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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위태하다. 바다의 뭇 생명들이 시커먼 기름덩이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이 땅의 문화를 떠받치고 있던 국보 제 1호는 처참하게도 무너져 내렸다. 이제 반도의 땅이 통째로 들쑤셔져 그 심장이 파일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어수선한 시절에 부응이라도 하듯, 말의 뿌리가 온전히 보존되어 그 뿌리가 전하는 영양분을 받고 그 땅의 정신이 올곧게 자라게 할 것인지, 아니면 자칫 방향 잃은 언어 정책으로 미래의 문화 정신까지 위태롭게 할 것인지, 그 갈림길에 우리는 위태로이 서 있는 듯하다. 

신음하는 이 땅의 절규를 뒤로하고 영어교육정책이 바르게 펼쳐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뚜벅뚜벅 연속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연속 인터뷰의 1차적인 목적은 '귀기울임'에 있다. 그 귀기울임을 통해, 저마다 분석하고 있는 현실 속에 참 현실을 분별하고자 하는 것이 그 두번째 목적이다. 이를 계기로 중단없는 논의가 시작되고 마침내 의미 있는 정책과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불어넣는 데 그 세번째 목적이 있다.

나는 어린 아이부터 중년까지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 속에서, 기본적으로 '하고 싶을 때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교육의 맥락으로 끌어들이자면 사실 중학교부터 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며,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냐가 중요한 것이라 본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발달이 빠르다고 가정하고 십분 양보하더라도 초등 고학년 정도부터면 족하다고 본다.

물론 부담없이 영어를 접하고 경험해보는 것은 뭐 언제라도 상관없는 건 당연하다. 최소한 그림처럼, 노래처럼, 이야기처럼, 그냥 그렇게 똑같은 비중으로만 접근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은 좀처럼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다. 아이와 영어의 만남 속에 쑤셔넣는 부모와 사회의 욕망이 워낙 공세적이기 때문이다. 이 공세적인 욕망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서 영어교육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인터뷰한 이성하 교수는 지난 10년간 한국외국어대학 외국어연수평가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영어 학부 학장으로 자리를 옮겨 언어학과 영어교육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와는 1차 메일 인터뷰를 진행하고 다시 만나 더 궁금한 부분들을 질문했다.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이 교수는 한국외대 강의상이 제정된 이후로 줄곧 강의상을 받아 왔다. 인터뷰에도 적극 응해주었다.  

이성하 교수
 이성하 교수
ⓒ 최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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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기만 하지 기르지는 않는 교육

우리의 대화는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짚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교육이라는 것은 교(敎)와 육(育)으로, ‘교’는 가르치는 것이고 ‘육’은 기르는 것인데, 한국 교육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가르침만 있고 기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제공해도 아이들을 사람으로 세우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대학 교정에서 침을 뱉고 뒷사람 상관없이 문을 닫아버리고 교내에서 비에 젖은 우산을 흔들기 예사입니다. 인간되게 하는 기름은 없고 정보를 쏟아 붓는 ‘교’만 있는, 이런 문화가 잘못된 것입니다. 너무 성공 지향적이고, 기술자를 만들어 점수를 잘 받는 것만 지향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잘 섞여 살아가는 것을 돕는 교육은 없습니다.”

이 교수는 영어교육이 영어교육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사회 분위기, 사회 구조가 정책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내기 어렵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가 지배적이며, 각종 시험에서 교사가 낀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근본적인 정의감이 사회 전체적으로 크게 떨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옳고 그르냐는 분별하지 않고 ‘원하는 걸 이루느냐 마느냐’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교육은 영어교육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더 폭넓은 사회 전체 가치관의 문제, 정의감의 문제, 함께 사는 소양의 문제를 아울러 짚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으며,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직접 학생들에게 '섞여 사는 훈련'을 강조하며, 지식인으로서 사회 평등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학생들과 함께 고민한다고 했다.

영어가 강조될 때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이 교수가 지적한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영어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은데, 사회가 경쟁을 우선시 하며 영어만을 중요하게 여길 때,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자신의 강의에서 직접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조기몰입교육을 하고 영어공용화 수준의 영어실력을 국가가 키워내야 한다고도 적극 주장한다.

