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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국내 언론들은 "한국이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지역에서 기존의 바지안 탐사광구 외에 추가 광구를 확보하게 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를 주축으로 하는 한국 컨소시엄과 쿠르드 자치정부는 양해각서를 체결해 쿠르드 자치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유전개발을 함께 추진키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컨소시엄이 광구를 추가 확보하게 된 데에는 대통령 선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이 기여한 것으로 전해졌고, MOU 체결식에서 참석하는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는 14일 오전 이명박 당선인을 만나, 유전개발에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바지안의 교훈' 벌써 잊었나?

 

새롭게 합의된 쿠르드 지역 광구는 모두 4개로서, 매장량은 한국이 1-2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10억~20억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석유 확보 전쟁에 불붙고 있는 현실에서 자원외교를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당선인측이 상당한 개가를 올린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대다수 언론들 역시 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착각에 가깝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라크 중앙정부가 한국에 원유 수출을 중단한 조치가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앙정부와 쿠르드 지방정부가 쿠르드 자치정부의 원유 통제권이 포함된 석유법에 합의하지 못하면, 원유를 채굴하더라도 한국에 들여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국 컨소시엄이 참여한 유전도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이라크 중앙정부는 한국 컨소시엄이 쿠르드 자치정부와 맺은 바지안 광구 개발이 철회되지 않으면, 원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계약이 철회되지 않자, 이라크 중앙정부는 경고를 행동으로 옮겼다. 이라크 정부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라크 원유를 수입했던 SK에너지와 계약을 갱신하지 않아, 올해부터 원유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유전개발 계약을 체결한 호주 기업에도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처럼 '바지안' 광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컨소시엄이 또 다른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이라크 정부의 원유 수출 중단 조치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라크 정부는 원유 수출 재개를 요청한 SK에너지에 지난달 1월 31일까지 바지안 광구 계약을 취소하라고 통보했었다.

 

그러나 SK에너지는 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이 기업도 참여하고 있는 한국 컨소시엄이 14일 쿠르드 자치정부와 추가적인 유전개발에 합의했다. 단기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라크 정부 "쿠르드 자치정부와의 계약은 불법"

 

작년 초부터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지방 정부 사이에 석유법(oil law) 및 석유 이권 분배를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이라크 중앙정부는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원유 개발 거래는 불법으로 간주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에 따라 한국 컨소시엄이 쿠르드 자치정부와 맺은 계약은 불법이라며, 원유 수출 중단 '경고'에 이어 실제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바지안 광구가 한국 컨소시엄과 쿠르드 자치정부가 새롭게 계약을 체결한 광구 규모의 4분의 1이고, 양측이 이라크 중앙정부 방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이라크 중앙정부는 이번 계약 역시 불법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석유를 둘러싼 이라크 종파간의 복잡한 갈등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작년 2월 들어 시아파 주도의 중앙정부가 석유법 초안을 내놓으면서 잠복되어 있던 종파간 갈등은 표출되기 시작했다. 키르쿠크 등 원유 매장량이 풍부한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다수파를 점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지방정부가 외국 기업의 계약 체결 및 수입 분배 등 석유 통제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반해 원유 매장량이 많지 않은 이라크 중부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수니파는 중앙정부가 전체 이라크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공평하게 그 수입을 분배한다고 맞서왔다. 특히 수니파는 외국 기업이 원유 개발을 주도하는 것은 이라크에 대한 주권 침해이자 이라크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국부(國富)를 외국 자본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라며, 외국 기업의 원유 개발사업 참여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후세인 축출 이후 중앙 권력을 장악한 시아파는 쿠르드족의 원유 통제권도, 수니파의 중앙정부에의 영향력 행사도 차단하려고 한다. 쿠르드족이 자치 지역 내 원유 통제권을 갖게 되면,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 뿐 아니라 자칫 쿠르드 분리독립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시아파는 수니파의 영향력이 재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으로 석유 통제권에 대한 접근 차단을 삼아 왔다.

 

이러한 이견 때문에 이라크 석유법은 초안이 나온 지 1년이 지나도록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석유법에 대한 종파간의 합의 여부가 이라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석유법이 통과되면 해결된다? 모르시는 말씀

 

석유 업계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석유법이 통과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5월 31일로 예정된 시한까지 석유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수니파는 석유법 초안 통과가 강행될 경우, 중앙정부 및 의회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석유법 초안과 부록에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원유 통제권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없다. 이라크 전역에 있는 원유와 가스의 통제권이 중앙정부의 석유가스위원회 및 이라크 국영석유기업에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석유법 초안의 골자이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석유법 초안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독자적으로 외국기업과의 계약을 맺어왔고, 이라크 중앙정부가 이를 불법으로 간주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일각에서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이라크 석유법에 시한 내에 통과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통과된 석유법에 쿠르드 자치정부의 원유 개발 통제권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도 극히 낮다.

 

이는 한국 컨소시엄이 쿠르드 자치 지역의 유전을 개발하더라도 원유를 가져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법 시비가 끊이지 않고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유전, 저항세력의 핵심 공격 목표 될 것

 

또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유전 개발의 안정성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2003년 4월 미국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부터 2007년 4월까지 4년간 이라크 저항세력이 원유 시설을 공격한 횟수는 400회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니파는 외국기업의 원유 개발 참여에 상당히 적대적이다.

 

이는 한국의 유전 개발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 개발 사업의 안전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쿠르드 자치지역에 한국의 무분별한 유전 개발 참여가 이명박 당선인측의 '한미동맹 강화론' 및 '자원외교'와 맞물리면서 이라크 파병의 장기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이명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에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그 곳(이라크 북부)이 기름밭 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가올 자원 전쟁에 대비해 파병 연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만약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또 다시 파병 연장을 추진할 경우, 국내의 정치사회적 혼란도 극심해질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당선인측이 그토록 강조해온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묻지마' 식의 이라크 북부 유전 개발 사업과 이라크 파병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라크 정부의 원유 수출 중단이 장기화 될 수 있고, 쿠르드 자치 지역에서의 유전 개발이 '불법 시비'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유전 개발의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파병 연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태그:#이라크, #자원외교, #쿠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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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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