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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정오께 인천 국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대한항공 항공기 한 대가 승객들이 탑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베를린영화제원정대] 지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홀리데이인(Holiday Inn)호텔. 어느덧 시간은 새벽 0시가 훌쩍 넘었다. 지금 막 샤워를 끝내고 노트북을 켰다. 잠깐 동안 '오늘 하루는 뭐했을까' 돌이켜봤다. 근데, 사실 그다지 한 일이 없다. 꼬박 12시간여 동안 비행기에 몸을 기댔을 뿐이다. 그것도 쥐 죽은 마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말이다.

 

같은 날 아침,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탔을 때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나눠준 수첩에 영화제에 가서 취재할 것들을 적으며 하나씩 챙겼다. 혹시라도 빠뜨리지나 않을까, 보고 또 봤다. 마음은 의욕에 불타 이미 제58회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베를린'에 가고도 남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던 잡지에 제5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소식이 실렸다.

 

12시간 동안 난 그렇게 '사육'당했다

 

그래.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탑승구 근처에서 설레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블로그(http://blog.daum.net/erowar)에 글을 남길 때, 비행기에 올라 한국 땅을 뜰 때도 안 그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급반전됐다.

 

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묘한 기분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모두 6편이 제작된 영화 '완전한 사육'의 갇힌 여자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친절하고 상냥한 S양(스튜어디스)이 마실 것과 밥을 가져다줬다.

 

그뿐이랴. 식사 시간이 끝나면 따뜻한 커피를 가져 날라줬다. 그런 뒤엔 피곤할까봐 잠을 재워줬다. 혹 눈부시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창가에 난 창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혹 잠자리가 불편해 뒤척이는 자가 있으면, 웃는 얼굴로 다가가 말을 건네줬다. "위스키라도 드실래요? 아님 맥주?" 술기운이라도 빌려 잠을 재워 피곤을 달래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채 1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두 번의 밥을 먹었다. 첫 끼니는 소고기, 두 번째는 돼지고기. 여러 번 잠을 잤는데도, 도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의자 앞에 있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눌러 운항정보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도착 예정시간 앞으로 10시간 뒤, 9시간, 8시간, 7시간, …(하략)." 애먼 마음만 서서히 선홍색으로 물들 뿐이었다. 그렇게 12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냈다. 아니,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버텼다. 이왕 탄 비행기, 다시 무를 수도 없는 처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 바라본 구름 모습(사진 왼쪽), 도착 전 비행기에서 바라본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습.(오른쪽)

누군가 그랬다. "끝이 정해진 기다림은 그나마 행복한 것"이라고. 그의 말처럼 끝은 찾아왔다. 12일 오후 5시쯤(독일 현지시간), 우릴 실은(?) 비행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기뻤다. 땅에 육중한 비행기 바퀴가 닿은 감촉이 느껴지는 그 순간, 마냥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땅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기쁨과 견줘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프랑크푸르트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정확히 말해, 독일 자체를 와본 적도 없다. 싱가포르 여행 딱 두 번 갔을 뿐이다. 막말로 '쌩(生) 초짜'다. 때문에 혼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막 내뱉더라도 "촌놈이니까"라며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바란다.

 

"저~엉말" 원초적인 이방인(stranger)의 입장에서 프랑크푸르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시골'(country). "워워~"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콧속을 파고드는 공기 속에서 포근한 시골의 향이 느껴졌을 뿐이다.

 

게다가 주변 경치도 삭막한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건물 중간 중간 푸른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건물도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이곳에서 '명동'이라 불리는 '자일'(Zeil)에도 번뜩이는 네온사인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낮고, 화려하진 않지만, 왠지 차분하다. 이것이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프랑크푸르트다.

 

"독일인은 맥주에 거품이 없으면 안 마셔요"

 

이날 밤 9시쯤, 여독을 풀 겸 호텔 근처에 있는 작은 펍(pub)에 들렀다. 간판도, 인테리어도 허름하기 짝이 없는 보통 동네 술집 같았다. 가게 안은 폭죽 안에나 들어 있을 법한 알록달록 색깔 종이로 도배돼 있었다. 심지어 한쪽 모퉁이에는 운동회 때 단골메뉴인 '만국기'까지 내걸렸다.

 

그래도 이곳이야말로 독일 전통 분위기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함께 간 가이드(guide) 김성철씨는 말했다. 그러곤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소개해주겠다"며 가게 주인에게 '알 수 없는' 독일말로 주문했다.

 

5분여 뒤, 주인은 입가에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병맥주를 내왔다. 병은 노란 껍질로 싸여 있었으며, 겉면에는 'CLAUSTHALER'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독일에서는 맥주에 거품이 없으면 안 마셔요. 그만큼 거품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함께 내온 잔에 맥주를 따르려는 순간, 그가 다시 끼어들었다. "잔 끝 부분을 보면 숫자가 보이죠? 그곳까지 풍부하게 거품이 나게 따르면 됩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입술이 닿는 부분 즈음에 숫자가 쓰여 있다. '콸콸'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잔을 채운 뒤, 거품과 함께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사뭇 다른 맛이 느껴졌다. 쌉싸래한 보리 맛이 강하면서도,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목을 자극하는 탄산의 느낌도 약했다. 전문 용어로, "착착 감겼다".

 

잔에 비친 맥주 색깔도 사뭇 달랐다. 맑고 투명한 한국 맥주에 비해, 불투명하고 걸쭉했다. 그렇다고 흔히 봤던 흑맥주도 아니다. 가이드는 "(이 맥주는) 밀가루를 섞어 만든 백맥주"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도 수입이 되느냐"고 묻자 그는 "병맥주는 유통이 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대부분 맛있는지 몰라 찾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12일 늦은 밤,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한 펍(pub)에서 마신 'CLAUSTHALER' 맥주

 

어쨌든 확실한 건, "이 맥주 꽤 먹을 만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맥주를 뚫게(?)돼 기쁘다. 덕분에 잠시 잃었던 의욕도 되찾았다. 맥주에 대한 얘기는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독일에서의 첫 밤, 이렇게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베를린영화제원정대'는 지난 12일 독일로 출국, 다음 블로그를 통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원정대는 다음(daum)과 CGV, 한진관광이 공동으로 후원한다.

이기사는 다음 블로그(blog.daum.net/erowa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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