다음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 이전에 공부할 때와 지금 영어공부할 때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과거에는 특별한 요령보다는 무조건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교육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반면 영어 자료 자체가 부족했지요. 그에 비해 요즘은 영어 자료가 많아 쉽고 다양하게 좋은 학습자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많은 학습 자료가 오히려 적절한 활용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사소통 중심’이라는 개념을 잘못 적용하여 학습자의 학습 영역이 매우 피상적인 구술능력에 국한되고, 시험 위주의 교육으로 오히려 폭넓은 영어자료 해독력이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 한국의 영어 실력의 취약함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공부하는 데 실전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실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적극적 노출, 즉, 주의 깊게 듣기, 주의 깊게 말하기, 주의 깊게 쓰기, 주의 깊게 읽기 등이 전적으로 부족하고, 영어 학습이 ‘문제 풀기 기술 향상’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문법 필요없다는 생각은 잘못"

- 의사소통 개념이 잘못 적용되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요?
"6차 교육부터 그렇게 가고 있지만, 현재 개정 7차 과정의 패러다임은 ‘의사소통중심 교육’으로 가자고 되어 있지요. 의사소통이 안 되면 외국어 배우고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잘못 적용했다는 말입니다. 실제 외국 학자들이 한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논문에서도 한국 교사들이 이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능력’의 학술적 개념은, 첫째, 문법적인 능력(언어학적 지식), 둘째, 사회언어학적 능력(담화 활용적 능력), 즉, 해도 되는 말인지, 적절한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능력, 셋째, 담화적인 능력, 즉, 어떤 주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그만 하고 싶어 할 때는 어떻게 주제를 종결해야 하는지를 알고 엉뚱한 소리 안 할 수 있는 능력, 넷째, 전략적인 능력, 즉, 같은 말을 해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이 네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말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제일 중요한 언어학적 능력, 즉 문장의 적절성(규칙상의 적합성 문제)을 전혀 안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의사소통교육에서 문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이해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가 더해져야 한다는 건데, 제일 중요한 것을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실제적인 언어자료 접근성은 떨어지고, 아주 깊이 있는 얘기는 아무것도 못하고 말만 하는 결과가 돼버린 것입니다. 껍데기만 만들어 놓은 것이죠. 내 후임으로 오신 연수평가원장은 의사소통 개념을 잘못 이해해 ‘노래방 효과’를 만들어 냈다고 했습니다. 가사 나오면 잘하는 것 같지만, 반주 꺼지고 자막 안 나오면 노래 못한다는 것이죠.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외부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잘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실속은 없는, 실력 향상은 없는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럴 듯하지만 데이터 독해 능력은 떨어지고, 깊은 얘기는 나눌 수 없는 허울뿐인 결과가 초래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논문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 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오독할 수 있는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말은 제대로 하는 게 기본입니다. 제대로 안 해도 좋으니 ‘입만 벌려라’고 하는 것, 입만 벌리게 하는 능력으로 의사소통개념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실속 없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 시험 위주 교육으로 폭넓은 해독능력이 떨어졌다고 하셨는데, 시험 위주 교육이 미친 영향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십시오.
"한국 사람들은 테스트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외국어연수평가원장을 지냈습니다. 10여 년 동안 평가 업무를 해 온 셈입니다. 한국 학생들은 실제 유창성, 언어 숙련도보다는 테스트 기술자가 되었버렸습니다. 지문이 나왔을 때 독해 문제를 접하면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주로 사용되는 수사 구조 등은 무엇인가 하는 언어의 본질적 문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답 찾는 기술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영어학습을 위해 초중고등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자료는 거의 절대 다수가 문제집입니다.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만 공부하고 있어요. 문제를 만들다보면 시험 문제는 거의 정형화될 수밖에 없는데, 문제 출제자가 생각하는 트릭을 반대로 짚어서 그 트릭에 빠지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문제 푸는 언어 사용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연적인 상황에서 문제 푸는 것으로 소통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화와 상호 관계를 통해 소통하고 정보를 얻는 것이고 그것이 언어 사용의 목표이지요. 우리가 지금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 푸는 것을 통해서 소통하고 정보를 얻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보는 것은 뒷전이고 모두 문제 푸는 연습만 하고 있으니 안 될 수밖에 없지요."

