.

인효 녀석 말대로 한결같이 착한 아이들입니다.

박인혁과 송인효는 생일이 한 날입니다. 지난 봄, 나는 두 녀석들의 생일을 핑계로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졸업 선물로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김기성 담임선생님도 함께 오셨습니다.

착한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던 김기성 선생님
 착한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던 김기성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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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이 3학년 때에도 우리 집에 몰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녀석들에게 버들피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얘기를 <오마이뉴스>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녀석들이 벌써 졸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효네 반 녀석들은 대안학교 아이들 같았습니다. 한때 우리 애들을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은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안학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는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워 보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녀석들을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을 참 잘했다 싶습니다.

정규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인성교육을 밀도 있게 접할 수 있는 대안학교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대안학교 아이들 보다 더 좋아 보였습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은 자연과 인성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지만 인효네 반 촌놈들은 자연과 인성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부유한 아이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생활하는 것을 덤으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효네반 담임선생님처럼 학업 성적보다는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먼저 챙길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나는 담임선생님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려 노는 녀석들을 보면서 부러움마저 들었습니다. 녀석들과 어울려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녀석들을 통해 온갖 억압 속에서 국민 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되찾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국민 학교’ 1학년 입학하던 첫날부터 학교에 다니기 싫었습니다. 40년이 넘게 지난 그날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차렷 자세로 꼼짝 못하게 세워 놓고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일장연설하고 있었습니다. 오줌보가 터질 것만 같아 두 다리를 꼼지락거리고 있는 밤톨만한 내게 선생님은 엄한 얼굴로 주의를 줬습니다.

들과 산에서 산토끼처럼 하루 종일 뛰어 놀다가 때 구정물 줄줄 흐르는 얼굴로 집에 들어와 저녁밥을 먹곤 했던 촌놈의 가혹한 ‘국민학교’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효와 인혁이의 생일 날, 나는 한 놈 한 놈 카메라 앞에 세워 놓고 녀석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어 씨디에 담아 한 장씩 나눠줬습니다. 아쉽게도 인천에서 전학 온 한 재우는 가족 모임 때문에 오질 못했고, 6학년 2학기 때 전학 온 이건진이 빠졌습니다.

2008년 2월 15일 계룡초등학교 86회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열아홉 명 모두 다 상장을 받았고 10만원씩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끝으로 4, 5학년생들이 언니 오빠 형 누나들에게 잘 가라는 이별의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천방지축의 녀석들은 언제 그랬나 싶게 모두가 침울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울음을 꾹꾹 눌러 참아내고 있었고 여자 아이들 몇몇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엄마처럼 친구들을 잘 챙기는 고윤미 역시 졸업식장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엄마처럼 친구들을 잘 챙기는 고윤미 역시 졸업식장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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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강혜경과 고윤미, 한유림은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졸업식이 다 끝나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 역시 녀석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코끝이 찡했습니다.

“니들 꼭 놀러 와야 혀, 알았지?”

착한 녀석들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착하디 착한 촌놈들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듣고 했던 녀석들의 얘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이 슬펐습니다. 더욱 더 슬픈 것은 이런 착한 녀석들을 경쟁의 틀 속으로 가둬 놓으려는 경쟁제일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이 슬펐습니다.

졸업식장에서 울고 있는 강혜경
 졸업식장에서 울고 있는 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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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녀석들은 공부를 잘하지만 또 어떤 녀석들은 공부는 못해도 체육을 잘하고, 노래를 잘 부르고,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쓰고, 한문을 잘하고, 춤을 잘 추고, 웃기를 잘하고, 이도저도 못하지만 친구들을 잘 챙겨줍니다, 강아지들처럼 툭하면 다투기 일쑤지만 뒤돌아서면 환하게 웃을 줄 아는 모두가 착하디 착한 녀석들입니다. 그래서 또한 더욱더 슬픕니다.

김기성 담임선생님과 함께 한 마지막 졸업사진
 김기성 담임선생님과 함께 한 마지막 졸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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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2008년 계룡초등학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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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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