- 영어자료 해독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요. 외교 분야에서도 그런 능력이 많이 취약한 상황인가요?
"미 대사관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 외교관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80년대 일이니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겠지만 많은 외교관들의 능력이 달렸습니다. 회의 끝나고 회의 자체 내용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는 아주 치명적인 일입니다. 다 알아듣고도 저 단어가 아닌 왜 그 단어를 썼을까를 고민하는 그 정도의 언어 능력이 필요한데 기본적인 것조차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무역 쪽에서 일하거나 유학 가서도, 외교에서도, 관광에서도, 모든 언어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영역에서 영어를 제대로 못하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모두 영어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제대로 잘 하는 사람은 뜻밖에 적습니다. 이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입니다.

각 국의 경쟁 상대가 결국 영어로 소통합니다. 거기서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버금가는 수준의 영어를 해야 그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지금의 영어구사력으로는 아시아의 허브도 어려워요. 중국인과 일본인이 한국말을 써주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두 나라만 모이면 반드시 영어를 씁니다. 국제 공용어이기 때문이죠. 어느 나라에서 학회가 있어도 그 나라 언어와 영어를 반드시 씁니다. 이런 환경에서 영어 경쟁력 없으면 어려워요. 한국어 버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어도 잘 해야 합니다. 한국어도 막강한 언어이지요."

"싫다고 해도 시켜야 하는 게 교육철학"

- 전문적으로 영어를 하는 사람의 영어실력이 더 갖춰질 필요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초중고등 학생의 경우에 영어노출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할까요? 영어를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람이 하려고 하면 노출시간을 늘리는 것이 맞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영어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자기 주체성을 잘 배려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어노출시간을 늘리도록 공교육 차원에서 강제받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것은 교육철학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교육의 전제는,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앎과 모름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것이 교육이죠.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수학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하도록 설득하고 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하게 되면 좋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키는 것입니다.

사회 통념상,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대로 살아남아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도록, 나란히 경쟁하게 해주기 위해, ‘칼은 위험하다,’ ‘불은 위험하다’고 가르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때로는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이렇게 강제하는 게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교육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철학의 문제입니다. 공교육 체계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하라는 얘기와 같지요.

영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통역 쓰면 된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은 ‘네가 이 다음에 생활해야 하는 세계는 영어를 활발하게 써야 하는 세계이고, 지금의 너의 목표는 그것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 너의 목표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세계에서는 영어가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을 정부, 학부모가 가지고 있다면, 싫다고 해도 시켜야 하는 게 교육철학이라는 말이지요.

영어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교육철학 측면에서는, 우리 시장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영어가 필요하고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 둘 모두 이중 언어 사용자입니다. 그 아이들이 살 세상이 어디일지 나는 단정짓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데 지장없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언어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완벽한 한국인이자 완벽한 영어사용자입니다. 그 아이들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큽니다. 전주 이가의 후손임을 떳떳이 말하고 한국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미국 문화를 숭배하지도 얕잡아보지도 않습니다.

스페인어(전 세계 2,3위권), 중국어도 가르치려합니다. 세계인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죠. ‘한국 이외의 것은 다 나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초중고등 공교육 체계에서는 아이들의 장래 세계를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합니다. 그 부담을 부모가 지게 하지 말고 정부가 져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 일반적으로 영어를 강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인성함양이나 더불어 살아감을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극도의 경쟁이 강조되는 경향이 큽니다. 기존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영어에 매몰되어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줄 관계가 취약해 보입니다. 그런 관계와 장이 확보되지 않은 채, 영어공교육을 강화했을 때 우려되는 점이 있지 않을까요?
"사회 분위기를 명확히 얘기할 순 없지만, 한국 문화가 위축되리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어교육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첫째, 위축되지 않으리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만 하면 정체성이 상실되고 사대주의에 빠지고, 한국말 능력이 떨어지고, 영어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전 세계에 6700개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2주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1년에는 스물다섯 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어요. 언어 제국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점에 있어 한국어가 염려될 문제는 아닙니다.

사라지고 있는 언어들은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원어민들이 1천명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밑에서 강하게 지원 안 해주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언어들입니다. 한국어는 불어보다도 한 순위 앞선 전 세계 13위권 언어입니다. 이런 언어가 사라지긴 현실적으로 어렵지요.

또한 영어로 몰입수업하자는 패러다임은 일제에 의해 진행된 수업이나, 인디언을 대상으로 진행된 수업처럼 완전히 모국어를 못쓰게 하는 수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조기 몰입하면 2, 3학년에 이중언어구사자(바이링규얼)가 될 수 있습니다. 5, 6학년쯤 되면 한국어, 영어 반반씩 공부하게 합니다.

몰입교육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전 과목을 영어로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몰입교육의 핵심은 수업 내용이 영어, 우리말 반반씩 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몰입교육에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죠. 전 과목을 영어로만 진행한다는 것이 몰입교육의 다가 아닙니다. 취학 전 아동에게 실시하는 조기몰입이 있고, 약간 뒤로 지연해서 3,4학년 때 실시하는 지연몰입, 5,6학년이나 6,7학년에 실시하는 후기 몰입 등이 있으며, 전 과목을 진행할 수도 있고, 일부 과목에서만 진행할 수도 있고, 매우 다양합니다. 전 과목을 영어로만 하는 것이 실제 몰입교육의 다가 아닙니다." 

이성하 교수 서재. <2개언어상용과 그 이론>이라는 책이 보인다.
 이성하 교수 서재. <2개언어상용과 그 이론>이라는 책이 보인다.
ⓒ 최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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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교육 방식은 다양…아이들은 쉽게 이중언어사용자 될 수 있어"

- 인수위나 대부분 언론에서 말하는 몰입교육은 무조건 전 과목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몰입교육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더 필요한 것 같은데요?
" 어려운 건 한국말로 해도 다 어려워요. 의사소통 안 되는 언어로 어떻게 교과목을 가르치고 배우나 하겠지만 그렇게 우려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캐나다가 몰입교육의 원산지인데 63년, 67년 등에 불어 몰입교육이 시행되었어요. 처음에는 반발이 컸지만 과감하게 시행되었는데, 모국어에 전혀 지장 없고, 교과목 이해에 전혀 지장 없었습니다. 외국어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어요. 일반 인지 능력 향상 여부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심하지만, 어쨌든 모국어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몰입교육에서 전 과목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은 몰입교육의 한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유치원 때는 아이들의 모국어는 상당히 발전된 수준에 이릅니다. 언어의 본질일 수 있는 규칙, 문법은 이미 5세쯤에 완성되는 걸로 언어학자들이 보며, 그 후로는 다듬어지는 것이라 합니다. 유치원 과정에서 모국어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미 충분히 기초가 되어 있는 상태로 봅니다. 그 상태에서 외국어로 전 과목을 한다면,  우리는 두려워해도 아이들은 스폰지 같아서 어려움 없이 배웁니다. 그렇게 해서 2,3학년 쯤 되면 이중언어사용자가 됩니다.

아이들은 편안하게 두 언어 사용합니다. 2,3학년쯤 되면 몇 개 과목은 모국어로 가르칩니다. 모국어와 영어의 배합은 모델마다 달라요. 5, 6학년 쯤 되면 우리말과 영어 50대 50 정도의 배합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모국어와 해당 외국어를 50대 50으로 진행하는 것이 몰입교육의 핵심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몰입의 유형은 다양합니다. 한 수업에서 두 교사가 각각 다른 두 언어를 섞어 쓰는 투웨이 이멀젼(양방 몰입)이라는 것도 있어요. 불어 사용 학생, 영어 사용 학생이 함께 있고, 교사가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해도 어려움 없어 해요. 학생들은 잘 합니다."

- 어린 아이들이 영어를 배울 때, 영어로 말하면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면서 우리말로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건 우리말로 할 때도 어려운 말이 있을 때 설명해줘야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자격 있는 교사라면 영어만을 이용해서도 잘 설명해줄 수 있어야겠죠. 한국어 쓰는 학생에게 한국어 어려운 개념을 설명해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 그러려면 양질의 교사 확보가 전제되어야겠습니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교사가 있어야 가능하지요. 현직 교사들이 반발하는 것도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 실제로 영어교육 정책을 입안한다면, 몇 세부터 공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그 이후 어떤 단계를 밟아 실력 완성에 이르도록 학습 방향을 제시하겠습니까?
"조기교육을 시행한다면 구체적인 학년은 모두 변이형으로서 가능해요. 다양한 몰입교육의 유형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별도의 고려사항이 없다면 공교육의 시작점부터가 좋다고 봅니다. 초등 과정부터 한국어와 영어를 활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영어몰입교육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훈초등학교 등에서도 진행하고 있고, 고양시, 광진구 등에서 몰입 교육 계획을 추진 중이라 합니다.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준비된 사람들로 일부 교과목을 몰입교육하고, 잘 되면 서서히 확산하면 됩니다. 몰입교육을 한국어 배제하고 전 과목 전 학년 시행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다양한 변형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초기 단계는 TEE, 즉, 영어로 영어수업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요. 모국어와 대상 외국어를 다양한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준비단계로 TEE(영어로 영어수업)를 활발하게 하고, 영어로 쓰는 수업 하나에 노출되기 시작하게 하고, 서서히 확장시켜서 점점 더 많은 영어 데이터에 접근하도록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 TEE의 경우에도 문법, 독해 등은 우리말로 하고 회화나 고급 수준의 경우에 영어로만 수업하는 유연한 방식과 처음부터 모든 영어 영역을 영어로만 하는 방식이 있는데…
"어떤 걸로도 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영어로 해도 된다고 봅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게 될 경우 어차피 영어로만 다 합니다. 아이들은 하게 되어 있어요. 쉽게 합니다. 우리가 너무 걱정하는 것이에요. 영어로 문법 가르쳐도 아이들은 다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 영어만 하면 영어는 잘 할 수 있겠지만, 한국말로 풀어야할 때 한국말 실력은 어떻게 훈련할 수 있으며, 우리말과 다른 영어의 어순, 수동태 명사 중심 등의 표현이 우리말에 얽히는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요?
"모국어에 지장 없습니다. 외국어연수평가원 영어 교수들이 스물 다섯 분입니다. 대부분이 캐나다 분으로, 2,500개 학교에서 시행된 영어 불어 몰입 교육을 받은 분들인데, 모국어에 전혀 지장 안 받습니다. 영어와 불어가 유사해서 쉬운 게 아닙니다. 영어는 게르만어이고, 불어는 로마어, 즉, 라틴계통입니다. 유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1066년에 불란서 사람이 영국 정복해서 불어를 쓰는 상류층이 영어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어 영향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독일어가 영어에 가깝지요. 즉, 영어와 불어가 비슷한 부분은 몇 가지 단어뿐입니다."

- 영어교육 강조하다 보면 우리말이나 인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상대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만 강조하다는 것이 우려스러운데요.
"주변에 영어 잘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나 자신도, 영어권에서 많이 지냈지만, 한국 문화에 굉장한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어 잘 하는 사람일수록 자문화에 대한 긍지가 큽니다. 외국어 한다고 해서 모국어 문화를 무시한다거나 정체성을 상실한다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공용어는 사회 계급 나눌 수 있어 위험"

- 자기 관심사가 아니고, 그렇기에 끝까지 특정 수준의 실력까지 가기 어려운 사람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혜택이 적을 텐데 그렇게 되면 자아나 자문화에 대해 위축될 계기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북유럽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합니다. 영어권과 특별히 교류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덴마크는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꼽힙니다. 그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영어를 잘합니다. 지방까지 아우르면 인구의 80%가 영어를 잘 해요.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 문화에 대해 긍지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화란어 영어 모두 잘 하는 사람, 영어를 그냥 어느 정도만 하는 사람, 등급이 있을 텐데, 이 둘 중 어느 정도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자문화에 대해 자학적인가 하면, 그렇지 않아요. 이들도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고 살고, 영어를 더 잘 하는 사람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는다든가, 더 잘 하는 호주나 미국 사람들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는다든가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도,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 문화 비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중언어사용자가 많아지는 것으로 가는 것이지, 서로 간의 유대를 어렵게 하는 간격이 커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용어로 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법적으로 두 언어를 동등하게 할 경우에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를 사용하는 층과, 한국어만 사용하고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의 층이 아주 확실히 구분될 수 있어요. 이쪽은 가진 사람이고, 저쪽은 못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진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을 피지배계급처럼 대우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용어로 하는 것은 분명히 반대입니다.

그냥 이중언어능력을 키우는 정도로만 가자는 말입니다. 똑같은 법적 지위를 공표하지는 말아야 해요. 계층 분화, 사회 불화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어교육을 강화시켜 상당수가 영어와 한국어에 편안해져서 국제경쟁력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어느 사회나 어느 영역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이중언어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이중언어사용자 늘리기 위해 국가가 영어교육에 투자해야"

- 영어교육 강화해서 실력을 확보한다 할 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떨어질까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몰입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3년 정도면 이중언어구사자가 될 수 있어요. 길게 잡아서 4년 정도 공교육에서 이중언어를 말해준다면 영어를 못해 손해를 보는 사회 약자층은 오히려 부담을 더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 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조기몰입교육을 찬성하는 입장인데, 3, 4학년에 이중언어사용자가 되면, 그때부터는 목메고 매달리고 학원 갈 필요 없어요. 언어를 제대로 하려면 4천 3백 시간이 든다고 외국어학계는 봅니다. 간첩 만드는 데는 그 언어 노출에 1만 시간 필요하다고 하고요.

그런데 우리 경우 대학교까지 2천 시간이 안 됩니다. 그러니 안 될 수밖에 없지요. 초기에 해서 두 언어의 균형을 맞춰주면 외국에 아이들 보내고 사교육 15조 소모 안 해도 됩니다. 제대로 조기몰입하면 크게 잡아도 5, 6년 내에 이중언어구사자가 되리라 봅니다."

- 조기몰입에 찬성한다면, 그것이 몇 년 만에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교재연구, 교사확보, 교사훈련이 필요하고, 특정 과목을 선정해서 훈련하면서 차츰 확산시키면 되는데, 어느 정도 재정을 투입하고 속도를 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 몰입교육하면 조기유학 같은 것이 줄어드리라 보십니까?
"조기유학의 원인에는 영어실력을 위한 것도 있고, 경쟁 중심의 한국교육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있어요. 영어 때문만이라고 볼 때는 몰입교육이 해결해주리라 봅니다. 외국에 유학가는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교과목과 발달된 지식을 배우는 데 있지요. 제대로 가르쳐 보려는 것입니다.  다만 영어 때문에만 가는 것이라면 몰입교육을 통해 상당부분 해소되리라 봅니다."

- 몰입교육 해도 사교육 여전하고 연수 붐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극도의 경쟁 사회인 한국 사회 구조상 어떻게 해도 사교육 시장이 그렇게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고 봅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사교육 현장으로 아이들을 내몰겠지요. 입시정책에 변동이 오면 그 때는 사교육이 약화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 영어조기교육이나 언어연수, 영어마을 등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해주십시오.
"영어조기교육은 전적으로 필요하나 적절한 교사확보가 되지 않아 오히려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언어연수는 기간, 수업형태, 비용에 따라 크게 달라서 일반화하여 평가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어마을은 전적으로 필요하지만, 다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부실하면 교육적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의 영어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근본적으로 영어몰입교육을 통한 한영 이중언어사용자들을 만들어야 한국인 개인과 국가 경쟁력이 올라갈 것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0.74%, 전 세계 면적의 0.07% 국토를 가진 한국은 국제적인 교류에 의존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이중언어사용자들을 세계로 보내기 위해서는 영어교육에 국가가 활발하게 투자하고, 개인의 부담을 줄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인터뷰는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편입니다.



태그:#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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